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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소금과 빛 되는 교회

  • 성경말씀 : 마태복음5:13-16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07-05

202075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마태복음 5:13-16

제목 : 소금과 빛 되는 교회

 

2020년 우리 교회의 표어는 소금과 빛 되는 교회입니다.

올해 첫 주일에 이에 관한 말씀을 드렸고 하반기를 시작하는 첫 주일에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교회에서의 시간은 줄어들고 세상에서의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우리의 예배나 신앙생활을 제한하는 듯한 면이 있지만 이 울타리에 갇혀서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만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 속에서도 복음을 가두려 하는 수 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복음은 상황에 갇히지 아니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냈습니다. 오히려 이 위기가 주는 기회를 살려야 할 것입니다.

유럽의 교회들이 이미 교회당 안에서는 비어 가고 있지만 그래도 소망이 되는 것은 그들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한 주도 출석하지 않으면서도 그리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52주 출석을 하면서도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게 사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들도 이제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로의 전환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듣는 무리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하여 앞으로 내가 생명의 떡이 될 것이다 하지 않으시고 생명의 떡이다 하신 것처럼 무리들에게도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라 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소금과 빛이 되었으며 그러하니 소금과 빛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소금과 빛으로 살되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하셨습니다.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훈련의 장소입니다. 실제적으로 일이 이루어지고 전투가 이루어지는 곳은 세상입니다. 교회 안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좋은 소금과 빛이 되어서 세상에 나가 그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어느 단체에서 30여 분과 외부행사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몇 시간 대형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었는데 조금 더운 날씨였습니다. 조금 가다가 뒤에서 덥다고 에어콘을 켜 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운전기사분이 그리했습니다. 조금 가다가 중간쯤에서 춥다고 에어콘을 꺼달라고 했습니다. 운전기사분이 그리했습니다. 조금 가다가 어느 분이 덥다고 에어콘을 켜 달라고 했습니다. 운전기사분이 그리했습니다. 조금 가다가 어느 분이 춥다고 에어콘을 꺼달라고 했습니다. 운전기사분이 그리했습니다. 조금 가다가 어느 분이 덥다고 에어콘을 켜달라고 했습니다. 이 일이 그 일정 중에 다섯 번이 넘게 되풀이 되었습니다. 그 버스에 탄 모든 이들은 교인들이었고 오직 기사분만 기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그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버스 안에 에어콘은 한 대인데 누구는 켜라하고 누구는 끄라하면 저는 도대체 어떡해야 합니까? 내가 더우니 덥다할 수 있고 추우니 춥다 할 수는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며 가던 기독교인 모임이었는데 믿지 않는 그 기사분이 보았을 때 어찌 생각을 하였을까 저들도 자기 입장만 생각하며 사는 구나 하지 않았겠습니까?

올해는 우리가 교회에서도 믿음생활 잘 해야겠지만 세상에서 더욱 믿음생활 잘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에도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신 말씀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소금과 빛으로 살라는 말씀은 그 본성을 따라 그 본성에 맞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소금과 빛의 본성은 순결함입니다.

소금은 가장 순결한 태양과 바다가 만들어 내는 결정체이며 빛에도 다른 요소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도피해서도 안 되겠지만 야고보 1:27의 말씀과 같이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순결함이 삶으로 표현된다면 그것은 정직함일 것입니다. 잠언서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두 단어를 꼽는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씀과 정직하라는 말씀입니다.

 

소금과 빛의 두 번째 본성은 썩지 않게 하며 어둠을 물리치는 역할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있음으로 인해 부정한 말이 쉽게 나오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태어난 사회를 청결케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거리에 있는 휴지를 줍는 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의 삶의 경건성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오 헨리 단편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아원에서 두 아이가 자랐습니다. 한 아이는 남자아이였는데 고아원에서도 그러했고 고아원을 나와서도 험하게 살았습니다. 이 날도 소매치기를 하려고 멀리서 오는 여자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여자아이가 마침 가로등 밑을 지나가고 있을 때 그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그 남자아이와 같이 고아원에 있었던 여자아이였습니다. 그때도 그러하였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여자아이의 얼굴은 마치 천사와 같았습니다. 남자아이는 어둠속에서 얼굴을 감싸 안으며 아! ! 나는...... 하고 그 소설이 끝이 납니다. 굳이 사족을 붙이자면 그 여자아이의 순전함이 이 남자아이의 부패를 그치게 한 것입니다.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힘은 공의로움입니다. 공의가 무너지면 세상은 썩게 되고 어둠이 깃들게 됩니다.

