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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부르심

  • 성경말씀 : 누가복음5:1-11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09-06

202096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누가복음5:1-11

제목 : 부르심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시며 온갖 병자들을 치유하셨을 때 많은 무리들이 아침부터 따라 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무리들을 이끌고 갈릴리 호수가로 가셨습니다.

호수 기슭은 경사면을 이루고 있고 낮에는 바람이 호수에서 육지로 불기 때문에 배를 타고 호수에서 말씀하시면 많은 청중들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알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마태복음16:3에 아침에 하늘이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하신 것으로 보아 그 당시 기상에 관한 상식을 알고 계셨습니다.

마태복음21:21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심으로 정치와 종교의 구별됨을 선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11:17에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하심으로 기뻐해야 할 때와 슬퍼해야 할 때를 알고 계셨습니다.

마태복음23:15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하심으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집단이기주의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참인간이셨습니다. 참인간이라 하심에는 상식적이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전해지는 믿는 자들의 말들 가운데도 비상식적인 말들이 횡횡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오시니 배 두 척이 있었고 어부들은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배에 오르셨는데 그 배는 시몬의 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배에 오르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요청을 하셨을 것이고 베드로가 허락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얻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사람이 넉넉하고 기분이 좋을 때는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상황이 여의치 못하면 남의 도움을 들어줄 여력이 마음에서부터 없습니다.

베드로는 어려운 중에 예수님의 청을 들어드린 것입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입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앉으사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말씀을 베드로가 그물을 씻으면서 들었던지 아니면 멈추고 들었던지 들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베드로가 순종하지 못할 이유가 세 가지는 충분히 됩니다.

첫째는 이미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고 이제는 그물을 다 손질해 놓았습니다. 다시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둘째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는 일에는 베드로가 누구의 말을 들을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에서는 낯선 분이었습니다.

셋째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베드로가 체면상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리 하지 않았고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였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셨는데 그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도 그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그와 같은 놀라운 믿음의 선언을 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도 수많은 안 되는 이유들, 안 해야 하는 이유들, 하지 싶지 않은 이유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넘어서는,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순종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구원은 한 순간이 아니라 과정이기에 어느 한 사건만을 말할 수는 없지만 그가 이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기에 시몬이 베드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도 듣고 다른 배의 동무 즉 야고보와 요한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 것은 베드로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으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기적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수많은 무리들도 똑똑히 이 광경을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 베드로의 순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지 볼 수 있게 하는 계시적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그 어느 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게 되면 그를 통하여 주님의 큰 은혜에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한 사람을 사모하시고 그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5:17-18에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이적을 생각할 때에 고기가 많이 잡혀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는 시점을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이적은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던 그 밤 내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기가 적당히 잡혔다면 베드로는 그 고기를 가지고 이미 집으로 갔었을 것입니다.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던 그 밤 내내 기적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기가 많이 잡히는 것도 이적이지만 한 마리도 안 잡히는 것도 이적입니다.

 

코로나19가 어떻게 드러나고 어떻게 결론을 만들어 갈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베드로의 그물에 물고기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듯이 지금은 마치 코로나19는 하나님의 역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움직이고 있는 듯 하고, 믿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나 바이러스는 과학의 영역이지 믿음의 영역은 아니라고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바이러스에 대하여 아무것도 안 하시고 아니 못하시고 계시는 것으로 여기고 있고 그래서 온전히 세상의 논리에 따라 행동하고 있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광신자나 어리석은 자로 여기고 있는 현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은 이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하시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것일까요?

저는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다만 그 일들이 당장 우리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요, 다른 면으로는 현재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것이리라 여겨집니다.

마치 베드로의 그물에 한 마리의 고기도 잡히지 않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현재 하나님이 아니 계신 것 같이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하나님이 어디에 피하여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들을 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17에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신 그 말씀의 의미입니다.

이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의 모습이 마치 베드로와 동료의 배가 잠기게 될 정도의 모습으로 그들뿐 아니라 호수가에 둘러선 수많은 이들도 보게 될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감추어졌던 주님의 모습이 보이는 모습으로 드러날 때 그 앞에 부끄러운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깃발이 시온산에 높이 세워질 때에 그리로 달려갈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던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났을 때에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은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운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죄인입니다 가 고백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복된 자입니다.

로마서1:28에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 하셨습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영을 만났는지 자기만 하나님 만난 것 같이 행동해서도 물론 안 됩니다.

독선적이고 비상식적인 믿음이 옳았던 적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은 두렵고도 기쁜 일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죽음을 향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 부르심입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있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제 갈길로 혹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삶은 언젠가 길을 잃게 되던지 길이 끊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더 이상 길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이 부름심이 있는 삶이길 기원 드립니다.

그리되면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찬양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들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하였습니다.

어려운 말씀입니다. 우선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가 그러합니다.

비트켄슈타인이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가 옥스퍼드 대학을 방문했을 때 그 유명한 케인즈가 말하기를 신께서 530분 기차를 타고 우리 학교를 방문하셨다 는 말을 남길 정도의 인물입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유산을 받을 때는 전세계의 부자대열에 속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유산을 그는 주변인들과 예술가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자신은 아주 소박한 삶을 평생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모든 것을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 하심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주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하고야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그렇게 응답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남은 삶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은총을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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