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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부활의 몸

  •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 15:35-38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1-04-18

 

2021년 4월 18일 주일낮 예배

성경 : 고린도전서15:35-38

제목 : 부활의 몸

제60회 칸영화제 감독상, 제6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감독상&외국어 영화상 2관왕, 제33회 세자르영화제 남우주연상 등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명작 <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장 도미니크 보비는 프랑스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었는데 1995년 43살에 갑자기 찾아온 뇌졸중으로 인해 왼쪽 눈꺼풀을 제외한 신체의 모든 부분이 마비됐습니다. 그 절망 중에도 그는 그 눈꺼풀을 15개월 동안 20만 번을 깜박임으로 알파벳을 만들어 130장에 해당하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도 많이 읽혔고 영화가 되어서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는 책이 출간되고 2일후에 영양실조 등으로 1997년에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몸은 그의 영혼을 드러내었고 그의 몸이 죽자 그의 영혼은 사라졌습니다.

 

죽음 이후 우리의 육신과 영혼은 어떻게 될까요?우선은 진화론적 세계관에서는 영혼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영혼은 뇌 기능의 일부로 봅니다. 그래서 뇌가 죽으면 모든 것이 죽는 것으로 여깁니다.

남는 것은 유전자라고 합니다. 개체로는 죽지만 유전자로 계속 생명이 이어진다고 봅니다.

진화란 이 유전자가 계속 이어지게 하려는 자체적 노력을 말합니다.

 

성경은 육신과 영혼을 구분하여 말씀합니다.

창세기2:7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셨습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는데 그로 인하여 창세기3:19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육신이며 영혼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10:28에 예수님께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하심으로 몸 즉 육신과 영혼이 같지 않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과 부활은 다른 개념입니다.

다시 살아나는 것도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만, 왕하4:32-37에서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일이 있고, 예수님께서도 회당장 야이로의 딸(막5:22 이하) 나인성 과부의 아들(눅7:11 이하) 나사로(요11:1 이하)를 다시 살리셨고 베드로도 다비다(행9:36 이하)를 다시 살린 일이 있었는데 이는 이전의 육신으로 다시 사는 삶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언젠가 다시 죽었습니다.

부활도 다시 사는 것인데 이전의 육신으로 돌아가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들은 있지만 부활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고린도전서15:20에서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었도다 하셨습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으며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고전15:12에 고린도 교회 교인들 가운데 죽은 자 가운데 부활이란 없는 것이다 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많은 증인들이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고전15:5 이하에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다 하였습니다.

복음서에도 많은 부활의 증인들이 있었음을 말씀드렸고 지난 주에는 그 증인들 가운데 도마가 있었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에 있어 부활의 몸에 관한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이전의 몸과 연속성과 비연속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속성이란 십자가에서의 상처가 부활하신 몸에도 있었다는 것이며, 부활의 몸을 제자들이 알아보았다는 점이고 부활 이전과 이후에 같은 기억을 갖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비연속성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를 붙들지 말라(요20:17) 하신 점,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즉시 알아보지 못했던 점(눅24:16), 시공간을 넘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점(요20:19 이하), 승천하시는 모습(눅24:51) 등입니다.

 

35절에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씨가 땅에 심겨져 다시 싹이 나는 것과 같은 면이 있다 하였습니다.

그 씨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인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이 있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 육신이 땅에 심겨져서 거기로부터 부활의 몸이 나온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반드시 매장을 해야 하고 시신은 수습되어야 하며 화장은 안 되는 것이고 하는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심겨지는 것은 우리의 죽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이 영혼이 심겨졌다고 하는 것이 땅 속에 있게 된다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품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영혼은 육신의 죽음과 함께 잠자는 자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영혼이 몸이 없음으로 인해 생명 현상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잠의 상태에서 깨어나는 때가 바로 부활의 때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헬라철학에서 말하듯 영원 전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생명이 시작될 때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때로부터 우리 영혼에게 주어진 몸이 바로 육신입니다.

부활의 몸은 우리가 잠자는 상태로 있다가 주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부활하게 되는데 그 부활하는 그 때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몸이 바로 부활의 몸입니다.

40절에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는데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 하셨습니다.

부활의 몸은 각자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구별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제자들이 알아본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에서 부활의 몸으로 만나게 될 때 서로를 알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분이 우리 어머니시다 저가 내 동생이다 저가 우리 교회 교인이다 등등의 구분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부활하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엄청난 돈을 들여 성형을 한 경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지선이란 분이 있습니다. 대학생 때 자동차 사고로 화재가 나서 전신 화상을 입은 분입니다. 화상이후로 심한 고통과 낙심을 겪었지만 믿음으로 이겨내고 수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 분의 부활의 몸이 현재의 화상을 입은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실 부활의 몸은 우리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장 도미니크 보비의 몸처럼 그의 영혼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몸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혼의 선한 뜻을 실현할 수 있는 그런 몸일 것입니다. 

아주 우아하고 아름답고 힘 있는 동작도 할 수 있고, 환상의 노래도 부를 수 있을 것이며 아름다운 기억을 그림으로 나타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타 생명체를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몸일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현재의 우리의 몸과 같이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여러 환우들이 계시고 안타까움과 고통 중에 계시는데 부활의 몸은 그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사야 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50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하셨는데 천국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부활의 몸을 우리에게 주신다 하심입니다.

 

우리에게 이 부활의 몸을 입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말씀을 마치면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하였습니다.

 

부활의 은총을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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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활의 몸
  • 2021-04-20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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