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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부활의 복음

  •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15:50-58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04-19

2020419일 주일낮 예배

성경 : 고린도전서15:50-58

제목 : 부활의 복음

 

잠자리와 하루살이가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때가 되어 하루살이에게 내일 다시 만나자 하고 가려하자 하루살이가 되묻기를 내일이 뭔데?” 하였답니다.

제비와 잠자리가 한 여름 내내 같이 지내다가 가을이 되어 강남가면서 내년에 다시 만나자 하자 잠자리가 내년이 뭔데?” 하였답니다.

어느 분이 임종을 앞두고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하자 그 중에 어느 분이

천국이 어딘데?” 하였답니다.

 

이천년 전 아마도 같은 해에 아주 중요한 세 분이 태어납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과 사도 바울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서 태어나셨을 때에 사도 바울은 지금의 터키 땅인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역할을 하였고, 예수님은 메시야의 사역을 이루셨으며, 바울은 예수님 복음의 전파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유대교에 열심이 특심한 자였는데 예수님께서 해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그 해에 있었던 안수집사 스데반의 처형에 증인역할을 하였으며 그 후에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선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 믿는 자들을 압제하기 위해 다메섹에 갔었을 때가 예수님 부활 승천하시고

4년 쯤 되었을 때입니다.

그는 다메섹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뵈옵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소위 사울이 바울 되는 거듭남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 이후로 그는 예수님의 복음을 가장 많이 전파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약 20년에 걸쳐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을 다니면서 전도하였는데 그 거리가 지구 둘레의 반 정도가 되는 20,000km 정도 였습니다.

그는 신약성경 27권 중에 13권의 저자로 나오며 히브리서의 저자일 가능성이 있고,

그의 제자라 할 수 있는 누가를 통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할 수 있게 하였기에 그 영향력이 특별한 분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는 주후 55년경에 에베소에서 작성하여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고린도전서 중에 15장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주후 55년이니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약 25년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고전15:12에 보면 그 때에 고린도교회 내에서 죽은 자 가운데 부활이란 있을 수 없다 하는 이들과 그 가르침들이 있었다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 불신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기독교인 가운데서도 많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몇 가지 증거와 사실과 논리를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들이 있다 하였습니다.

게바와 열두제자와 오백여 형제들과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에게 보이셨는데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다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바울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시어서 바로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기간이 40일 동안 부활의 모습을 택한 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둘째는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섭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고전15:15에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합니다.

저도 얼마동안은 이 말씀의 뜻이 어려웠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도 꼭지점이 네 개인 삼각형은 만드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이미 하나님 안에 부활이라는 섭리가 계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1:20에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였는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살펴보면 부활이 있다는 것을 여러 모양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루의 삶에서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다시 깨어나는 것도 그러하고, 한 해의 삶에서 겨울에 죽은 것과 같은 나무들이 봄이 되어 새싹을 내는 것들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부활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는 저들의 가르침은 잘못된 것이라 하였습니다.

 

셋째는 부활의 순서를 증거 하였습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며 그 다음으로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속한 자의 부활이 있을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주님 재림 하실 때에 살아 있는 자들도 부활의 몸으로 변화 되리라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주님 재림하실 때에 살아 있다면 재림의 나팔소리와 함께 부활의 몸으로 변화 될 것입니다.

 

넷째는 몸의 부활을 강조하였습니다.

몸의 부활은 개별자의 인격적 부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부활한 이들은 각자 구별된 인격으로의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 세상에서의 삶과의 연속성을 말합니다. 우리의 기억이 이어진다는 의미이며 그래서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부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일 그러한다면 장애가 있다든지 노화가 심하다든지 원치 않는 모습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설명하기를 우리가 땅에 씨를 뿌리지만 씨앗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형체가 나오는 것처럼 부활의 몸도 그러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고전15:38에 하나님이 그 뜻대로 형체를 주시는데 해의 영광이 다르며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도 다르다 하였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나라고 하는 속성의 가장 아름다움으로 부활의 몸을 주실 것입니다.

기대 하시기 바랍니다.

이 부활의 몸은 첫 사람 아담의 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따르는 것이기에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이 될 것인데, 썩는 육의 몸으로는 썩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다섯째 육의 몸은 죄와 사망의 법을 따르게 되지만 부활의 몸은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르게 된다 하였습니다.

더 이상 죄와 사망이 쏠 수 있는 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픔과 고통과 유혹과 시험에 빠지는 몸 그리하여 죽음이 임하는 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으로 이끄시는 성령을 따라 사는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생명의 가장 풍성함입니다.

 

이 일들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증거되고 약속된 부활의 복음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 앞에서 무덤에서 도망간 제자들이 무엇 때문에 다시 돌아왔겠습니까? 그리고 돌아와서는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그가 부활하셨다는 진리를 전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겠습니까?

유일한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고전15:19의 말씀처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입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영생의 부활이 있고 영벌의 부활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 앎이니라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부활신앙으로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며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부활의 날에 우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았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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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활의 복음
  • 2020-04-24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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