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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승천 하시다

  • 성경말씀 : 마가복음 16:14-20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1-04-25

2021년 4월 25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마가복음16:14-20

제목 : 승천 하시다

 

부활절은 대개 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에 들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부활절이 유월절이라는 음력에 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에 날짜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춘분 이후 첫 보름달 다음의 일요일로 부활절을 정하였습니다.

20세기 들어 음력으로 하니 날짜가 변동되어 양력 4월 둘째주일로 하자는 안이 있었고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올해는 4월 4일이 부활주일이라 부활에 관한 말씀들과 찬송을 계속 부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4월 말에 부활주일이 있으면 바로 5월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로 이어지면서 그 절기에 맞는 말씀과 찬송을 부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부활절기의 마지막 주일로 예수님의 삶을 탄생부터 승천까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둘째 아담으로서의 예수님의 일생은 첫째 아담들의 삶과 다르셨습니다.

첫째 아담들의 삶은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 먹었고(창3:6)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였으며(창3:12 이하) 형제를 죽였고(창4:8) 자신의 상처로 인하여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상함으로 인하여 소년을 죽이는 삶이었으며(창4:23) 자신들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고 결국은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둘째 아담 되시는 예수님의 삶은 이타적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첫째는 하늘 보좌에서 이 땅으로 오셔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성탄은 둘째 아담을 통해 나타내신 첫 번째 큰 진리입니다.

너희들도 첫째 아담들처럼 에녹성을 쌓고(창4:17) 바벨탑을 쌓고(창11:1 이하) 그 안에서 어떡하던지 높은 곳을 향해 자신을 위하여만 살려하지 말고 낮은 곳을 향해 사명의 자리로 가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선포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땅의 문명들도 배우고 가르쳐야 하지만 하늘의 진리를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은(막1:14-15) 둘째 아담에 속한 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셋째는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일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일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이익에 반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죗값을 대신 담당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죽기까지 감당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즉 나를 믿으려 하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하셨습니다.

 

넷째는 부활하신 일이었습니다.

사단의 권세는 사망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사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법을 폐하시고 생명의 성령의 법을 세우셨는데(롬8:2) 그것이 부활이셨습니다.

죽었던 몸이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 후에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 부활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볼 때 부활의 몸은

1.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 십자가의 상처가 있었듯이 현재의 우리의 삶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어 천국에서 서로를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며,

2.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눈앞에서 사라지시기도하시고 문을 잠그고 있었던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기도 하셨던 것처럼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할 것이며,

3.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 하셨으니 아프지 않을 것이며,

4.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할 것이라(사11:6 이하) 하였으니 타 생명체를 먹이로 삼지 아니할 것이며,

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라(고전15:51) 하셨으니 인종차별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차대전 때 유럽을 향해서는 감히 생각도 못했던 원자폭탄을 일본에 그것도 두 번이나 투하한 것은 일본인들 즉 비유럽인들을 인간 이하로 여겼던 세계관이 작용한 결과로 여겨졌습니다. 백인들에 의해 흑인들이 인종차별을 받더니 그 흑인들이 이제는 아시아인들을 차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6.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하셨으니 우리 존재의 가장 아름답고 주님의 뜻에 합당한 모습일 것이며,

7.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하셨으니(고전15:50)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리는데 가장 적당한 상태일 것입니다.

 

다섯째는 승천하신 일이었습니다.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부활의 모습을 게바에게 보이시고 열두 사도에게 보이시고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시고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시고 모든 사도와 바울에게 보이셨던(고전15:5 이하)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을 것으로 여겨지는 자리에 주님 승천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교회인데 바닥에는 예수님의 발자국을 본을 떠서 새겨 놓았고 지붕에 구멍이 뚫려 있어 하늘이 보이는 형태입니다.

주변에는 많은 무덤과 관들이 있는데 주님께서 이곳으로 재림하시리라는 생각에 재림하시는 주님을 처음 맞이하겠다는 그런 염원이 담겨있는 무덤들이라 합니다.

주님의 승천은 이 땅에서의 사명을 마치심이며 제사장으로서의 중보자로서의 사역을 위하심이며 또한 성령 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자 함이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승천하시기 전에 남겨진 제자들에 대한 당부와 약속의 말씀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눅24:33) 증거 하였지만 아직은 믿지 못한 상태에서 열한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이는 자기가 살아난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던 길에서 제자들이 우리 중에 누가 크냐? 의 문제로 다투었을 때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그것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잠시도 깨어 있지 못하고 잠들어 있을 때에도, 동산에서 체포 당하셨을 때에 주님을 버리고 도망하던 제자들에게도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에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던 때에도 나무라지 않으셨던 예수님께서 부활의 믿음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완악하다 하며 꾸짖으셨습니다. 

무엇보다 부활의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말씀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귀한 지상명령이 부활신앙이 없어 꾸짖음을 받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복음 전하는 자의 자격이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다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온전한 가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은 복음 전하는 자들을 향해 ‘당신들이나 잘 사세요’ 하며 힐난하기도 합니다.

저도 때때로 나 자신도 지키지도 행하지도 못하는 말씀을 설교하는 것이 가한 일인가 하는 고민이 들 때가 있습니다. 수사적인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실제적인 괴로운 고민입니다.

그 고민 끝에 늘 나의 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의를 전하는 것이다 하는 전가의 보도를 붙잡기는 하면서도 불편하고 죄송한 마음은 여전합니다.

그러하니 여전히 지금 우리가 부활신앙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일에 주저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갈 수 있는 곳에는 가야 할 것이고 갈 수 없는 곳에는 나를 대신하여 갈 사람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셨으니, 믿을만한 사람에게만 전하려 하지 말고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증거 하여야 할 것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이는 복음 전하는 자의 권세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복음 자체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러하니 이 복음이 그에게 전달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17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셨는데 여기서 믿는 자들은 모든 믿는 자들이 아니라 복음 전파의 사명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 말씀들은 바울이 멜리데 섬에 있었을 때에 계시적 사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이 멜리데 섬에서 모닥불을 피우기 위하여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음으로 인해 원주민들은 바울이 곧 해를 받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었다 하였습니다. 

바울에게만 있었던 일은 아닙니다.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복음 전파자들에게 일어난 일들입니다. 이 말씀을 어떤 특정한 상황을 연상하며 스스로 시험에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적은 가만히 앉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말씀을 따라 움직일 때 일어납니다.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하셨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가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믿게 하시는 이는 주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승천하시기까지의 일은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제 마지막 하나가 남아 있는데 그것은 주님의 재림입니다.

구약이 주님이 오시리라는 옛 약속이라면 신약은 주님이 다시 오시리라는 새 약속입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일들이 이와같이 역사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주님이 다시 오시리라는 말씀도 역사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는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재림 하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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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천 하시다
  • 2021-04-26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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