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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2부 예배

 

부활의 몸

  • 조회 : 4
  • 성경말씀 : 고전도전서15:35-44
  • 설교자 : 방영철목사
  • 설교일 : 2024-04-21

 

2024421일 주일낮 예배

성경 : 고린도전서15:35-44

제목 : 부활의 몸

 

사무실에 어항이 있고 잉어 두 마리와 금붕어 세 마리와 청소 물고기 그리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작은 물고기 하나가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 작은 물고기들이었는데 잉어는 엄청커졌고 수염도 있으며 작은 물고기는 여전히 작은 상태로 있습니다. 각각 그들의 형체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항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물고기는 물에서 살고 나는 공기 중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물고기의 몸은 물에서 사는 구조로 되어 있고 사람은 숨을 쉬며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삶의 자리를 바꿀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몸은 유인원들과 비교해서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뇌가 큽니다.

다른 포유류에 비해 6배 정도 크며 대략 1500g이고 몸의 1/40 정도의 무게이나 섭취하는 영양의 20% 정도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뇌로 인하여 생명체중 가장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어 도구를 만들고 사회화를 이루며, 신을 믿고 예배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둘째는 털이 적습니다.

옷을 입는 유일한 동물이며, 땀을 내어 체온을 발산할 수 있어 오래 달리며 사냥을 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100m를 사람보다 빨리 달리는 동물은 많지만 40km를 사람보다 빨리 달리는 포유류는 없습니다.

셋째는 손을 사용합니다.

인간의 인간 됨의 많은 활동들이 손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작은 소리는 듣지 못하며, 멀리 보지 못하고,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고, 빨리 달리지 못하며, 외부의 충격에 쉽게 상처를 받으며, 질병과 노화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시공간에 제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 공간에 존재할 수 없으며, 현재라는 의미의 시간을 살아갈 뿐 과거와 미래로 이동할 수 없으며 대략적으로 수명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을 통하여 우리와 같은 몸으로 사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의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부활의 몸은 이전의 성육신하신 몸과 연속성과 비연속성이 있었습니다.

연속성은,

제자들을 비롯한 무리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예수님도 그들을 알아보셨습니다.

십자가의 상처 즉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이 있으셨습니다.

제자들과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비연속성은,

무덤을 막아 논 돌이 있었음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을 나가셨습니다 후에 무덤을 막은 돌이 천사들에 의해 옮겨진 것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을 위함이었습니다.

부활후 첫날 저녁에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한 집에서 문을 잠그고 있었을 때에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로 들어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엠마오에서 두 제자와 식사를 하시던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사라지셔서 예루살렘의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후 40여일 동안 부활의 몸을 택한 자들에게 보이신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제자들과 무리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바울을 비롯한 택한 자들에게 시공간을 넘으셔서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로서 몸의 부활에 관한 내용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내에서도 부활을 믿지 못하거나, 영으로서의 부활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활하셨으며, 부활의 증인들이 있으며,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셨으며,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증거하시는 말씀입니다.

 

35절에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

씨앗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36절에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한다 하며,

씨앗은 땅에 심겨지면 죽는 것과 같은 부분들이 있지만 그 안에서 생명은 사라지지 않고 싹으로 나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우리 각 사람의 몸도 그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각 사람의 몸에서 죽음에 이르는 부분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생명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대개 화장을 하는데 인간이 불로 태울 수 없는 하나님이 영역이 인간에게는 있다는 것입니다.

37-38절에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신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활의 몸이 현재의 몸과 똑같지는 않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39-41절에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하셨습니다.

부활의 몸이 다 같은 형체가 아니라 사람과 짐승과 물고기와 새의 육체가 있는 것 같이 다 다르다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부활의 몸이 짐승이나 새나 물고기가 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늘과 땅과 해와 별의 영광이 다른 것처럼 우리 부활의 몸의 영광도 그와같이 다를 것이라 하셨습니다.

42-44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부활의 몸이 있어야 함에 대해서,

49절에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을 주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 부활의 몸은 현재이 몸과 연속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세상 천국에서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 분이 우리 부모님이시다, 저 분이 그때 그분이다, 혹은 성경속의 인물들도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와 똑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형체일지 알 수 없고, 지금과 같은 몸의 약함과 장애와 질병 혹 추함과 같은 형상은 아닐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부여하신 그 존재의 가장 아름다움과 영광이 나타나는 형상일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이란 이러한 뜻이 담겨 있는 말씀으로 소망합니다.

그 날 그 몸을 소망하시면서 미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50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앞에서 말씀드린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 수 있고, 사람은 공기 중에서 살 수 있는 것과 같이

현재 우리의 혈과 육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모습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맞는 몸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기에 합당한 몸 부활의 몸을 우리 모두에게 주실 줄로 믿습니다.

 

54-56절에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은 우리의 삶의 환경 안에서 만물의 영장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여러 약점이 있었던 것과 같이,

죄와 사망에 대해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인간 이하’ (데이비스 리빙스턴 스미스, 뉴잉글랜드대학 철학부 교수)다정한 것이 살아 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듀크대학 진화인류학자)를 읽었습니다.

인간 이하에서는 인간을 인간 이하로 대할 때 여러 범죄와 살인 심지어 대량학살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역사적으로 연구한 내용들이 있으며,

다정한 것이 살아 남는다는 생물의 진화는 찰스 다윈이 주장했다고 잘못 알려진 적자생존(survival of fittest)이 아니라 오히려 다정함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survival of friendiest)는 연구를 담은 책입니다.

이 책의 초반부를 읽다가 , 그래서 성경에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하셨구나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에는 다정함과 공격성이 인간 뇌의 같은 부분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정함의 발달이 공격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3:10에서도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느니라 내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한 것이 아니하니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은 이 세상에서 죄의 유혹과 압력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죄는 우리 삶의 모든 곳에서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7:24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 하였습니다.

죄를 범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르기를 당신들이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나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54절 말씀에 이 썩을 것이 즉 우리의 현재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즉 부활의 몸을 입을 때에는,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하셨습니다.

부활의 몸은 현재 우리의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몸이 아니라 죄의 권능을 이기는 몸이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부활의 몸은 이미 시작은 되었으나 아직은 아닌 시점에 있습니다.

 

부활의 몸이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고, 우리 모두가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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