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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예수 부활하셨다

  • 성경말씀 : 마가복음 16:1-8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04-17

 

2022년 4월 17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마가복음16:1-8

제목 : 예수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해 당하시던 때의 목요일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만찬 중에 세족식도 행하셨습니다.

저녁이 되어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가 끝나갈 즈음에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의 하속들을 데려와 예수님을 잡아갔습니다.

그 밤에 대제사장의 집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사형을 언도하고

그 집행을 위하여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다시 재판을 요구하였습니다.

금요일 새벽 시작된 재판에서 빌라도는 이 곤고함을 벗어나기 위하여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인 것을 빌미로 당시 예루살렘에 와있던 헤롯에게 보냈고 헤롯도 짐을 지기 꺼려하여 다시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상황을 우려하던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약점을 추궁하여 결국은 사형판결을 받아냈고 즉시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조롱을 당하셨으며 처형장소인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당하셨습니다.

오전 9시쯤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오후 3시쯤에 운명하셨습니다.

이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나이다.

 

안식일이 되기 전,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장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 되려했다는, 로마황제에 대한 반역 죄인으로 처형이 된 것인데 그의 시신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달라한 것은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일이요 동조자로 처형을 받을 수 있는 두려운 일이었는데 용기를 내어 그 일을 자청한 것입니다. 

그는 공회원이었으니 그가 여러모로 누리는 것이 많았고 이 일로 인해 그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을 터인데 마다하지 않고 그리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시간이 오후 3시쯤인데 오후 6시쯤이 되면 안식일이 시작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무덤에 장사할 수 있는 시간은 단지 세 시간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시신에 손을 댈 수는 없었습니다.  

골고다와 빌라도의 관정은 800m 정도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오후 3시쯤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고 빌라도에게 갔을 것이고 빌라도가 그렇게 빨리 죽었을 리가 없다 이상히 여기면서 백부장에게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라 했고 그가 가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그 죽으심을 확인하고 다시 빌라도에게 보고를 하였을 것이고 이에 빌라도가 허락을 했을 것이니 예수님을 장사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게 주어졌을 것이지만 아리마대 요셉은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감당하였기에 오늘의 부활 사건의 모습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만일 아리마대 요셉이 그리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시신은 십자가형을 받은 자들을 버려두는 곳에 던져졌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부활의 풍경은 너무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신들 속에서 부활하셨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외형이 모양이 본질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주님께 영광이 되는 면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부활절 꽃, 부활절 청소, 부활절 찬양, 부활절 계란 등등은 부활절에 주님께 드릴 영광이 됩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힘쓰고, 살펴보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고, 헌신을 하면 주님께 영광이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에서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셨을 때에도 아무도 예수님께 탄생의 자리를 내어 드리지 않았기에 말구유에서 태어 나셨으며 몇몇의 목자들만이 예수님 탄생의 자리를 찾아갔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계신 그 여섯 시간 동안에도 사도 요한과 어머니 마리아만이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 고통과 쓸쓸함의 십자가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여 무덤 문을 열고 그 부활의 새벽에 나오셨을 때에 아무도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는 알지 못하여서 그리 되었다 할지라도 이제는 적어도 주님의 성탄의 때에, 주님의 십자가의 때에, 주님의 부활의 때에 주님 곁에 우리의 삶의 자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님 재림의 날에 그 앞에 영광이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신성모독죄와 반역죄로 처형이 되셨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스스로 지신 십자가였습니다.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님만이 지실 수 있는 십자가를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대로 감당하신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회개하는 자는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며 그 증거가 그가 부활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세상의 듣는 자들은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그의 죽음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힐난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들은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과 그의 죽으심과 부활은 갑자기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고, 이미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일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많은 증인들이 있다 하였습니다.

바울은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성경의 내적 증거는 이것입니다.

예수가 부활하셨다고 하는 주장 말고 그 사건 안에 들어 있는 내재적 증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모두 도망하였던 제자들이 다시 돌아와서 죽기까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며 전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살아 계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피하였던 이들이 이제 죽어 썩어져가는 시신을 위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걸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대한 마가의 기록입니다.

예수님께서 금요일 오후 3시쯤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토요일 즉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무덤에 장사되었고 안식일에는 무덤에 계셨으며 안식일이 지나고 안식 후 첫날 즉 주일이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님께 바를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저 갈릴리에서부터 쫓아온 이들이었으며 십자가에까지 그리고 무덤에까지 따랐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의 시작이 촉박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신을 합당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무덤에 장사했던 고로 이제 장사에 필요한 용품들을 준비하여 다시 온 것입니다.

이것은 저들의 주님께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낭비입니다 말할 수 없는 낭비가 사랑입니다. 그런데 아직 저들의 사랑이 안식일을 넘지 못하고 있음도 또한 보게 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 안식일에 주님께 갔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끝까지 따른 자들이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여인들에게 걱정이 있었습니다. 무덤 입구를 막아놓은 돌이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자신들의 힘으로는 돌을 굴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로 보건데 이 여인들은 무덤을 향해 출발하기 전에 남자 제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을 터인데 아무도 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소용없는 일이다 이미 사흘째가 아니냐, 예수님은 반역 죄인으로 처형된 것인데 거기에 갔다가는 동조자로 몰려 해를 당할 것이다, 왜 이렇게 새벽같이 가려 하느냐 낮에 가자’ 등등 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여인들은 갔고, 눈을 들어 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미리 걱정했던 일들이 믿음으로 거기에 가보면 이미 해결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홍해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신 말씀은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이었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는 천사였을 것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아주 적은 부분일 것입니다.

아마도 이 청년이 심히 큰 그 돌을 옮겨 놓았을 것입니다.

청년이 이르기를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하였습니다.

청년의 말은 너희들이 찾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나사렛 예수이지만 주님은 이미 부활하셔서 무덤에 아니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 묻고 있습니다.

무덤은 죽은 자들이 있는 곳이지만 그 분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곳에 계시지 않다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하였습니다.

이제 빈 무덤을 확인했으면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였습니다.

우선은 제자들을 안전한 갈릴리로 피하게 하심이었으며,

제자들이 갈릴리에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하심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제자들에게 부끄러운 기억의 장소였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크냐를 놓고 다투었던 곳이었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자고 있었고 도망하였던 곳이었고, 주님을 부인했던 곳이었습니다. 이제 갈릴리에서 다시 시작하자 하심이었습니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십자가도 무서워하지 않던 이들이 예수님의 시신도 무서워하지 않던 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이토록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이 이토록 놀라고 떨고 도망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주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도 죽으심도 그들에게 놀랍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그들의 직간접적인 경험의 영역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고 알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모르면 두렵게 되어 있습니다. 코로나도 처음에 몰랐을 때에는 너무도 두려웠었습니다. 이제 조금 알게 되자 그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을 준비해 왔는데 그 주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놀랍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주님께서 친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하신 말씀이 있었고 

변화산 사건 후에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말씀 중에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막9:9) 하신 말씀도 있으셨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사건 후에도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막8:31)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신 일도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없는 상태 즉 부활의 믿음이 없는 상황에서 주님의 부활을 대하게 되었을 때에 그들의 놀람과 떨림과 도망과 무서움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이렇게 만나게 된다면 그 때도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첫째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에 대한 증거이며,

둘째는 죄와 사망의 법이 폐하여지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시작되었음을 알리신 사건이며,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를 믿음으로 우리도 부활케 됨을 보증하신 일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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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 부활하셨다
  • 2022-04-19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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