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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여호와의 진노하심

  • 성경말씀 : 사무엘하 24:1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10-16

 

 

2022년 10월 16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사무엘하24:1

제목 : 여호와의 진노하심

 

1절에 여호와께서 ‘다시(바요세프)’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아프 아도나이 라하로트)하사 하셨습니다. ‘다시’에 해당하는 사건을 찾아가보면 밧세바사건과 우리아 사건을 보게 되고 그 후에 일어나 압살롬의 반역과 세바의 반역을 볼 수 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과 세바의 반역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진노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진노가 다시 있으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 진노의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사무엘서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아마도 한 가지로 나타낼 수 없는 이스라엘의 복잡다단한 죄일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들 즉 이스라엘을 여호와께서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셔서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진노는 이스라엘에게 있으셨는데 그 이스라엘을 치실 명분을 드러나게 하시려고 

그리하여 그들이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는 죄에서 회개할 수 있게 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셔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대개는 이 본문에 대해서 다윗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하여 인구조사를 하였다가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고 회개하였다는 해석이 많은데 사실은 좀 더 복잡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요압에게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게 한 것이 어떤 의미에서 문제가 된다고 하는 것일까요?

구약의 역사에서 보면 수많은 인구조사가 있었습니다.

창세기46:27에는 애굽으로 들어갈 때 야곱의 자손이 모두 70 명이었다고 합니다.

민수기1장에는 출애굽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인구조사를 하라 하셨고 그 결과 603,550명이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민수기26장에는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두 번째 인구조사를 시키셨는데 601,730명이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인구가 1,820명 줄었습니다.

그 인구조사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에 반해 이번 다윗의 인구조사가 죄가 되는 이유는 10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을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 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한 것입니다.

2-3절에도 이에 왕이 그 곁에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이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 하니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한 대화가 있습니다.

요약하면 다윗의 인구조사는 다른 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윗 자신의 자랑을 위해서였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여기까지 이른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는데 그것을 지금 다윗은 자기의 자랑으로 과시하려는 교만함을 보인 것입니다. 

애써 그 교만함을 감추고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격동 즉 조금 흔드시니 그의 교만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입니다.

인구조사를 하러 갔던 자들이 9달 20일 만에 돌아와 보고를 하였는데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80만이요 유다 사람이 50만이었다 하였습니다.

그래도 다윗이 다윗인지라 그 보고를 받고 기고만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교만했음을 깨닫고 회개한 것입니다.

다윗의 죄를 드러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드러나게 하시고 그들에게 진노를 내리심으로 그들이 회개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왕이 죄와 백성의 죄 백성의 죄와 왕의 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생명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죄가 모두의 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면서까지 드러내시고자 했던 그들의 죄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일들입니다.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큰 그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이 과연 그러하다는 것을 증거 하시기 위하여 고통스럽지만 계시적 사건을 이루셨습니다.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말씀하시길

다윗에게 가서 이 일로 인하여 세 가지 징벌이 있을 것인데, 

칠 년 기근이던지,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도망하던지,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인지 그 중에 하나를 택하라 하셨습니다.

왜 굳이 세 가지 중에서 택하라 말씀하셨을까요?

이런 말씀이 없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 일들이 자신들을 향한 여호와의 진노하심이란 것을 깨닫지 못하겠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자연적인 일, 우연, 누구의 잘못으로 돌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일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3년여의 코로나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있고 또 어떤 사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진노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이란 마지막 심판이 아닙니다. 회개로 살길로의 부르심입니다.

 

사무엘상 6장에는 블레셋 족속이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아 갔다가 그들의 신 다곤 신상이 깨어진 일이 있었고 블레셋 각 성에 악성 종기가 창궐하자 그들이 모여 이르기를 이 일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한 일인 것 같은데, 그러한지 시험해 보자하며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벧세메스로 가는 길로 보내며 소들이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가면 그러한 것으로 여기기로 하였는데 과연 그리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시험해 보고 믿은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그 만큼 둔감하고 완악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1:17에서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하신 말씀과 같은 상태입니다.

 

다윗은 마지막을 택하였고, 전염병으로 인한 백성의 죽은 자가 7만 명이었습니다. 

성경의 숫자들이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나라 5천만 인구 중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2만 8천명 정도인 것을 비해 보면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 일은 다윗의 인구조사에 대한 진노가 아닙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다윗이 죽었어야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기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회개는 대개 내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시작이 됩니다.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계속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셨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고 우리의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1:35에서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하셨습니다.

 

이 날에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브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여브스 사람들의 땅이었습니다.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은 넓은 바위입니다.

모리아산 꼭대기에 있습니다.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올랐던 산입니다.

아마도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올려놓았던 그곳이었을 것입니다.

후에 솔로몬은 이곳에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습니다. 기원전 959년 완공하였고, 373년간 존재했다가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고, 기원전 520년 스룹바벨에 의해 재건되어 오던 중, 기원전 17년 헤롯에 의해 증축되기 시작하였고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다가 기원후 70년에 로마의 디도에 의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파괴되었고 그 위에 691년 이슬람 사원 황금돔이 건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그곳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는 시공간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워진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입니다.

  

다윗이 제단을 쌓기 위하여 아라우나에게 상황을 이야기 하자 아라우나는 다윗에게 원하건데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 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아뢰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믿음의 사람이었고 성전 터를 헌물 할 만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다윗은 24절에 보면 아라우나에게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면서도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샀다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1:32에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처서 죽일지니라 하심으로 보아 소 한 마리 값이 출애굽 때에도 은 30이었는데 다윗이 은 50으로 소와 타작 마당을 산 것입니다.

복잡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저희 교회 제직회가 있었는데 기도자가 오지 않아서 다른 분으로 부탁을 하였는데 그 분이 저에게 20만원을 빌려 달라 하였습니다. 무슨 일이냐 묻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두 달치 십일조를 안 한 상태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좀 독특하신 분인데 아무튼 주일 낮 예배에 헌금하시고 오후에 제직회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래도 다윗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하셨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제물을 온전히 태워 연기로 올려 드리는 제사입니다.

성막 번제단의 크기는 가로 세로가 다섯 규빗 즉 2.5m 정도이고 높이는 3규빗 즉 1.5m입니다.

바닥은 제물을 태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놋 그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위에다 소 한 마리를 다 태우려면 참으로 어려웠겠다 싶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태워 올려 드리는 제사입니다. 

죄와 허물도 명예와 욕심도 옳고 그름도 그 모든 것을 온전히 태워 올려 드리는 것이 번제입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내장의 기름과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간에 덮인 꺼풀을 화제로 하나님께 드리고 거제로 앞 가슴살과 오른편 뒷다리를 드려 제사장에게 드리고 나머지는 제사를 드린 자들이 다 함께 나누어 먹는 제사입니다. 

그것도 제물을 누가 가져가지 못하고 제사를 드린 다음날 까지 제단 뜰에서 남김이 없이 다 먹어야 하는 제사입니다. 화목제는 모두가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화목을 이루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도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와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 삶의 크고 작은 하나님의 계시적 사건 속에서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감사할 것은 감사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나서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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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의 진노하심
  • 2022-10-18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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