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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더욱 큰 은사

  •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13:1-13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01-26

성경 : 고린도전서13:1-13

제목 : 더욱 큰 은사

 

최근에 저는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를 알았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은 상대를 기준으로 하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누구를 사랑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이 은사라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지혜와 지식과 믿음과 병고침과 예언과 능력과 영분별과 방언과 통역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12:31에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더욱 큰 은사는 사랑의 은사입니다. 그래서 이어진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사랑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말씀하신 아홉 가지 은사와 사랑의 은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고전12:11에서 이 모든 일 즉 성령의 아홉가지 은사는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12:7에는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는데 이 유익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유익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이 은사는 받은 자에게도 유익이 됩니다. 예를 들어 병고치는 은사는 그 은사를 통하여 교회에 유익을 주지만 본인에게도 유익이 있습니다. 능력자로 인정을 받고 많은 이들이 따르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다른 은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에 사랑의 은사에 대해서는 사모하라 하셨습니다.

사모하다는 말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원어를 찾아보았더니 젤루테였는데 이는 열심을 내다, 노력하다, 시기하다, 질투하다 등의 뜻이었습니다. 사랑의 은사에 대하여 그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시편 107:9에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하셨습니다. 사모한다는 뜻의 히브리어 샤카크는 갈망, 목마름의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모함으로 사랑의 은사를 구하라는 뜻입니다.

사랑의 은사는 그러한 대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은사가 나타남을 열거하신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오래 참음, 온유함, 시기하지 않음, 자랑하지 않음, 교만하지 않음, 무례히 행치 않음,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음, 성내지 않음,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함, 불의를 기뻐하지 않음, 진리와 함께 기뻐함, 모든 것을 참음, 모든 것을 믿음, 모든 것을 바람, 모든 것을 견딤이라 하셨습니다.

죄인된 인간의 속성상 하나하나가 너무나 어려운 일들입니다.

대개가 오래 참는 것 싫어합니다. 자랑하고 싶습니다. 손해나는 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분노를 �아내고 싶고, 모든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고 싶은 것을 바라고 싶습니다.

사랑의 은사를 나타내는 이 일들이 어려운 일들이라 어찌 겨우 해 낸다 하더라도 내게 남는 것이 없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사랑하고 나면 그 일들로 인한 상처, 박탈감, 회의, 무력감 등이 남게 됩니다.

그러니 다른 은사들은 오히려 사모하고 구하고 싶지만 사랑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사모하고 싶은 이는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 하셨을까요?

사랑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믿음 생활을 위해서는, 교회에 다니기 위해서는) 그 사랑의 은사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사랑은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알아야 할 말씀들이 있습니다. 창조냐 진화냐 하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하고 그래서 관련된 공부도 해야 할 내용들입니다. 믿어야 할 말씀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들입니다.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말씀, 그 메시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주요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말씀 등입니다. 지켜야 할 말씀들이 있습니다. 하지 말라 혹은 하라 로 되어 있는 계명의 말씀들입니다. 이는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할뿐더러 반드시 지켜야 하는 말씀들입니다.

사랑은 계명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율법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마22:37-39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주님께서 일러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요한복음13:34-35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하심으로 새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은사가 없이는 이 사랑의 계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둘째 사랑의 은사를 통하여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8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셨는데 알지 못하는 자를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톨스토이를 통해서 몇 가지를 배웠습니다. 가장 귀중은 일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가장 귀중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귀한 시간은 지금이라는 것을 그리고 사람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사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5:8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다른 어떤 것으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 사도도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심은 오직 그의 사랑으로 인함이라 하였습니다.

사랑의 은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며 믿을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랑으로 하지 않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 사랑하는 흉내는 낼 때가 있습니다. 오래참기도 하고 무례히 행치 않으려고도 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으려고도 하는데 그러면서도 두렵고 낙심이 되는 것은 이 일들이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인함인 것 같다 하는 생각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신 말씀이 비유나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사랑 없는 예언은 예언이 아니며 사랑 없는 방언은 방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랑 없는 충성과 헌신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하심도 사랑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며 사랑 없는 소망도 소망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지난 삼 주간 올 해 우리에게 주신 표어 소금과 빛 되는 교회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교만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어떻게 소금되고 빛 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는 가운데 그 사랑의 은사를 받아서 소금과 빛 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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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욱 큰 은사
  • 2020-02-07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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