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주일오전 2부 예배

 

사효론 인효론

  • 조회 : 27
  • 성경말씀 : 사무엘상24:1-7
  • 설교자 : 방영철목사
  • 설교일 : 2023-09-10

 

2023910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사무엘상24:1-7

제목 : 사효론 인효론

 

유대교가 할례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표를 삼은 것처럼 기독교는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표를 삼았습니다.

기원후 313년 밀라노칙령을 통하여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생전에 세례를 미루면서 죽기 전에 받으려 했다고 합니다. 그가 죽기 전에 세례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 한 이유는 그 당시 세례에 대한 이해에 있었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 이전에 지은 죄를 모두 다 사함을 받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세례 받은 이후의 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고해성사 제도입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세례 이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세례를 비롯한 성례에 있어서 논쟁이 제기 되었습니다.

251년 데시우스 황제가 죽자 박해 기간동안 로마교회의 파비안 감독이 순교하였으므로 로마 교회는 새로운 감독을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노바티안과 코르넬리우스가 경합을 벌였으나 코르넬리우스가 차기 감독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코르넬리우스는 우선 박해 기간동안 흩어진 교우들을 모아 교회를 재건해야할 과제가 중차대하였습니다. 그래서 박해 기간동안 배교한 자들일지라도 참회를 하는 자들은 용서하고 교회가 용납하여야 한다는 온건한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반면에 로마교회의 저명한 장로였던 노바티안은 거룩하고 순수한 교회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였고, 세례 때 죄를 용서받은 뒤 다시 중죄를 지은 사람은 거룩한 교회에 들어 올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노바티안은 로마교회에 대해 배교자들을 교회에 허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들에 대한 용서는 그것을 베풀 수 있는 하나님만의 몫이기 때문이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노바티안과 그의 추종자들은 처음부터 교회가 사죄의 권세를 지기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 것은 아니고, 배교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교회의 권세의 영역 너머에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로마교회는 배교자 처리 문제로 온건파와 엄격파의 갈등이 증폭되었고 마침내 노바티안을 비롯한 엄격파들이 로마 교회에서 따로 떨어져 나갔고, 그 추종자들이 노바티안을 대립 감독으로 임명하였습니다. 로마 교회가 분열된 것입니다. 박해시 타락한 사람들이라도 참회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선언한 로마의 감독 코르넬리우스(251-253)251년 로마교회 회의를 열어 로마교회에서 분열해 나간 노바티안파 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의 신사참배로 인한 장로교 분열(1951년 고신)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습니다.

박해기간 동안 피신해 있다가 박해가 끝난 251년 초 카르타고로 돌아온 카르타고의 감독 키프리안 역시 로마감독 코르넬리우스와 입장을 같이하였습니다. 그는 로마교회의 분열을 통탄히 여기고 배교도 비 거룩한 것이지만 배교자의 용서를 용납하지 못하는 노바티안파의 불관용은 더 비 거룩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키프리안은 교회 일치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로마교회에서 분열해서 교회 밖으로 나간 노바티안파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저 유명한 명제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키프리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로마교회를 분열시켜 나간 열교자(裂敎者)들에 의해 베풀어진 세례는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나의 교회에서 분열된 교회가 구원이 없듯이, 하나의 세례를 분열시킨 자들의 세례도 효과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과정을 통하여 네 가지 주장이 대두되었습니다.

첫째는 인효론(人效論)입니다.

세례의 효과는 세례를 베푼자의 신앙과 덕행, 행위자의 행위에서’(ex opere operantis) 나오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키프리안은 교회를 분열시킨자들의 세례는 효과가 없다고 하였고, 노바티안과 도나투스는 배교자를 수용한 거룩하지 않은 카톨릭교회에서 받은 세례는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문제는 세례를 베푼자의 현재의 신앙과 덕행을 누구도 판단할 수 없을뿐더러 앞으로의 일까지 생각하면 성례가 불안전해 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사효론(事效論)입니다.

