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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고난의 교훈

  • 성경말씀 : 시편119:65-72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04-26

2020426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시편119:65-72

제목 : 고난의 교훈

 

1755111일 카톨릭의 만성절에 포르투갈 리스본의 성당들에는 신자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오전 940분 대지진과 이어진 해일이 몰려왔습니다.

이로 인해 약 35천명 정도가 사망하였습니다.

당시 리스본은 당대 유럽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독실한 카톨릭 신앙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사제들은 지진은 죄악에 물든 도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며 생존자들을 꾸짖고 죄목들을 열거하였습니다. 탐욕과 방종, 나태, 부패, 그리고 이교적 신앙 즉 신교도들을 묵인한 나약한 신앙심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재난 인식은 신앙적 응답으로 회개를 요구하였고, 명상과 참회기도에 매진하게 하였는데 이런 응답은 현실도피나 반사회적 모습이 되기도 하여 교회가 도시 복구나 사회 회복에 기여하지 못하는 집단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의 칼뱅교도들과 영국의 웨슬리는 리스본 지진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인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그 이유를 미신과 우상숭배, 로마 카톨릭 의식에 대한 심판, 잔인한 종교재판소에서 사람들을 비열하게 살해한 데 대한 응징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나 구교든 신교든 재해의 원인을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돌리는 것을 신성모독으로 보았습니다.

반면에 당시대 철학자 볼테르나 칸트는 자연악과 인간이 저지른 도덕적 행악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없음을 주장하였습니다.

루소 등의 자연과학자들은 지진은 단순한 자연현상이며 피해자들은 운이 없었을 뿐이며 회개보다는 재건 활동에 참여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흑사병은 14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이 있었던 16세기는 흑사병의 시대이기도 하였습니다.

츠빙글리는 15191월 취리히의 목회자로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얼마 있다 흑사병이 도시에 들어오면서 당시 7000명이었던 인구 중에 20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츠빙글리도 9월말에서 11월 중순까지 병중에 있다가 살아남았습니다.

그 기간을 지내면서 이런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주님, 나를 도우소서 나의 힘, 나의 반석이시여, 문밖에서는 죽음이 문 두드리는 소리,

나를 위해 못 박히신 당신의 손을 높이 들어서 죽음을 정복하시고 나를 구원 하소서,

그러나 당신의 음성이 내 생애의 한낮인 지금이라도 내 영혼을 부르신다면 나는 순종 하겠나이다, 신앙과 소망 안에서 이 땅을 포기하고 천국을 얻고자 하나니 나는 당신의 것이니이다. 이 체험은 그를 종교개혁자로 끝까지 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루터는 1527치명적 흑사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소책자를 출판하였는데 당시 어떤 사람들은 전염병은 하나님이 내린 형벌이기 때문에 그것을 피해 도망하는 것은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불신앙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약을 먹어라 집과 마당과 거리를 소독하라 사람과 장소를 피하라,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악한 자가 독과 치명적인 병을 퍼트렸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 자비를 베푸셔서 우리를 지켜 달라고 간구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누구든 어떤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하였습니다.

루터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신뢰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67절에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하였고, 71절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하였습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세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 고난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며 회개하게 합니다.

고난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 많은 부분은 고난당하는 자의 허물과 죄 어리석음이 들어 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고난이 죄 때문이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의 세 친구는 찾아와서 욥의 고난이 너의 죄 때문이라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하신 말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욥이 죄가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결국 욥도 그 고난들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됩니다. 42:5-6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하였습니다.

형통할 때에 회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사기 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형통할 때는 오히려 하나님을 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 민족들의 침입과 약탈 박해 등으로 고난이 닥치자 그 때부터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고난 혹은 재난이 온다고 다 회개하는 것도 아닙니다.

