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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큰 기쁨의 좋은 소식

  • 성경말씀 : 누가복음2:8-14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9-12-22

성경 : 누가복음2:8-14

제목 :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성탄일 전날은 교회에서도 그렇고 세상에서도 정작 성탄일보다 큰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성탄 노래들이 거리마다 들려왔고 교회에서는 기대가 되는 여러 모임들이 밤늦도록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자정을 넘고 새벽이 가까울 어떤 때 잠이 들곤 하였는데 그러면 새벽송을 돌러 가야 한다며 깨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해인가는 새벽녘에 교회 방석으로 겨우 몸을 덮고 잠을 자고 있었는데 새벽송 가자고 깨우는 것을 모른 채하고 계속 자다가 뭔가 좀 이상해서 깨어보니 교회 안에 나만 남아 있었습니다. 끝까지 깨워서 데려가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도 나오고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었습니다. 뭔가 다 휴거되고 나만 남은 것 같기도 하였고, 혼인집에 들어가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가 된 기분이기도 하여서 그 다음해부터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겨우 눈을 비비고 나오면 대개는 교회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나누어서 조를 편성하고 출발을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내가 속한 조가 마음이 들기도 하였고 어떤 때는 다른 조가 되었으면 하였던 때도 있었습니다.

대개 성탄절 때면 눈이 꽤 쌓여 있었습니다. 손전등은 조장 정도만 가지고 있었고 조원들은 그 뒤를 따라 갔는데 어느 해 겨울에는 눈앞이 잘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얇게 얼은 얼음이 깨지며 발이 물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갈아 신을 양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혼자서 교회로 돌아가기도 난망하고 갈 길은 멀고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성탄의 기억입니다. 성탄 찬송 세 곡, 기쁘다 구주 오셨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저들밖에를 돌려가면서 불렀는데 찬송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불이 켜지고 문이 열리며 그 집 분들이 나와서 함께 찬송을 불렀고 찬송 후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크게 외쳤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메리가 무슨 말인지를 몰랐는데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집은 찬송을 다하고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쳤음에도 불도 안 켜지는 집도 간혹 있었습니다. 정말 깊이 잠이 드신 것인지 다른 사정이 있으셨던 것인지 궁금했었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사탕, 과자, 뻥튀기, 빵 등을 준비했다 주시기도 하였고 어떤 집에서는 새벽송 대원들을 집으로 들어오라 하여서 몸도 녹이고 고구마나 떡국 등을 차려 주셨습니다. 한 집에서 먹는 건 괜찮은데 연속해서 차려 내시면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어 난감했지만 그래도 안 먹으면 서운 하실 것 같아 먹고 또 먹었습니다.

그렇게 싼타클로스의 자루처럼 큰 자루에 각 가정에서 준 사탕 과자 선물은 성탄일에 주일학교 아이들의 선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의 집 앞에 가서 성탄의 찬송을 부르고 싶으십니까?

자기집에서 혹은 누군가의 집을 찾아가서 1인 새벽송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 성탄의 소식은 목자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천사들이 성탄의 소식을 전할 자로 목자들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있었을 것입니다.

첫째는 그들이 깨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하였습니다. 새벽도 아니고 낮도 아니고 저녁도 아니고 밤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의 소식을 천사들이 누군가에게 알려야 했는데 그 밤에 이 소식을 받을만한 자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밤에 세상은 잠에 들어가 있어 천사의 소식을 들을 깨어 있는 자들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쁜 습관이기는 한데 잠들 때 종종 핸드펀 유투브를 듣다가 자곤 합니다. 그런데 깨어나 보면 한 오 분 정도도 안 된 정도만 조금 기억이 나고 그 뒤로는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잠들면 아무 지각도 아무 기억도 없습니다. 주님 앞에 우리가 깨어 있지 아니하면 잠들어 있으면 아무 것도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도둑이 와서 물건을 다 집어가도 막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 집 문에 오셔서 문을 두드리고 계셔도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으니 주님께 문을 열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말씀하신 우리 형상 우리 모양에 해당하는 우리 인격의 지,,의가 깨어 있어야 하고 우리의 영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귀의 수면제를 피해야 하고, 신앙은 예배인데 매 예배 시간에 깨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깨어 있음이라 함은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찬송이 힘참이며, 기도에 아멘이 됨이며, 설교가 들려짐이며, 헌금에 즐거움이 있음이며, 나 외에 다른 예배자 즉 타자와의 연결됨이 있음입니다.

일상적인 삶에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어야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깨어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말구유에서 나신 이가 메시야라는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심령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지역은 베들레헴 인근의 언덕이었을 것입니다. 그곳에 자기 양 떼를 지키는 깨어있는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자기 양떼라 함은 책임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지 소유에 있어 그러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인은 따로 있었고 그들은 주인의 양떼를 지키는 낮은 자들, 가난한 자들, 충성된 자들이었습니다.

이 양들은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에 제물로 쓰여질 양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양들을 보면서 그들에게는 낮은 자로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야의 영성이 깃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심이었는데 어떻게 강보에 싸여 구유 즉 마굿간에 뉘어 있는 아기가 구주 즉 메시야라는 표적이 된다 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표적이 무엇입니까?

이미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태어나실 방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였지만 베들레헴 그 어느 곳에도 예수님이 태어나실 방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메시야가 오신다면 모두들 저 예루살렘 왕궁에서 나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그 나라의 왕자가 될 자가 어떤 급한 사정이 생겨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려 하고 있었다면 누구나가 다 자기 집을 당장 비워서라도 사용하시라고 자원하였을 것입니다.

목자들은 메시야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받아들였고 그 소식의 곳으로 찾아갔으며 그 소식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강보에 싸여 구유에 나신 예수님을 보고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볼 수 있는 영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는 그들이 양을 치는 목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천사들은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은 이 목자들과 같이 자기 백성을 돌보실 분이심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편23편에 나오는 다윗의 표현과 같이 주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어서 쉴만한 물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실 분이시며,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실 분이시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실 분이시며,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실 분이시며, 끝내 자기 양의 생명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실 분이라는 것을 전하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2019년의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이 이와같은 우리의 목자이시듯이 이제 우리들에게 작은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9에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하셨습니다.

먼저 믿은 자로서의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그 때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통하여 이미 이루어진 일이며,

우리들을 통하여 이루어 가야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하나님께는 영광인데, 그 하나님께 영광은 사람들 중에 평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길은 우선 차별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의 정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전파하였다고 하는(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28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하였습니다.

차별당하지 않으려 애쓰는 삶에서 차별하지 않으려 살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올 성탄절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도, 우리 가정에도, 우리 교회에도, 우리나라에도, 열방 가운데도, 그리스도의 평화가 더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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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 기쁨의 좋은 소식
  • 2019-12-27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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