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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성령의 열매

  • 성경말씀 : 갈라디아서5:16-26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09-27

2020927일 주일낮 예배

성경 : 갈라디아서5:16-26

제목 : 성령의 열매

 

어느덧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겨울에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곧 끝나겠지 했는데 오히려 봄에 더 기승을 부려 꽃이 폈는지 졌는지 모르고 지났고 이어진 여름은 긴장마로 때를 알지 못하며 살았습니다.

해마다 기상이변이 심해지는 가운데 올해도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호주에서는 산불이 다섯 달 동안 꺼지질 않고 계속되어 한반도 면적만큼이나 태웠고 그 가운데 야생동물들이 10억 마리 이상이 해를 당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애팔래치아 산맥과 로키 산맥으로 보호를 받는 분지지형의 비옥한 땅인데 가뭄과 폭우와 산불과 돌풍 인종갈등 코로나 등으로 인하여 애굽에 임했던 열 가지 재난과 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인구가 세계의 4% 정도인데 코로나 확진자 700만과 사망자 20만은 세계평균의 21%에 해당하고 있는 것은 선진국인 점을 고려하면 특별한 상황입니다.

중국도 홍수로 인하여 오천만이 넘는 인구가 수해를 당해 대피를 했고 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여름 내내 비가 오는 날이 계속되었고 태풍과 함께 폭우가 쏟아져 일상의 삶과 농사에도 큰 피해가 있었습니다. 소들이 물에 떠내려 가다가 지붕위에 올라 있는 기이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고추는 90% 안 되고 사과는 전혀 안 될 것이라 합니다. 다른 곡물들도 30% 이상 감소할 것이라 합니다.

요즘 과일을 먹을 때마다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이런 과일이 익었나 경이롭기까지 하고 그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추수를 해낸 농부들에게 격려와 위로와 찬사를 보내며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오늘의 삶을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자연법칙은 자체의 생존을 항상 우선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으려 하고 열매를 남겨 종족을 이러가려 합니다.

때로 아스팔트 틈새에서도 풀이 나라나 씨앗까지 맺는 것을 보면서 형언하기 어려운 도전을 받기도 합니다.

모든 만물들이 자연법칙을 따라 사나 사람은 자연법칙을 넘어서서 도덕법칙을 따라 살려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성체들이 새끼를 키워내는 데 있어 사력을 다합니다.

가시고기는 자신의 알들을 지키기 위해 먹이섭취도 안 하고 외적을 지켜내다가 기진하여 죽는데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이 그 죽은 성체를 먹고 자라납니다. 그런 거미도 있고 살모사도 그렇답니다. 그런데 새끼들이 성체들을 위해 희생하거나 생명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힘을 잃고 늙어 버린 아비 어미들은 그 무리에서 도태되고 쫓겨납니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자식들이 부모를 위해서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는 일도 있고, 일면식이 없는 타자를 위해서도 그리 하기도 합니다.

인간 안에는 당연히 자연법칙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도덕법칙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자연법칙과 도덕법칙 뿐 아니라 신앙법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신앙법칙이란 말씀과 성령의 법을 말합니다.

사족을 단다면 신앙법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도덕법칙이나 자연법칙을 무시하고 사는 삶은 아닙니다.

마땅히 부모에게 드릴 것을 고르반 제도로 피해가려 한다든지 소금물로 양치하면 코로나 안 걸린다고 교회에 오는 교인들에게 소금물을 분무기로 뿌린 일 등이 그런 경우입니다.

신앙인들도 당연히 자연법칙과 도덕법칙을 알고 선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자연법칙의 열매는 과학과 경제라 할 수 있고, 도덕법칙의 열매를 진 선 미 라 한다면

신앙법칙의 열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첫째,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5:4에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의미상으로 이같은 것들이라 하셨습니다.

개인의 내면적인 부분도 있고 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부분도 있고 주님과의 관계에 관한 부분도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각각의 열매로 연상할 수도 있으나 한 열매 안에 깃들어 있는 여러 맛으로 여기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마치 사랑의 은사에 대하여 바울 사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의 은사를 15가지로 열거하시며 오래 참음, 온유, 투기하지 않음, 자랑하지 않음, 교만하지 않음, 무례히 행치 않음,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음, 성내지 아니함,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함,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함, 진리를 기뻐함, 모든 것을 참음, 모든 것을 믿음, 모든 것을 바람, 모든 것을 견딤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열매란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의 인격이며 삶입니다.

