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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길이요 진리요 생명

  • 성경말씀 : 요한복음14:1-6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07-12

2020712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요한복음14:1-6

제목 : 길이요 진리요 생명

 

2014년에 개봉되어 천 만이 넘는 관객이 본 영화 인터스텔라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초 현대 우주물리학 등이 줄거리를 이루고 있어 난해하고 난감한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5천만 인구 중에서 1천만이 보았다는 사실에 대해 전세계 영화관계자들이 깜짝 놀랐고 대한민국의 지적 수준에 대해 경의를 표하게 했던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거대한 옥수수 밭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지구에 남은 유일한 곡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그 당시 최고의 과학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기후변화와 병충해 등으로 인해 먹을 거라고는 옥수수 밖에 없는 곳이 되었고 이는 지구가 더 이상 인류가 살아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상징이었습니다.

인류가 지구에서 수많은 시간동안 길을 가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길이 없는 곳에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끝나야 하는 그 시점에 주인공들에 의해 선택받은 소수들만이 지구에서가 아니라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 가서 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의 구조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렇게 낯설지 않은 것은 성경에서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출애굽이야기입니다.

더 이상 애굽에서 살 수 없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가로 막은 것은 홍해바다 였습니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도 바다를 처음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뒤에서는 애굽군이 추격해 오고 앞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건널 수 없었던 홍해 바다가 놓여 있었는데 그 바다가 하나님의 동풍에 의해 갈라지면서 길이 생겨 그들은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됩니다.

영화속에서도 주인공들은 블랙홀과 윔홀과 화이트홀을 통해서 난관을 넘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신비한 존재에 의해 미래의 주인공 자신이 과거의 딸과의 통신이 이루어지게 되고 그 블랙홀의 자료에 의해 인류는 비록 소수지만 다른 행성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도입부의 이야기는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구의 모습이 그대로인 것 같은데 먹을 것이 옥수수 밖에는 없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이러한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면 결국 그리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처음에는 주로 폐에 영향을 미치던 바이러스가 이제는 몸의 각 장기와 뇌에까지 악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과수화상병이라는 세균은 현재에 대책이 없어 나무를 뿌리채 뽑아 땅에 묻고 있습니다. 그 과수원은 최소 3년은 쓸 수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리 연구하고 노력해도 풀 수 없는 지식이 결국은 하늘로부터 오는 구나하는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우리 내에 있지 아니하고 위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어느 순간에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더 이상 없다 하는 절망의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사업의 실패이기도 합니다.

그로인한 감당할 수 없는 빚의 무게에 삶의 더 이상을 포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질병으로 인한 고통일수도 있습니다.

수시로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통증 거기에 더하여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는 통고는 삶을 더 이상 지탱해 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 상황들로 인해 인간은 안락사라는 법적 제도까지 만들기도 하였는데 기독교 신앙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동물들을 키우다 보면 가장 힘들 때가 그것들이 죽을 때입니다. 오래 전 키우던 고양이가 실을 삼켜서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거의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상자에 넣어 안 보이는 곳에 두고 어찌 되었나 가 보았는데 갈 때마다 가슴이 뛰고 배에 호흡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아직 살아 있구나 했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어느 곳에다 묻어 준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사무실 어항에 금붕어 한 마리가 배가 당장에 터질 듯이 부른 채로 며칠을 살고 있습니다. 새벽기도를 위해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불을 키며 첫째로 보는 것이 그것인데 아가미를 움직이는 것이 살아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명예가 삶의 가치의 상실이 그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삶의 그 어떤 것으로도 그것들을 지켜낼 수 없다고 여겨지기에 더 이상 길이 없고

한 발자국도 삶을 내딛거나 잠시만이라도 더 머물러 있기도 어렵다고 여기기에 포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누구도 그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고는 그 심정을 그 고통을 그 절망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길이 신데 이 길은 더 이상 그 어떤 길도 없다고 여겨지는 곳에서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출애굽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서 건넜던 홍해 바다의 그 길이란 말씀입니다.

내일 처형될 베드로가 쇠사슬에 묶인 채로 네 명의 군인이 네 조로 나뉘어서 지키고 있었던 몇 개의 쇠문 안에 갇혀 있었던 감옥에서 나갈 수 있었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래새인들에 의해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이 돌에 맞아 당장 죽을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살아서 걸어 나갈 수 있게 하신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유일한 길이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똑똑한 제자 도마도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길에 발자국을 남기시기 위하여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발자국을 따라가면 누구도 그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진리는 그러니까 너는 죽어야 해, 죽을 수밖에 없어하는 사단의 논리를 무너뜨리시고 생명으로 이끄시는 진리입니다.

이 지구의 모든 현상들이 그리고 이론들이 멸망을 말하고 있음에도 그 안에 생명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모든 거짓과 이간질과 두려움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신 예수님이 있는 자는 존재하는 자이며 생명이신 예수님이 없는 자는 그 존재가 없는 자입니다. 그럼으로 사단 마귀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나발처럼 아무리 혈기를 부리며 존재해도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며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며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며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 하셨습니다.

성만찬에서 떡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6:49-51에서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셨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이 세상에 옥수수마저 사라지게 된다면 모든 육신이 죽게 되겠지만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예비하신 거처에서 영원히 살 게 될 것입니다.

그 영화에서도 상대성이론을 넘어서게 하는 이론도, 블랙홀과 윔홀을 넘어서게 하는 속도도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에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 세상에 여기에 길이 있다 저기에 길이 있다 이 길이 참 길이다 하고 있고

이것이 진리다 저것이 진리다 하며 다투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모든 소리들이 조용해 질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까지 그 과정은 험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마치시고 자신이 떠나가야 할 때가 가까이 왔음을 말씀하시며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는데 다시 오리라 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너희에게 새계명을 주는데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새계명의 상대가 되는 옛계명은 레위기19:18의 말씀입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입니다.

차이를 살펴보면 옛계명은 사랑의 대상이 이웃입니다.

새계명은 제자들입니다.

옛계명은 그 정도가 네 자신과 같이 인데

새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함 같이 입니다.

 

교회가 서로 사랑의 힘으로 그 날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줄로 믿습니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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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교자
  • 1
  •  길이요 진리요 생명
  • 2020-07-17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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