출애굽때 애굽의 바로는 10가지 재앙이 미쳤지만 더욱 강팍해 갔을 뿐 회개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형에 처해졌던 두 강도중 하나는 끝내 회개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우리는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우리가 이 때를 지나면서 타자를 원망만 한다든지, 손해를 아쉬워만 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외면한 채 인간 중심적으로만 살아왔던 우리의 잘못된 삶들을 회개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들을 종류대로 만드셨는데 이는 종류대로의 삶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만물의 청지기로서 그 종류대로의 삶을 비켜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너무도 인간중심적으로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각 종류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일, 공장형 축산, 종의 멸종 등에 대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어느 분이 크릴오일을 한 갑 가져오셨습니다. 먹어야 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크릴은 남극 생명체들의 풀과 같은 역할인데 특히 펭귄들도 이 크릴을 먹어 위에 저장하였다가 새끼들에게 가서 토해서 먹이로 주는 것인데 이제는 사람들이 몸에 좋다고 그 크릴을 압축하여 눈꼽 만큼 나오는 기름을 먹기 시작함으로 남극 생태계가 심히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각 종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박쥐에서 조류에서 파충류에서 나온 바이러스들이 인간에게 전이되어 역병을 면역력이 없는 역병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7:26에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각자 각 가족 각 민족 각 나라 각 공동체의 경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힘 있는 집단이 이 경계를 인정하지 않고 침략하고 약탈하는 역사를 이루어 왔습니다.

1648년의 베스트팔리아 조약도 종교적 문제 뿐 아니라 각 민족 나라의 경계를 인정한 조약이었는데 이 역시 힘의 논리에 의해 수시로 무너졌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거대 자본과 기술들이 전 세계를 약탈과 수탈의 대상으로 삼고 있어 무한경쟁과 노예화되어 가는 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거대한 담론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문제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회개를 해야 할 것입니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신천지라는 이단집단이 저렇게 악을 조장하고 위협적인 상태에 있으며 그 안에 수많은 영혼들이 빠져 있음에도 우리가 너무 무심하게 살아왔던 잘못된 삶들을 회개 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얼마나 이기적 존재들인지도 다시 한 번 회개 하여야 할 것입니다.

위험과 두려움이 우리 앞에 다가 왔을 때 우리가 얼마나 순간적으로 이기적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사실은 이기적 존재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들에게 의존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고난은 고난 속에 있는 자들을 연단하여 새롭게 합니다.

우리들은 재난 혹은 고난의 형태로 찾아오는 일들을 통하여 주의 율례를 배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배신하게 되는 고난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지만 그 결과는 다르게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파멸의 길로 가게 되었고 베드로는 오히려 더욱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난의 기간을 헛되이 보내게 되면 그 다음이 없습니다. 운동선수가 연습시간이 고되다고 적당히 쉽게 그 시간을 흘려보내면 아무런 성취가 없게 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는 코로나19라는 고난 속에서 온 국민이 합심하고 힘을 다하여

전 세계의 귀감이 되는 자리로 도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적으로도 초기에 문제가 일부 있었지만 단순한 폐쇄가 아니라 방역규칙 등을 모범적으로 시행하여 일반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교회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이 기간을 통하여 교회의 중요성을 깨닫고 더욱 온전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며, 코로나19를 핑계로 나태해지는 신앙이 아니라 스스로 경건의 훈련을 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고난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게 합니다.

선악과를 범한 인간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교만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난이 오기 전에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안다고 하는 것이 인간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실상 아주 제한적으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렇고 세상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서로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바울 사도께서 로마서11:33에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지금은 다 알 수가 없습니다. 때가 되면 그 일을 드러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난 속에 있는 자들은 현재 고난의 의미를 다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 일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계심을 믿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일에도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계시다는 지혜와 믿음을 고난을 통하여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기간을 통하여 그러한 겸손과 지혜와 믿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 기간을 헛되이 보내지 아니하고 단순한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며 주의 율례를 배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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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난의 교훈
  • 2020-05-01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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