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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소유와 생명

  • 성경말씀 : 누가복음 12:13-21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10-02

 

 

 

2022년 10월 2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누가복음12:13-21

제목 : 소유와 생명

 

진나라는 기원전 221년 시황제 때에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진나라의 지배기간 동안, 중국에서는 무역이 증가하였고 농업이 발전되었으며 치안이 강화되는 등 부강한 나라가 되었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즉위한지 11년, 49세로 사망한 뒤 후계자와 간신 등으로 인하여 유방의 한나라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진시황은 중국 역사에서 최초로 가장 큰 땅과 권력을 소유하였지만 불로초를 찾아 그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는 실패하였습니다.

이건희 전 삼성회장은 1942년에 태어나 2020년에 사망하였습니다. 생전에 우리나라 최고 부자였고 세계에서도 66위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4년에 심근경색이 와서 6년을 식물인간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국내 최고의 병원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의 생명을 회복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소유와 생명이 비례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생명이 주께 있는데 우리에게 이 생명이 주어져 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리중의 한 사람이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라고 예수님께 요청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요청하는 이 사람도 그리고 그의 형이 되는 사람도 예수님을 따르는 자 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의 유산상속법에 의하면 장자가 2/3을 갖게 되었고 나머지를 가지고 형제들이 나누어 갖게 되어 있습니다. 이 동생 되는 이는 예수님이 이 문제에 대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해 주실 것이라 기대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의외로 화를 내셨습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면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조차도 자신의 유익의 관점에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비슷한 관점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그대로 다 소유하고 거기에 더하여 복음의 은혜를 누리겠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세상적인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것도 갖고 저것도 더 갖겠다는 욕심입니다.

그러나 한 손에 다른 것을 잡기 위해서는 이전 것을 놓아야 합니다.

둘을 다 잡으려 한다면 둘 다 잃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뜻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한 부자의 밭에 그 해 소출이 풍성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부자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더 이상 곡식을 쌓아둘 곳간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그의 방법은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을 짓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르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였습니다.

혼자 한 말인데 이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영혼을 도로 찾으시겠다고 하셨을까요?

이 사람이 특정한 죄를 범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남의 것을 훔쳤다는 것도 아니고 품꾼들의 삯을 주지 않았다는 말도 없고 불의한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었을까요?

본문의 말씀 속에 그에게는 ‘나’만 있었습니다.  짧은 본문에 ‘나’라는 말이 6번 나옵니다.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내 모든 곡식과, 내가, 내 영혼에게.

그의 삶에는 이웃도 없고 하나님도 없습니다.

이웃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삶은 이미 죽은 영혼입니다.

실재는 본질에 의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의 본질은 하나님이십니다. 현대 철학사조는 하나님의 본질을 부정하거나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현재 존재하는 것들은 우연히 던져진 실재들이라고 합니다. 본질인 하나님이 없으니 실재인 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며, 오늘의 나도 그 창조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보면 감사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의 문제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자는 그저 감사하지 않은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실절 오순절 수장절이라는 추수감사의 절기를 정해 주시고 그 절기를 힘을 다해 지킬 것을 말씀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을 위해 지키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 백성을 위해 감사하는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은 그 무엇으로도 더해질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덜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감사가 끊어지면 이웃과의 관계도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생명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이웃을 통하여 내게 이어지는 관계를 통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의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교훈을 주시고 있습니다.    

첫째, 깨달음의 감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할 조건이 많은 사람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깨닫는 자가 감사하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소출이 풍성한 것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와 농삿일에 참여한 일군들이 있었을 것이고, 눈에 보이는 곤충을 비롯하여 미세한 세균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건들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되어진 일입니다. 

그가 풍성한 소출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불행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에게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행복한 사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제일 강한 자는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외국 여행을 가장 잘 준비하는 방법도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배우는 것입니다.

토다(히), 에프카리스토(그), 당케, 탱큐, 메흐시, 아리가또,  테세큘랄(터), 깜언(베), 

씨에씨에니(중), 젱쿠에치(폴) 탁크(스) 

이 시간의 예배를 통하여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지시길 바랍니다. 

 

둘째, 나눔의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는 그의 곳간을 새로 지을 것이 아니라 곳간에 차고 남는 것은 필요한 이들과 나누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밭을 더 산 것도 아닌데 특별한 풍년으로 말미암아 소출이 그렇게 늘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며 넘치는 그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내 것과 남의 것을 잘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있는 자가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모든 것이 자기 것으로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그 경계선을 9:1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 지혜가 없는 자는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어떤 욕심장이 하인의 이야기입니다.

주인이 그에게 그동안 수고했다고 하며 내 땅 중에 네가 하룻길에 갔다가 돌아오는 곳은 네게 주겠다 하였답니다. 이 하인은 신이 나서 출발을 하였습니다. 얼마큼 가다가 돌아왔으면 되었을 터인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모든 땅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하다가 그만 돌아올 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 겠다고 생각한 때는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요? 

그는 욕심으로 인하여 그 날에 돌아가지 못함으로 조금의 땅도 얻지 못하게 되고 말았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과 피를 우리에게 다 내어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받는 성찬입니다. 성찬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다함이 없는 나눔이요 거룩한 나눔입니다.

받은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성도 여러분 되실 줄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가 이 풍성한 소출이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지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찾아볼 수 가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나 어려운 일이나 감사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좋아서 감사하는 것이고 어려운 일은 어려운 것을 통해 주시는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고 현재를 만족함으로 받으며 미래를 소망으로 바라보는 것이 범사에 감사한 삶입니다. 

다람쥐도 청설모도 겨울을 위하여 부지런히 열매들을 곳간에 쌓아 둘줄 아는데 주님 말씀하시길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셨습니다. 

 

자기 것을 지키려고 하는 데서 선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선한 것은 하나님을 통과해야 합니다.

잠19:17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하였습니다.

눅6:35에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하나님께 부요하심으로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시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되시길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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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유와 생명
  • 2022-10-04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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