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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2부 예배

 

환난 중에 인내하는 교회

  • 조회 : 16
  • 성경말씀 : 로마서 12:12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01-09

 

2022년 1월 9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로마서12:12

제목 : 환란 중에 인내하는 교회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라헬이었는데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였고 그것이 요셉에까지 미치었습니다.

더욱이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어주었습니다(창37:3)

그 당시 옷을 염색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기에 대단한 권세가 있는 자들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었습니다.

그 채색 옷이 다른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어진 요셉의 꿈은 형제들을 더욱 자극하였습니다.

당시 야곱의 일가는 헤브론에서 살고 있었는데 아들들이 세겜까지 가서 양들을 치고 있었습니다. 유목을 하니까 목초지를 따라 그리 이동하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95km 정도입니다. 직선거리니까 길 따라 간다면 헐씬 더 먼 거리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형들에게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요셉의 나이가 17세였는데, 아버지의 말에 “내가 그리하겠나이다”(창37:13) 하며 그 먼 길을 떠났습니다. 세겜에 도착하여 형들을 찾아 헤매고 있었는데 누가 말하기를 너희 형들이 도단으로 갔다 하였습니다. 도단은 세겜에서 북서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요셉은 거기까지 형들을 만나기 위하여 갔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가고 있었을 때에, 형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놀랍고 놀랍게도 죽이기로 꾀하였습니다. 그 먼 거리에서 원수의 자식이 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어린 동생이 찾아온 것인데 그리 할 수 있었단 것이 몸서리치게 두렵습니다. 그것도 악한 집단들도 아니고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손인 야곱의 아들들이 그리한 것입니다.

그들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20년 동안 일할 때에 얻은 아들들이며, 외삼촌 라반의 손을 피해 도망하였을 때에 갈르엣 사건을 체험한 이들이었고, 이어서 아버지 야곱이 얍복강에서 기도후 큰아버지 되는 에서와 화해하는 장면을 친히 본 이들이었습니다.

그 후 세겜에서 자신들의 누이동생 디나의 일로 몰살을 당할 뻔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경험을 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헤브론에 가서 할아버지인 이삭을 만났고 그가 180세에 죽자 할아버지의 장례에 참석한 이들이었습니다.

근자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는 말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데 야곱의 아들들을 보면 그럴 수가 있어 보입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고 아버지에게 가서 그가 악한 짐승에게 잡혀 먹혔다 하자 하였는데, 그렇게 보면 악한 짐승이 곧 자신들이었습니다.

이 일에 장자 르우벤이 우리가 손에 피를 흘려 죽이지는 말고 광야 구덩이에 던지는 것으로 하자 하였는데, 이는 그가 나중에 가서 그를 구출하여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려 함이었습니다. 르우벤은 얼마 전에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한 일이 있었고 아버지가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창35:22).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이 그를 그리하게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인간이 인간이 되는 것의 최소한은 죄의식이라도 갖고 살 때입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그의 채색 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르우벤의 말대로 구덩이에 던졌는데 그 안에는 물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그 먼 거리의 형제들에게 보낸 일, 아들이 순종한 일, 그런데 형제들이 요셉의 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진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예표가 되고 있습니다.

그 때 요셉이 얼마나 놀라고, 구덩이 안에서 얼마나 참혹해 했을지, 그 과정에서 형들에게 얼마나 애원하며 간청을 했을지 생각하면 인간의 죄가 얼마나 깊고 악한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요셉의 애원을 들으면서도 형들은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창37:25)

그 음식은 요셉이 헤브론에서부터 등에 지고 온 볶은 곡식이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죽은 자식들을 위하여 단식투쟁을 하고 있었을 때에 그것을 비난하는 자들이 그 옆에서 피자파티를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참으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놀라울 뿐입니다.

그 중에 유다가 지나가는 이스마엘 상인들을 보고는 형제들에게 제안하기를 우리 동생을 죽이지 말고 저들에게 팔자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 아니냐 하자 형제들이 그 말을 받아들여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어 은 이십에  팔았습니다.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냈기 때문에 나중에 그들이 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이 곧 나를 살리는 일입니다.

 

요셉은 애굽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렸고, 그곳에서는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요셉이 당한 환란이었습니다.

 

환란이라는 명사 들립시스는 억압, 압박, 고통, 근심, 괴로움, 고난 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신약성경 안에서 들립시스는 

1. 신자와 사도들이 겪었던 실제적인 일이었습니다.

행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2. 이 고난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3. 이 고난은 종말론적입니다. 이 고난이 말세의 대환란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과 관련된 고난입니다. 불의한 자들에게 임하는 심판을 말씀함인데 이는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참된 표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즉 환란은 그 때가 가까웠다는 징조라는 것입니다.

살후1: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란 중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환란 자체를 제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는 일입니다.  

첫째, 환란 중 장래의 영광이 현재의 고난에 비할 수 없다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할 수 있는 배경이 됩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둘째,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이러한 환란을 감당하는 가운데 세워지게 됩니다. 

고후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의 백성의 고난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교회를 세우시며 그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이미 환란의 권세 즉 사망 권세를 깨트리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 환란을 감당하는 것은 인내 휘포메노입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견디다의 의미였습니다.

막13: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바울 서신에서는 기독교인의 필요한 자질로 묘사됩니다.

딤후2: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를 바라보며 지속적 인내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히11: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야고보서에서 인내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5: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베드로서에서는 상급이 있는 인내와 무익한 인내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벧전2: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요셉은 30살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창41:46).

그가 17살에 환란을 당하고 애굽의 감옥에서 13년을 지낸 후였습니다.

그 기간 동안 환란을 인내할 수 있던 힘은 신전의식 즉 코람데오였습니다.

창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러하니 우리가 환란 앞에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 앞에 있다 믿으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과 인내함이었습니다.

창45: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환란 가운데 숨겨있는 하나님의 비밀을 믿고 그것이 드러날 때까지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환란 가운데 숨겨있는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나게 하는데 유다가 그 역할을 하였습니다. 창세기 44장을 읽어보시면 유다의 고백이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비밀을 보게 한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환란 중에 인내함이 소망이 되는 것은 그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심을 세상에 증거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환란 중에 있었을 때에 어느 사람들은 원망하고 불평하고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강팍해 지는데 반하여 어느 사람들은 참으며 기뻐하며 소망을 갖는 모습이 되는 것은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라는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가심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환란 중에도 기쁨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환란 중에 인내함을 통하여 세상에 소망이 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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