세례는 집례자가 배푸는 것이 아니므로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집행된 성사(opus operantum)는 언제나 정당하다고 주장입니다. 스테판과 밀키아데스는 세례의 효과는 행하여진 행위 자체에서’(ex opere operatums)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베드로의 세례나 가롯 유다의 세례나 모두 동등하게 정당하다고 주장함으로서 사효론적 입장을 취하였으나, 이단이나 분파의 세례 그 자체는 객관적 정당성을 지니지만 그 주관적 효과는 정통교회로 복귀할 때에 나타난다고 가르쳤습니다.

키프리안의 주관적 효과론과 밀키아데스의 객관적 효과론의 교묘한 조화를 모색한 것으로 보입니다.

카톨릭이 그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취하는 입장으로 안정성은 있으나 무책임한 면이 있습니다.

 

셋째로 신효론(信效論)입니다.

초기의 루터와 칼빈은 카톨릭 교회의 사효론을 비판하고 칭의론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받은 세례만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효론은 종교개혁시대의 재세례파에 의해 극단적으로 주장되었으며, 믿음의 고백이 불가능한 유아 세례의 효과여부에 관한 논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신효론은 세례를 베푸는 자의 관점이 아니라 받는 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해석이지만 개인의 믿음이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2:8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넷째로 은효론(恩效論)입니다.

후기의 루터는 세례를 세례 받는 사람의 신앙에 근거시키는 신효론(信效論)은 세례를 세례 주는 사람의 신앙에 근거시키는 인효론(人效論)과 마찬가지로 정당치 않으며 세례의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은효론에 따르면 카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든 이단종파에서 세례를 받았던 이 세례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약속으로 굳게 믿고 그 믿음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면 다시 재세례를 받아야 할 신학적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해서 세례를 준다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잘 못 될 수 없으며, 세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의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며, 집례자가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며(인효론), 집례행위 자체로 세례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사효론), 그리고 우리가 세례를 믿음으로 받았기 때문에 세례가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신효론), 세례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에 근거하여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늘 말씀의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는 제99회 총회에서 앞으로 가톨릭에서 받은 영세를 세례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예장합동 소속 교회들은 가톨릭교회에서 영세를 받고 개신교회로 옮겨온 신자들에게 새롭게 세례를 베풀게 됐습니다.

예장 통합총회는 2004년에 열린 제89회 총회에서 가톨릭 영세교인에 대해 세례를 다시 줄 필요 없이 입교만 하면 된다고 결의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교단이 가톨릭의 영세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으며, 간단한 입교절차로 개신교 신자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사울왕에게 추적을 받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왕 사울의 사위이지 군대장관이었던 다윗은 연전연승하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백성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하자 시기 질투 위협으로 다윗을 제거하려 하였습니다.

다윗의 그의 무리들과 함께 엔게디 굴에 숨어 있을 때에 사울이 삼천의 군사를 데리고 다윗을 추격하던 중 혼자 엔게디 굴에 용변을 보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다윗의 무리들이 하나님께서 사울을 당신에게 넘기신 것이라 하였지만, 다윗은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 하며 그의 옷자락만 증거로 벤 사건입니다.

삼상26장에는 사울이 십 광야에서 다윗을 추격하고 있을 때 삼천의 군사와 함께 진영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다윗이 부하 아비새와 함께 가서 잠들어 있던 사울과 군사들 사이에서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다윗은 아비새에게 그를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하였는데,

삼하31장에 보면 사울은 그의 세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와 함께 길보아산 전투에서 블레셋에 의해 전사하였습니다.

 

로마서13:1-2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로마교인들에게 로마 황제나 그 질서에 복종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하심인데 각 사람에는 로마 황제까지 포함된 의미입니다. 당시에 로마 황제는 스스로 신이라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세상 질서에 복종시키려는 데 사용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기독교의 역사 속에 등장하였던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인효론 사효론 신효론 은효론의 한계와 부정적인 부분은 제하고 긍정적인 부분은 인정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인효론을 통해서는 사명을 맡은 자의 신실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효론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경외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신효론을 통해서는 내 믿음만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은효론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설교자
  • 조회
  • 1
  •  사효론 인효론
  • 2023-09-10
  • 방영철목사
  • 28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