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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깨끗하게 하시다

  • 성경말씀 : 마가복음 1:40-45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08-28

 

2022년 8월 27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마가복음1:40-45

제목 : 깨끗하게 하시다

 

나병은 근래에는 한센병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전에 나병 혹은 문둥병에 대한 잘못된 인상과 사실을 구분하기 위해서라 합니다.

한센병은 나균에 의한 만성 감염병이며, 1873년에 한센(Gerhard Henrik Armauer Hansen,노르웨이; 1841-1912)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나균은 감염되어 발병되는 경우는 결핵에 비해 매우 적고, 단지 나균에 대한 면역 기능이 약한 경우에서만 한센병이 발생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발병한 후에도 면역 기능에 의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일도 있습니다.

나균은 피부에 작용하여 피부를 괴사하게 하며 말초신경에 작용하여 신경을 마비시킴으로 움직임을 못하게 하고 감각이 없게 만듭니다. 

과거에는 한센병은 환자와의 긴밀한 접촉에 의해 쉽게 감염한다고 생각하였으나, 한센병에 대한 치료약이 개발되어 한센병 치료에서 이용하게 된 이후에는 어느 나라에서도 한센병이 있다고 해서 그들의 생활에 어떠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역시 과거에는 한센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때 한센병을 "유전병"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한센병에 감염되고 나서 발병할 때까지의 기간(잠복기)이 수년 내지는 수십 년으로 매우 길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감염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유전병과 같이 생각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대 의학에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한센병은 분명히 유전병이 아니고 나균에 의한 만성 감염병입니다.

한센병 치료약인 리팜피신 등을 투약하면 나균은 매우 단기간에 죽게 되어 감염력을 잃기 때문에 감염원으로 작용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생활이 자유롭습니다.

한센병의 치료는 1940년대에 설폰제의 사용이 시작되어, 1983년 이후의 복합화학요법에 이를 때까지 발전하여, 한 때의 "불치의 병"에서 이제는 "완치의 병"으로 바뀌었습니다. 현재는 한센병은 조기에 진단하여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후유증인 변형은 거의 남기는 일 없이 치유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이 병의 증상에 대한 말씀은 있지만 이 병이 천형이란 말씀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생각에 이 병은 천형이며 전염병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 병에 걸리면 몸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부정하게 된 것이라 믿었으며,

길을 가다가도 사람을 보면 자신은 부정한 사람이라 외쳐야 했고 따라서 접촉을 금하게 되었습니다.

나병은 대표적인 부정함이었습니다.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마가복음 1장이니까 예수님 공생애의 초기에 해당합니다.

나병 환자들은 보통 무리를 지어 생활을 하였는데 그는 혼자 왔습니다.

누군가가 가서 나병환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했을 것인데 다른 이들은 응답하지 않았고 이 사람 혼자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두 가지 큰 벽을 넘어서 왔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나병을 치유하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의 벽을 넘어야 했고, 다른 하나는 나병 환자는 건강한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었고 그리하였다가는 돌에 맞던지 하는 처벌을 받아야 했는데 그 위험의 벽을 넘어서 예수님께 나간 것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다른 제자들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나병 환자는 오랜 시간 예수님이 혼자 계신 상황을 기다렸다가 그 때에 찾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가 언제였을까요?

마가복음1:35에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아마도 나병 환자는 예수님이 낮에는 제자들과 혹은 병자들과 혹은 군중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접근할 수 없었다가 예수님이 새벽에 혼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신 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그 때에 예수님께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과 일대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나병 환자는 꿇어 엎드려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는 우리들의 모습이 다양합니다.

어떤 이들은 습관적으로 나옵니다. 

습관은 좋은 것입니다 좋지 않은 습관은 한 두 번에도 생기는데 좋은 습관은 100번은 해야 이루어집니다. 습관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런데 습관적이 되면 현재에 대한 자각이 약하여지는 면이 있습니다. 현재에 대한 간절함이 부족하고 이번 아니면 다음에 정도로 대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지금 이 예배가 내 인생의 마지막 예배일 수 있다는 심정을 갖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예배가 내 인생의 마지막 예배가 아니라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빚 받으러 오는 모습입니다. 당연한 권리인 것 같이 옵니다. 

