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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헛되지 않은 것

  • 성경말씀 : 전도서1:2-11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10-04

2020104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전도서1:2-11

제목 : 헛되지 않은 일

 

스승 소크라테스의 처형(BC399)을 지켜본 플라톤은 이 세상을 불완전한 비본질적인 헛된 곳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은 그림자이고 본질은 하늘에 있다고 여겼는데 그것이 그의 이데아 개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이데아가 지혜 용기 절제 친절 포부 정직을 통하여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라파엘로가 1511년에 바티칸 교황청에 그린 아테네 학당에는 플라톤의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은 땅을 향하고 있습니다.

문득 그 그림을 보면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손은 열병을 앓고 있는 여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고 나병환자들을 안수해 주셨으며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고 끝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후에 그 손의 못자국은 부활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손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고 무엇을 붙잡으려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기독교 철학의 완성자라 할 수 있는 어거스틴은 413-427년까지 14년 동안 하나님의 도성이란 책을 집필하는데 그 배경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이민족에 의해 망해가는 로마와 그 안의 교회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도성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안타까워 하지만 망하는 것은 이 세상의 나라이지 하나님의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 세상과 이 세상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망해야 할 것이 망해야 망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게 되기도 합니다.

 

전도서를 솔로몬의 글로 여긴다면 그는 주전 10세기의 인물입니다.

그는 이 세상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를 깨달은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전도서는 인생의 영광과 함께 실패를 경험하고 난후 생의 말년에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글은 헛됨으로 시작합니다.

전도서1:2에 헤벨 헤블림 아마르 코헬레트 헤벨 헤블림 하콜 헤벨!

헤벨이란 단어는 명사로도 형용사로도 쓰였습니다. , 호흡, 증발, 수증기, 안개, 어둠, 허무한 것, 무익한 사람, 망령됨이란 뜻으로 쓰였고 아담과 하와의 둘째 아들 이름이 아벨로 되어 있는데 그 뜻은 헤벨이었습니다.

그는 헛됨의 이유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해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헛되니 헛되다.

해도 바람도 강물도 무수한 끊임없는 반복을 이루는데 인간은 그 안에 잠시 있다가 사라질 뿐이니 모든 것이 헛되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차지 않으니 헛되다.

해 아래 새것이 없으니 헛되다.

결국은 기억됨도 없이 잊혀지니 헛되다 하였습니다.

 

헛된 일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첫째 내가 나를 위하여 한 일들이 헛되다 하였습니다.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고, 남녀 노비들, 은금과 보배들, 웃음들, 희락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헛되어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들이었다 하였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하는 일들은 내가 행복하기 위한 것인데 내가 나를 위하여 한 일이 나의 행복으로 계속 이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하는 일들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타자를 위하여 무언가를 할 때 행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이루는 행복이 최종적 목적이 아니라 그 행복으로 타자를 위하여 일할 힘을 얻을 때 계속되는 행복이 됩니다. 헛된 일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타자를 위하여 일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로는 좋은 열매가 맺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좋아서 교회를 다녀야지 억지로 다니게 되면 억지로라도 다니게 되는 것이 은혜이기는 하나 덕이 없고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신의 행복만을 위하여 한 일들은 결국은 헛되더라는 것입니다.

 

둘째 해 아래에다 이루어 놓은 일들이 헛되다 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해 아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 위에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해 아래가 전부인냥 해 아래에다 모든 것을 쌓아 놓았으니 헛된 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6:19-20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하셨습니다.

 

셋째 이 세상의 시간에 맞추어 놓은 일들이 헛되가 하였습니다.

전도서3:1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하였습니다.

이 때는 크로노스라는 인간이 만들어 놓는 때가 있고 카이로스라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추어서 살아야 하는데 내 시간표에 맞추어서 살려고 합니다.

야고보서4:13-16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심은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삶을 통하여 깨닫고 훈련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무관하게 내 시간표 위에다 쌓아 놓은 것들은 결국 헛된 일이 됩니다.

믿음이 깊어지면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도 알게 됩니다.

때가 되기도 전에 시험지를 풀어도 무효이고 때가 지나서 답을 써도 무효입니다.

 

예수님께서 헛되게 여기신 것들이 무엇이었나 복음서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첫째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헛된 것으로 보셨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과 기도가 그러하고 마태복음23:23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신 것처럼 선택적으로 지키는 율법이 그러하다 하셨습니다. 선택적 정의는 정의가 아니며, 선택적 기억도 기억이 아닙니다.

선택적으로 지키는 율법이 외식이고 헛된 일입니다. 그것으로 자신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타자를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을 위하여 쌓아 놓은 부자의 재물이 그러하다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20에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신 말씀입니다.

 

셋째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에 대한 걱정이 그러하다 하셨습니다.

마태복음6:25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하시며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근심하고 염려했던 일의 열에 아홉은 일어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헛된 일들로 인하여 정작 해야 하는 헛되지 않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헛되지 않게 여기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소자에 대한 친절입니다.

마태복음10:42에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둘째는 겨자씨와 같은 믿음입니다.

누가복음17:6에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하셨습니다.

 

셋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생입니다.

마가복음10:29-30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전도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에 헛되지 않게 되는 길이라 하신 것입니다.

 

첫째,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도서12:1) 하였습니다.

 

둘째,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12:13) 하였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실 것을 명심하고 살라 하였습니다(전도서12:14).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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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헛되지 않은 것
  • 2020-10-08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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