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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아합의 죄

  • 성경말씀 : 열왕기상21:1-10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06-28

2020628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열왕기상21:1-10

제목 : 아합의 죄

 

아합은 열왕기에서 다윗 다음으로 길게 그 기사가 소개되는 북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열왕기상 16장에서 시작해 22장에서 그의 죽음이 나옵니다.

남유다는 다윗 왕조가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이어지는데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왕조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왕조들이 반역을 통하여 들어섭니다.

그 중에서 오므리 왕조는 북이스라엘의 전성기를 구현할 정도로 세력이 있었고 아합은 그 오므리의 아들입니다. 그는 왕이 되어 이스라엘에서 22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왕상16:30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다 하였습니다. 오므리 왕조는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북이스라엘을 크게 부흥시킨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보시기에는 악을 행한 이들이었습니다. 바울도 고전4:3-4에서 남들에 의해서도 나 스스로도가 아니라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하였습니다.

이 이후 그에 대한 기록은 선한 것은 하나도 없고 악을 행한 일들입니다.

그는 죄를 가볍게 여겼다 하였고,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으며,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전을 건축하였으며,

아세라 상을 만들고 섬겼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아합에게 가서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는 것도 큰일 이지만 이슬까지 내리지 않는 것은 재앙이었습니다. 아합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셨지만 아합은 그리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36개월 후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게 되었는데 아합은 자신이 아니라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죄는 죄를 죄로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 합쳐서 850인이 그들의 신을 부르며 불을 간구하였고, 엘리야 혼자 여호와 하나님께 불이 임하기를 간구하는 일이 아합 앞에서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불이 엘리야의 제단에 임하자 그제서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였지만 아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이 일 후에 큰 비가 내렸지만 그럼에도 아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합의 부인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은혜를 통해서 회개의 기회를 주셨는데 회개하지 않자 이제는 고통을 통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회개의 기회는 멀리서부터 징조를 보내주시는데 대개는 깨닫지 못하고 그 몸을 치실 때에야 인정하고 엎드리게 됩니다.

아람의 벤하닷 왕이 그의 군대를 모으고 이스라엘을 침략해 수도인 사마리아를 에워쌌습니다.

벤하닷은 아합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네 은금은 내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것이니 내게 넘기라 하였습니다.

이 절망의 순간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에 왕상20:13에 보면 한 선지자가 아합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하였습니다.

도저히 이길 주 없었던 이 전쟁에서 아합의 북이스라엘은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이리 되어도 아합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몰랐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가 되자 아람은 재차 침략해 왔습니다.

아벡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여전히 이스라엘 자손은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와 같았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다시 아합에게 이르기를

아람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는 산의 신이기에 지난번에 우리가 패하였지만 이번에 골짜기에서 싸우면 우리가 이기리라 하나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하셨습니다. 아람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그리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그리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시라도 이 일은 못하실 거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시라도 코로나19에는 어찌하실 수 없다고 여기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안 하시는 것과 못하시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경한 일입니다.

그 말씀대로 산이 아니라 골짜기에서의 전쟁이 대치된 지 7일이 지나서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 만 명을 죽이게 하셨고 도망한 자 27천명은 성읍이 무너져 죽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자기 판단대로만 행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고 무시하였습니다.

항복하러 온 아람의 벤하닷을 병거에 올리며 이는 내 형제라 하였습니다.

경건이라 함은 하나님을 닮음인데 이는 하나님이 좋아 하시는 것을 나도 좋아하고 하나님이 싫어 하시는 일을 나도 싫어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보내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하였는데 그는 그 말씀 앞에서도 왕상20:43에 보면 단지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합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죄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합의 왕궁 가까이에 나봇이란 사람이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합은 나봇에게 그 포도원을 내게 넘겨 나로 하여금 채소밭을 삼을 수 있게 해 달라

하였습니다.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하였습니다.

당연히 받아들여질 것으로 여겼던 이 제안에 대하여 나봇은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며 거절하였습니다.

나봇은 그 두려운 상황에서도 왕의 요청 대신에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려 하였습니다.

이리 되자 아합은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 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합의 부인 이세벨은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 하였습니다.

편지를 받은 그들은 편지대로 하였습니다.

왕도 악하고 왕비는 더 악하였으며 백성들도 악하였습니다.

이세벨은 아합에게 나봇이 돌로 맞아 죽었으니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라 하였습니다.

그 말을 따라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으로 내려가던 중에 엘리야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하셨음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엘리야를 만난 아합은 오히려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묻습니다.

아합은 자신의 죄에 대해 무지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심판을 듣자 아합은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녔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회개의 모양은 취하고 있지만 회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가 나봇을 죽인 것을 회개하고 나봇의 포도원을 다시 돌려주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받아들일뿐입니다. 바울도 로마서11장에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리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을 찾지 못할 것이로다

하였습니다.

말씀대로 아합은 전쟁에서 죽어 묻혔고 그의 첫아들 여호아하스와 그를 이은 둘째 아들

여호람 때에 예후에 의해서 말씀하신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모든 후손들이 멸절되었고, 이세벨은 그의 피를 개들이 핥았습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바라보면서 아합과 그의 일생과 그의 죄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세상은 방역과 백신과 치료제에 관심이 많고 그를 위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교회도 당연히 이 일들에 관심이 많고 방역에는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교인들이 해야 할 일은 방역이 아니라 회개인 것 같습니다.

아합의 죄를 통하여 우리들의 죄를 볼 수 있기를 바라고, 그 일에 대한 회개가 있기를

주님께서 바라고 계시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합은 이런 저런 죄를 많이 지은 인물이었고 그에게 많은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개하는데 실패한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한국교회의 죄가 무엇인지 우리들 각자의 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으려 합니다.

코로나19는 한 사람 아담의 죄가 어떻게 모든 이들의 죄가 될 수 있는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죄를 차단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죄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느 곳보다 방역에 힘써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우리가 할 일은

나와 우리와 온 세상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회개가 있고, 하나님께서 회개하게 해 주셔서 하는 회개가 있습니다.

이 일에 주님의 은총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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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합의 죄
  • 2020-07-03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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