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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주님의 긍정

  • 성경말씀 : 누가복음13:6-9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9-07-07

성경 : 누가복음 13:6-9

제목 : 주님의 긍정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시대의 선지자였습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하루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에스겔이 보니 거기에는 지면에 뼈가 심히 많았고 아주 마른상태였습니다.

추정해 보면 그곳에서 큰 전쟁이 있었던지 아니면 학살 사건이 있었던 것인데 아무도 그 시신조차 매장하지 않은 상태로 오랜 시간이 지난 마른 뼈만 남은 상황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물으셨습니다.

에스겔의 생각은 당연히 어떻게 이 뼈들이 그것도 마른 뼈들이 살겠습니까? 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이니까 조심스럽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대답하였습니다. 긍정적으로 대답한 것 같지만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는 확실한 부정을 말한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 보면 마른 뼈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그 위에 힘줄이 붙었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리고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살아나서 극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벳새다 들녘에서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가는 무리들이었을 것입니다.

날이 저물어 식사 시간이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셨습니다.

빌립의 대답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하였는데 이 말의 뜻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불가능 하는 가 하면 한 아이에게 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적어도 남자만 오천 명 되는 무리를 먹이려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상황 속에서도 긍정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앉게 하셨습니다. 책임을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빌립이 말한바 조금씩이 아니라 그들의 원대로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심으로 그들을 배부르게 하셨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여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기원전 2세기 시몬이 대제사장으로 있던 때에 세워진 길이 100 ~110m, 너비 62 ~ 80m, 그리고 깊이 7 ~ 8m의 두 개의 쌍둥이 연못으로서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종교적, 의학적 치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이곳에 정자와 같은 행각이 다섯 있었는데 거기에 여러 종류의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 연못으로 천사가 내려오는 일이 있는데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첫 번째로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낫는다는 이야기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소망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절망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병자들이 거기에 모여 있었던 것은 이미 갈 데가 없는 병자들이었고, 그곳에 많은 이들이 구제를 하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연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병이 나고부터 38년인지 그곳에 있은 지가 38년인지는 구분이 되지 않지만 그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병이었습니다.

그러니 천사가 내려와 물을 동한 후 첫 번째로 들어가는 자는 병이 낫는 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가 들어가 가능성은 없는 절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가셔서 그를 만나 주셨고 먼저 그에게 말을 걸어 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그는 베데스다 못에 들어갈 필요도 없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그의 삶의 구조적 절망이 그리고 실재적 절망이 해결함을 받은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절망 중에 있었던 한 아이의 아버지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무리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하셨습니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일입니다.

포도원은 아주 좋은 땅 비싼 땅이고 무화과는 좋지 않은 땅 혹은 주인 없는 땅에서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니 무화과나무가 포도원에 옮겨 심어졌다는 것은 특별한 은혜인 것입니다. 바로 결론의 말씀중 하나로 나아가면 그 무화과나무가 저와 여러분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는 포도원입니다. 특별한 땅 거룩한 땅입니다. 내가 그곳에 심겨 졌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깨닫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가 당연한 자리가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주어진 곳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같은 것입니다.

포도원에 옮겨 심겨진 무화과나무에 열매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삼년을 기다렸는데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지기에게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제자라는 자리로 옮겨진지 3년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에 우선 제자들이 충격을 받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하셨는데 우리도 땅만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포도원지기가 대답하기를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습니다.

포도원지기의 말의 중심은 부정에 있지 않고 긍정에 있습니다.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은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병리적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가 아니라 일시적인 문제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니 그 문제를 해결하면 좋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고 계신 모습이고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대하고 계신 모습이며 우리에게도 우리의 이웃들을 그리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그 사람은 원래부터 안 될 사람이야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가리켜 마가복음14:21에서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하심도 그의 운명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제라도 돌이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고후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셨습니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상황이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부정적이라 해도 그것을 근거해서 내가 내린 판단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다만 사족을 단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이 내가 바라는 대로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은총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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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님의 긍정
  • 2019-07-12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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