와서는 이거해 주세요 저거해 주세요 하며 온통 예수님을 만나러 온 이유가 무엇을 얻기 위함으로만 보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 엎드리지 않습니다. 자기 편한 모습으로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감사함으로 나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하심에 해당하는 이들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인격이며 신앙의 말입니다.

잠언25:11에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하심이 있는데 그렇게 아름다운 말입니다.

저는 복음서를 읽다가 세례 요한이 자기에게 다가오고 계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한 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하신 말이 그렇게 크게 들릴 수가 없습니다. 

원하시면 하였습니다. 무조건 고쳐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시면 이라 함은 그의 인격이 어떠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병들어 죽게 된 종을 둔 백부장이 예수님을 청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이 오시자 그는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였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이방인을 만나거나 그 집으로 들어감으로 인해 당하실 비난을 염려함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인격적으로 해야 합니다. 인격적인 것이 인본주의도 아니고 순전한 신앙에 불순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그의 믿음입니다. 고귀한 믿음입니다. 나병을 낫게 해 달라는 것 이상의 믿음입니다.

육신의 나병이 낫지 않는다 할지라도 깨끗함을 사모하는 마음으로도 보입니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 많은 문제들이 상대방을 불쌍히 여길 때 해결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상산수훈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완악하고 강퍅하여서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습니다.

손양원목사님께서 애양원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셨을 때에 처음에는 그들의 냄새 때문에도 힘이 드셨다 하였습니다. 어느 순간 은혜를 받고 나서는 그들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 주셨다 한 기록이 있습니다. 

나병의 상처는 아주 흉하고 손을 대면 전염된다고 여기던 때이니 그 나병 환자에게 있어 나병이 자신의 몸에 나타나고 유일하게 그의 몸에 손을 대준 분이었을 것입니다.

누구의 손을 잡아 준다는 것, 누구의 상처에 손을 대 준다는 것은 함께함의 표시입니다.

단순히 이 쪽에서 저 쪽을 바라봄이 아니라 그에게 가서 같은 자리에 있어줌입니다.

그리할 수 있는 손과 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기도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시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의 구조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삶의 구조, 잠언6:28에 사람이 숯불을 밝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하신 구조에서 발이 데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입니다.

아마도 새벽에 기도하시던 중에 홀로 찾아와 발 앞에 엎드려 원하시면 저를 깨끗이 하실 수 있나이다 하고 있는 이 구조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깨끗함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권능이 주님께 있으시다는 말씀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통 속에 있던 여인이 군중 속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니 나았는데 그 일에 대해 주님께서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눅8:46)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깨끗함을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 시대는 오염의 시대입니다.

하늘도 오염이 되었습니다. 이산화탄소가 뒤덮여 있어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고 있습니다.

지구의 평균온도가 1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우리 몸의 온도가 1도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몸의 온도가 38도가 지속되면 살 수 없는 것처럼 현재 지구온도에서 1.5도가 올라가면 인간은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지하수와 강과 바다가 오염되었습니다. 계8:11에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하셨는데 이미 그리 되었습니다. 

태평양에는 남한 면적의 17배에 해당하는 쓰레기 섬이 있습니다. 끔찍하지요.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입니다.

그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세 플라스틱입니다. 바다에 없는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생명의 순환 고리가 끊어져 가고 있습니다.

창3:17에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셨는데 땅의 오염으로 땅에서 난 것들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의 영향력은 너무도 적지만 그래도 하늘과 바다와 땅을 오염시키는 일을 적게하고 하늘과 바다와 땅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힘써 감당해야 합니다.

가장 오염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렘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하셨습니다.

인간의 문명 자체는 발전하는 것이 보이는데 인간 자체가 발전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졌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큰 틀에서 만물이 종말을 향해 가는 것을 멈출 수는 없겠지만

종말 너머에 있는 하나님이 나라를 계시하는 부분적이고 제한된 사건들은 있어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에 따라 깨끗하여 지는 역사가 곳곳에서 일어날 것이고 우리의 삶도 그 한 부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늘이 바다가 땅이 그리고 우리의 심령이 주님의 말씀에 따라 깨끗해지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러한 깨끗해지는 역사 속에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세상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욕심을 쫓겠지만

너는 너의 깨끗하여 졌음을 세상에 알리며 그 소망을 증거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 모두가 깨끗하여 지기를 원합니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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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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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끗하게 하시다
  • 2022-09-01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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