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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피조물의 탄식

  • 성경말씀 : 로마서8:19-22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7-01-22

성경 : 로마서 8:19-22

제목 : 피조물의 탄식

 

현재 시중에 계란값이 30개 기준으로 9300원 정도 한답니다.

한 개에 310원입니다. 오르기 전에는 140원 정도 했었답니다. 두 배 넘게 오른 것인데 이것도 외국에서 정책적으로 수입을 해서 시중 가격을 낮추었기 때문이랍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하면 조류독감으로 인하여 삼천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가 살처분 되었기 때문입니다. 살처분이라는 말의 실제적 모습은 생매장입니다. 조류독감은 자연에 철새 등에 있는 것이고 자연상태에서는 폐사율이 그렇게 높지 않은데 공장형축산으로 사육되어지고 있는 가금류들은 면역력이 없어서 대단위로 전염되고 폐사되는 것입니다.

이 보도를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 이 사태가 종결될 것인가입니다.

종결의 의미는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이 아니라 계란값이 다시 140원으로 되는 것입니다.

140원짜리 계란이 만들어지기 위하여 알에서 부화한 병아리 중에 수평아리들은 모두 기계장치 속에 밀어 넣어져서 으깨집니다. 암평아리들은 자라나서 부화 후 5일이 되면 벌겋게 달아오른 칼로 부리가 잘립니다. 서열을 중시하는 고도의 사회성 동물인 닭은 서로 쪼아 상처를 입히는 일이 많은데, 이를 막기 위한 작업이라고 합니다. 1분에 15마리 속도로 부리 앞부분의 4분의 1을 잘라내는 과정에서 코가 베어져 죽는 일도 생긴다고 합니다.

부리가 잘린 산란용 암평아리들은 사료를 먹을 때만 불이 켜지는 어두운 양계장으로 들어가 120일 동안 몸집을 불립니다.

닭은 빛에 민감한 동물이고 빛을 좋아하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빛을 잘 느끼지 못하는 새벽에도 닭은 깨어나서 훼를 치는 것입니다. 불교용어에 계명정진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닭울음소리를 들으며 하는 수행을 말합니다.

그런 닭이 평생 햇빛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그 뒤로 특수하게 제작된 사방 30cm 정도 되어 날개도 한번 펼 수 없는 철망상자에 들어가 먹은 사료를 계란으로 바꾸어내는 기계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닭은 원래 새였습니다.

철망상자에 들어가 1년이 지나면 닭은 하루에 한 개 이상의 계란을 낳던 속도를 맞추지 못하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강제 털갈이를 당하고 두세 달 동안 더 알을 낳다가 도살된다고 합니다. 참고로 닭의 자연 수명은 30년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소리들이 피조물의 탄식입니다. 우리들은 이 피조물의 탄식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적으로는 계란값이 천원이 된다 할지라도 닭이 닭으로서 적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공장형 축산을 반대하는 일입니다. 동물복지에 대한 생각과 의지를 갖는 일입니다.

동물복지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이해를 주제로 토론회가 있었는데 노영상 박사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값싼 고기를 팔기 위해서라면 사육당하는 동물들에 대한 존중 따위는 사치일 뿐이라는 생각이 만연돼 있다동물의 생명이 하나님 앞에 잘 보호될 때 인간의 생명도 함께 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실제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종의 경계를 넘어 인간을 감염시키고 그 결과가 치료나 통제가 불가능한 사태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삼천만 마리가 생매장 되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악의 덩어리와 힘이 종의 경계를 넘게 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종의 경계를 넘지 말라는 말씀이 구약에 많이 있습니다.

우선 남녀의 경계를 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라는 것입니다.

한 밭에 두 종자를 심지 말라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두 종류로 짠 옷도 입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는 생리적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훈련이셨습니다.

현재 인간의 과학은 어떻게 하면 종의 경계를 넘어서게 하여 다른 창조물을 만들까입니다.

대표적으로 GMO 즉 유전자 변형 혹은 조작 식품들이 그것들인데 이미 우리 먹거리의 상당부분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경제적 유익이 있을 것이지만 장차 어떠한 재앙을 가져올지 알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16-17절에서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썼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오늘 본문 18절에서 말하기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합니다. 주님이 받으신 고난과 영광을 먼저 언급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과 영광에 연결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고난과 영광을 피조물의 고난과 영광에로 확대시킵니다. 달리 말하면 피조물의 고난과 영광은 사람들의 고난과 영광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1:26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여러 부분에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친히 말씀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출애굽기 34:26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아직 이를 지키는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우유를 먹고 2시간 내에는 고기를, 고기를 먹고 6시간 내에는 우유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먹는 것을 유대인들은 코셔라하고 이슬람은 할랄이라 합니다.

레위기 22:27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나거든 이레 동안 그것의 어미와 같이 있게 하라 여덟째 날 이후로는 여호와께 화제로 예물을 드리면 기쁘게 받으심이 되리라

레위기 22:28 암소나 암양을 막론하고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지 말지니라

신명기 22:6-7 길을 가다가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의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보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되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신명기 25:4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잠언 12:10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다스림이란 청지기의 사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연을 소유와 약탈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로마서8:22에서 바울은 피조물들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하였고, 8:19에서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자연과의 화평은 하나님 창조질서에 다시금 복종하는 것이며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는 그 말씀을 이루어드리는 일입니다.

그러하기에 자연과의 화평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34-40에서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길이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그것을 유지 보존 복원 시키는 일이 하나님 사랑입니다.

자연환경을 돌보는 일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살아갈 우리의 후손들을 포함하는 이웃들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들은 성경말씀을 통하여 너무도 인간중심적인 세계관을 바꾸어서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가리켜 생태적 세계관이라 하기도 합니다.

지속가능한 범위 내에서 에너지 사용을 줄여 나가야 합니다.

우려할 만한 기후 변화의 현상들은 인간의 에너지 사용의 결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음식을 남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처음에 훈련시키실 때 음식을 통하여 하셨습니다.

육식을 줄여야 합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는 채소와 씨가진 열매가 음식이었습니다. 인간의 타락과 노아 홍수 이후에서야 하나님께서는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육식을 줄여 나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기쁨이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그 기쁨,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그 기쁨을 어디서 경험하십니까?

과거에는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없으십니까?

윗대서부터 믿었으니까 교회 다닌다, 수 십년 동안 믿어 왔는데 이제 와서 안 믿을 수 없으니 교회 다닌다, 남의 눈이 있으니까 교회 다닌다, 천국은 모르겠는데 지옥은 혹 있으면 가서는 안 되겠기에 교회 다닌다, 다니긴 다니는데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자신도 힘들고 더 나아가서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보다 기쁨이 없이 믿음생활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도 세상에 나가서도 큰 해가 됩니다.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는 것을 하면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라 혹은 하지 말라 하시는 말씀을 구체화 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일상적이면 더욱 좋습니다.

그 말씀들이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마태11:30에서 말씀하신 대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피조물의 탄식소리를 듣는 일, 물을 아껴 쓰는 일, 전기 사용을 줄이는 일, 음식을 남기지 않는 일 등을 믿음으로 할 때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인간은 창조되면서부터 삼중관계를 부여 받았습니다.

첫째가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둘째가 자연과의 관계이며 셋째가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화평한 것이 샬롬 즉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은 하나님과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자연과의 화평은 자연을 돌보는 일입니다.

이웃과의 화평은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가 더욱 되게 하실 줄로 믿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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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조물의 탄식
  • 2017-01-26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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