 

둘째, 육체의 소욕을 이겨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5:17에 육체의 소욕과 성령은 서로 대적한다 하셨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씨뿌리는 농부의 비유 중에 가시덤불이 곧 육체의 소욕에 해당합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육체는 우리 몸의 살과 뼈 등 가시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서 육체란 인간의 본성 중에 죄로 인해 타락한 부분을 말합니다.

이슬람은 샤리아법에 의해 손으로 죄를 지으면 그에 대한 형벌은 손을 절단합니다.

그렇게 하여도 손으로 짓는 죄가 잘려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18:9에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셨는데 그렇다고 주님께서 눈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죄를 짓는 것은 우리의 본성이요 인격이요 자아인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이기는 길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자의적이며 타의적인 대속적 희생입니다.

십자가를 짊이 자의적이며 타의적이라 함은 상황이나 타자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며 그러나 그것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라는 뜻이며,

대속적 희생이라 함은 그 목적하는 바나 결과가 타자의 유익을 위한 희생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세주가 되셨듯이 우리의 십자가에도 그와 같은 의미가 이루어 지는 면은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에 해당하는 육체의 일은 음행, 더러운 것(추행), 호색, 우상 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과 그와 같은 것들인데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육체의 소욕 중에 대표적인 15가지를 열거하신 말씀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타락한 본성이 피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마치 지구위에 사는 모든 존재들에게 중력이 작용함과 같습니다.

그런데 생명체들이 그 중력에지지 않고 중력을 이겨내는 힘을 갖게 됨으로써 비교적 자유롭게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들에도 마찬가지 의미와 역할이 있습니다.

음행, 더러운 것(추행), 호색, 우상 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과 그와 같은 것들인데 이것들을 견뎌내기 위하여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영적인 근육들을 얻게 됩니다.

이 싸움의 전리품들은 성령의 열매의 자양분들이 됩니다.

이 싸움 없이 이 싸움과 무관하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육체의 소욕과의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은 피해야 하고 피할 수 없으면 맞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싸움이니 우리도 이길 수 있습니다. 싸워 이기면 전리품들이 있습니다.

 

셋째,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그 뜻과 감동을 주실 때 우리의 인격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에 감동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고, 감동은 오는데 순종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감동은 오는데 뒤로 미루거나 타협하는 경우가 있으며, 감동이 오는 대로 순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하기를,

에베소서4:30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하셨고,

데살로니가전서5:19에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하셨고,

히브리서10:29에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지 말라 하셨고,

갈라디아서5:16에 성령을 따라 행하라 하셨고,

사도행전5:32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이라 하셨습니다.

불교에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 논쟁이 있습니다. 돈오점수는 깨달음이 오지만 그 깨달음을 수련을 통하여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고, 돈오돈수는 깨닫는 순간에 완성된 것이니 더 이상의 수련이 필요 없다 하며 돈오점수를 주장하는 이들을 아직 깨닫지 못한 자들이라 한 바가 있는데,

성령의 열매는 일반 열매들처럼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씨앗의 형태로 시작되며 점차 자라서 잘 익은 열매와 같이 됩니다.

그 과정에 있어 성령의 열매는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자라는 일인데

이를 위해 갈라디아서5:25-26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고(잘난체하지 말고),

서로 노엽게 하지 말고(싸움을 걸지 말고),

서로 투기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를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즉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음으로 해야 할 것을 함으로 성령의 열매가 자라가고 익어간다는 것입니다. 마치 열매가 낮과 밤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한 번에 완벽하게 되는 일은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오는 대로 뒤로 미루지 말고 타협하지 말고 순종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계절적으로는 추석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 가운데서도 감사한 추석을 맞이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어려운 날씨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은 곡식과 과일들처럼

우리들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귀한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되기를 원합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의 열매 없음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진짜같은 가짜 열매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고, 겉은 멀쩡한데 속은 썩어버린 열매가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심령 삶이 되시길 원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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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령의 열매
  • 2020-10-02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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