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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성경말씀 : 빌립보서4:4-9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02-09

성경 : 빌립보서4:4-9

제목 :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모든 시대마다 사람들이 느끼던 두려움은 달랐습니다.

이 시대는 경제적 상황, 통장잔고, 건강검사수치, 자연재해, 전쟁, 관계의 단절 등이 그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시대에 사람들은 귀신과 악마를 두려워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마녀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14세기의 유럽은 흑사병 같은 전염병이 가장 큰 공포였습니다.

갑작스레 오한이 나며 40도를 넘나드는 고열이 동반됩니다. 환자는 곧 의식을 잃고 헛소리를 늘어놓는데, 길면 2, 3일에서 짧게는 발병 24시간 만에 숨을 거둡니다. 시체에는 검은 반점이 생겨났습니다. 14세기 중세 유럽을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간 페스트의 증상입니다. 당시 의술로는 발병 원인도, 치료법도 알 수 없었기에 그저 신이 내린 형벌로만 인식되었던 이 병으로 1340년대 유럽에서 2,000~3,000만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유럽 인구의 5분의 1 내지 3분의 1이 희생된 것입니다.

극한의 공포 속에서 유럽인들은 공황 상태로 내몰렸습니다. 흑사병의 여파로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백년 전쟁도 중단될 지경이었습니다. 교황청의 추기경마저 절반 이상 사망해 종교가 위안을 줄 수도 없었습니다.

두려움은 인간을 어리석게 만들고 이기적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지혜를 찾는 것이며 이타적이 되는 일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이 두렵지 않게 됩니다.

악마의 소행이라는 미신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점차 집단 학살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악마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유대인이 대표적인 표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유대 인들은 고문에 지쳐 자신이 우물에 독약을 풀어 흑사병을 유행시켰다는 거짓 자백을 했고, 그 대가로 생매장되거나 산 채로 화형 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때에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병든자들을 돌보아 주었던 모습과는 상반된 행동을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희생양을 만드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악 중의 악입니다. 그리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질병보다 더 큰 두려움을 만들어 냅니다. 악마보다 병균보다 자연 재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죄에 물든 사람보다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빌립보서를 쓴 것은 로마의 옥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소위 옥중서신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연대를 추정하면 주후 62-63년경에 쓰여 졌을 것입니다. 로마제국에 의한 기독교 박해도 있었고 유대인들에 의한 박해가 심했던 시기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지도자들이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두려움과 갈등 중에 있었을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삶의 지침입니다.

첫째는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하셨습니다.

카이레테 라는 이 말씀은 명령형입니다. 당신은 혹은 당신들은 기뻐하라 하신 말씀입니다.

명령은 상황이 좋거나 가능할 때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편이던지 이행해야 하는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두려움이나 갈등이 찾아왔을 때 그 일들에 의해 영향 받지 말고 기쁨을 나타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바울 사도께서 데살로니가전서 5:16에서도 항상 기뻐하라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18에서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 일 그리고 이루어 질 일들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하셨습니다.

관용이라는 말 에피에이케스는 공정한 정당한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관용은 공정함과 정당함을 바탕으로 그것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잣대를 적용했다가 다른 사람에게는 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잣대에 허용치를 두라는 말씀입니다. 너희 관용이라 하셨으니 이 관용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남의 것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것을 사용 혹은 희생함으로 그리 하라는 말씀입니다.

관용은 한 사회 공동체를 돌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용을 나타낼 수 있음에 대해서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하였습니다. 가깝다 라는 말은 엥귀스인데 이는 거리상 시간상을 공히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시간상으로 보면 주님의 재림이 가깝다는 말씀이고 거리상으로 보면 주님이 가까지 계시다는 뜻입니다.

이기심이나 편견을 갖지 않고 공정한 것도 사실은 죄인인 인간에게 어려운 일인데 거기에 더하여 관용하는 일은 힘에 부치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까이 계셔 도와주실 터이니 할 수 있게 하실 터이니 미리 포기하지 말고 안 될 일이라고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그리 하라는 말씀입니다.

어제 사무실에서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낯선 분이 인사를 하면서 배가 고파서 왔다고 하였습니다. 얼마의 돈을 드리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순간 적으로 저분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할 의도가 없었는데 그 생각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생각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이것을 내 생각이라고 해야 하는지 난감했었습니다.

돈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가까이 다가가야 했고 해서 들어오시라 했고 그렇게 해 드렸습니다. 그래도 이미 저의 마음속에 관용이라는 말씀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37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두려운 일을 계속하라고 하면 주저하게 되겠지만 일정한 기간이라면 그것도 잠시 잠깐 이라면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가 아주 가까이 왔으니 우리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며 살 수 있고 그리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셨습니다.

영등포쪽으로 차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교회 건물인지 다른 곳이었는지 큰 글씨로 이런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염려함으로 염려가 없어진다면 세상에 염려할 일이 없겠네! 수사학적으로는 그럴듯한 표현이지만 실제로 염려가 없는 삶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두려움과 갈등은 염려와 근심을 동반하게 마련입니다.

마가복음 9:29에서 변화산 사건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기도 하면 이런 종류들이 나간다는 말씀인데 이런 종류들 안에 두려움과 갈등 염려와 근심도 들어 있습니다.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셨는데 이 감사는 현재에 대한 긍정과 미래에 대한 성취를 동시에 포함한 말씀입니다.

기도를 할 때에 원망하면서 한탄하면서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현재의 삶의 자리가 어떠하더라도 그 가운데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바라보면서 드리는 기도이며 끝내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미리 바라보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우리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를 드리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이라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권면 하시기를 아무리 두려움과 갈등이 있다 할지라도 무엇이 참된 것인지를, 경건한 것인지를, 옳은 것인지를, 순결한 것인지를, 사랑스러운 것인지를, 명예로운 것인지를, 또 덕이 되는 것인지를, 칭찬할 만한 것인지를, 이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골똘히 생각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의에 관심이 있으시고 의를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이에 관심이 있으며 이를 따르려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건 속에서도 의를 말하는 사람들은 없고 다 이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한 중앙병원의 의사 리원량 박사는 자신의 안위보다 의를 따라 행동한 이였습니다. 의를 생각한다면 왜 이런 일이 생겨났는지 혹 사람들이 자연환경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긴데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며 회개하며, 이 고난 속에서 나보다 혹은 우리보다 약한 자들을 돌보는 삶을 살아야 할 터인데 대개는 그런 일에 무관심하며 나의 안전과 내가 현재 얼마나 손해인지 앞으로 얼마나 더 손해를 봐야 할지만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러분은 나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들을 실천하십시오. 그리하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먼저 믿은 우리들이 세상을 향하여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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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2020-02-14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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