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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우상의 제물

  •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8:1-13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02-23

2020223일 주일낮 예배

성경 : 고린도전서8:1-13

제목 : 우상의 제물

고린도 교회는 아가야 지방에 위치한 항구도시에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풍요했지만 그에 따르는 타락의 문제가 있었고 그 지역 자체가 헬라 문화권에 있었기 때문에 만신을 믿는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곳이며 그 우상 숭배는 종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든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신을 섬기던 그 우상의 제사에 참여해야 했으며, 시장에 나오는 모든 물건들은 일단은 우상에게 먼저 바쳐지고 그 다음에 시장으로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제물로 쓰였던 고기들이었습니다.

이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시장에 나온 고기들에 대하여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는 네 가지 부류의 교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는 유대적 배경을 가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이들이었습니다.

둘째는 영지주의적 관점을 가진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이들이었습니다.

셋째는 복음의 진리를 알기는 아나 아직은 믿음이 약하여 먹기를 꺼려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넷째는 복음의 진리 안에서 먹을 수 있으나 믿음이 약한 자들을 위하여는 기꺼이 고기 먹는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 서신은 바울이 먼저 각 교회에 쓴 것이 아니라 각 교회에서 온 질문들에 대한 답변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질문 중에 하나는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느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우상은 없고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모든 것은 그에게서 난 것이니 먹지 못할 것은 아니로되 먹고 안 먹고는 각자의 자유라는 말씀이었습니다.

8절에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살자는 것도 아니니라 하셨습니다.

9절에서는 다만 이러한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셨습니다.

10절에 지식이 있는 자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믿음이 약한 자가 보고 일시적으로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고는 그 후에 그 일로 인하여 실족한다면 그에게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며 또한 그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께도 죄를 짓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중요한 것이지만 지식을 따라서만 행하지 말고 지식이 채우지 못하는 빈 자리는 사랑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 사도는 13절에서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지식은 나를 중심으로 하는 속성이 있다면 사랑은 내가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이 중심이 되는 일입니다. 타자들이 나를 위하여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방을 위하여 마스크를 쓰는 일입니다.

 

바울은 타자 중심의 삶에 대하여 갈라디아서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나의 안전, 닫힌 우리의 안전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염려하는 삶입니다.

30대의 젊은 의사 이원량은 생전에 계시는 부모님들의 아들이었으며 임신중인 젊은 아내의 남편이었는데 용기를 내어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 증세를 세상에 알렸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환자들을 진료하다가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믿음의 삶이란 타자를 위한 삶인데 그 믿음을 길을 가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삼상25:29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이른 말 중에,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139: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여기서 나의 앞뒤란 전쟁터에서 다윗을 주님의 손으로 감싸 주신 것을 말합니다.

이사야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마태복음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이 말씀들에 대하여 내게 안전이 보장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큰 소리로 아멘을 하면서도 막상 이 말씀들이 현재의 이 위험한 상황에서 나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인지를 의심하게 되는 것은 매우 곤혼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는 상식을 말해야 하고, 교회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을 말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바뀌어서 세상을 향해서는 믿음을 선포하고 교회 내에서는 상식을 우선한다면 지혜롭지도 못한 일이며 소망이 없는 일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두려움은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들며 어리석게 만들고 폭력적이게 만들어 왔습니다. 이는 세상의 역사이고 세상이 가는 넓은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은 같은 길을 갈 수 없고 좁은 길을 가야합니다. 이기적인 길이 아니라 이타적인 길입니다. 어리석은 것 중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러기에 지혜로운 길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아주 지혜로워 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만들어 내는 폭력은 주로 희생양 즉 약자들을 향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지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 아사셀의 염소와 같이 세상 죄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스스로 지고 가신, 세례 요한이 남긴 그 유명한 말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신 그 분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며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일에도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댓가가 있다면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노 중에서도 주님의 긍휼하심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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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상의 제물
  • 2020-02-24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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