공의로움이란 주고 받는 것이 공평함입니다. 물건을 팔 때 쓰는 저울과 물건을 살 때 쓰는 저울이 같은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공의를 무시한 회사가 성장할 수는 있지만 끝내 무너지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세상의 어둠과 부패를 방지하는 데 한 역할을 하는 우리 광동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금과 빛의 세 번째 본성은 맛을 내고 따듯함을 준다는 점입니다.

적당한 양이 들어간 소금은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음식을 전혀 새로운 음식인 냥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추운 겨울 모닥불은 둘러선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녹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있는 세상이 우울한 곳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광동교회가 이 마을에 있음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더 이 마을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은 일일 것입니다. 광동교회가 천국으로 향하는 열린 문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교회에 마당이 있고 꽃이 있고 나무가 있고 연못도 있고 해서 그 역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조금 남았지만 우리가 마당이 되고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연못이 되어서 그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마을에 광동교회가 있어서 참 좋다 하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우리교회에 열려 있는 곳이 네 곳 있습니다.

첫째는 본당입니다. 필요한 방역절차는 거치지만 누구나가 와서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지역아동센터입니다. 긴급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열려있습니다.

셋째는 전도센터 및 재활용품매장입니다. 교인들조차 교회를 가려하지 않는 시대에 꾸준히 마을주민들이 재활용품을 기증하기 위해 그리고 구입하기 위해 들리고 있습니다.

넷째는 1층 화장실입니다. 상당한 분들이 이용하는데 그러기에 더 청소와 소독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더 좋은 환경의 화장실로 가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금과 빛의 교훈을 말씀하시며 무리들에게 당부하신 점이 있습니다.

소금은 그 맛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하셨습니다. 물리적으로 소금이 그 맛을 잃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암염은 소금기가 빠져 나간채 모양만 유지하기는 합니다.

그렇다면 소금은 그 맛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초대교회 때 배교를 했던 신자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그들은 교회의 문 입구에 누워 나를 밟고 지나가십시오 나는 맛을 잃은 소금 이었습니다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소금이 맛을 잃는 것이 됩니다.

소금의 역할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소금이 녹지 않는 것입니다.

소금이 만일 다른 물질로 덧 씌워져 있다면 녹지 않는 소금이 될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돈이나 정치나 생존 혹은 성장으로 덧 씌어져 있으면 그리됩니다.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보려 하는 일입니다.

소금이 소금됨은 손해를 보는 일입니다.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가 타지 않고 촛불을 밝힐 수 없습니다. 자기를 태우지 않고는 빛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손해 보는 삶이셨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 보좌에서 말구유로 오셨으며, 그의 평생 사역을 통해 세운 제자들은 열둘이었고 그 중에 하나는 배반자였으며 나머지 열하나는 도망자였습니다. 머리 둘 곳이 없으셨고, 책 한 권 남기지 않으셨으며 끝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내어 주셨으면서도 미련한 자 혹은 거리끼는 자로 여김을 받으셨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 거룩한 손해를 통해서 세상을 얻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안전과 생존에 있지 않고 대속과 구원에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근심거리가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주님은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문 걸어놓고 집 안에 있었던 제자들처럼 살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들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힘은 주님의 부활과 성령님의 임하심이었습니다.

소금과 빛 되는 교회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올해 우리가 이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은 이것이 주님의 명령이시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명령하실 때에는 되게 하시는 은혜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이 길을 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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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과 빛 되는 교회
  • 2020-07-10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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