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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그리스도의 일꾼 교사

  • 성경말씀 : 디모데후서2:15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9-07-14

제목 : 디모데후서 2:15

제목 : 그리스도의 일꾼 교사

 

이번 주부터 교회학교 여름행사들이 시작됩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 여름성경학교에 열심히 나갔었고 그 때 들었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이 있습니다. 그 땐 전도사님이 없으셨고 부장집사님이 설교도 하시고 하던 때였는데 주로 이야기가 설교였습니다.

하셨던 이야기 중에 한 아이가 성경학교에 가기가 싫어 아침부터 개울가에 가서 놀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자신이 물고기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성경학교에 갔다 온 친구들이 족대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기 시작하는데 자신도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잡혔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눈물로 얘들아 나야 나 하면서 애걸을 했지만 당연히 친구들은 그 말을 들었을 리 없고, 친구들이 자기를 잡아서는 작은 망태기에다 던져 넣었는데 숨이 막혀 그렇게 고생 고생하다가 깨어보니 꿈이더랍니다. 얼른 교회로 달려가 보니 흰 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하는 여름성경학교 찬송이 들려오고 있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울 사도께서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만남은 아마도 바울의 1차 전도여정 중 루스드라였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그 당시 루스드라에서 어머니 유니게와 헬라인 아버지 그리고 외조모 로이스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돌에 맞았을 때 디모데는 그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바울이 2차 전도여정에서 다시 루스드라에 오자 전도자의 길을 따라 나섰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후 디모데는 바울에게 있어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자였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부모가 있습니까? 그리고 믿음의 자녀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믿음의 동역자가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누구의 믿음의 동역자입니까?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유서입니다. 바울은 생의 마지막에 디모데가 함께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전후서를 통하여 여러 말씀들을 목회적 차원에서 당부하고 있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바울의 뒤를 이어 일군이요 교사요 사명자 이었던 디모데에게 주어진 것 같이 우리 모두에게도 임하시는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첫째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 하였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디모데에게 있어서는 구약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신구약성경입니다.

성경은 기독론적으로는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는습니다.

구약은 옛 약속으로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고 신약은 새 약속으로 그 메시야가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고 또한 재림주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내용적으로 보면 구약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열왕기상18:21에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고 하나님은 최고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묻는 내용은 여호와라고 하는 신이 최고의 신이냐 바알이라고 하는 신이 최고의 신이냐 너희가 택하라는 것입니다. 왜 두 신 사이에게 머뭇머뭇하고 있느냐고 선택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은 애굽대로 바벨론은 바벨론대로 에돔은 에돔대로 암몬은 암몬대로 아람은 아람대로 다 자기들이 섬기는 신이 하나님이라고 하였던 것이고 그들은 너희와 같이 작고 약한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라는 신이 최고의 신인 하나님이 될 수 있겠느냐 고 묻는 것이고 구약성경의 말씀은 역사를 통하여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고 증언하고 있고 거기에 더 나아가 다른 신은 없고 오직 여호와 만이 하나님이시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 구약성경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 다는 것입니다.

신약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내용입니다.

구약과 마찬가지로 예수는 예수님의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생각은 저 나사렛 출신의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여러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증언과 그리고 예수님 자신의 증언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과 같이 오직 예수만이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그 어느 사람도 어느 권력도 어느 논리도 구원자 혹은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신약성경의 진리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자이시며 그리고 심판자이시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1:2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성경을 1년에 1독은 꼭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들을 삶 가운데서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것이 되며 그에게 복이 있습니다.

적용으로 한 말씀을 더 드리면 성경말씀이 창문이 되고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창문을 통하여 세상을 보는데 그 창문이 어떤 모양 어떤 색깔 어떤 재질이냐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방송이나 신문이나 소식매체들을 통하여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성경이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나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창문 그러한 거울을 만드는 일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둘째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으라 하였습니다.

무엇이 지금 우리의 부끄러움입니까? 솔직하게 심각하게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선은 나의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그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남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그리고 하나님 앞에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부끄러움이 발견되었다면 그 부끄러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회개하며 애를 쓰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3:17-18의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낸 말씀 중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일곱 안수집사를 세울 때 기준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은 기도와 관련이, 지혜는 말씀과 관련이, 칭찬은 인정과 관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권위주의와 권위는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율법은 좋은 것이지만 율법주의는 그렇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권위가 곧 인정이고 인정을 받지 못하면 일을 즉 사명을 감당할 수 가 없습니다. 저도 청년 때에 교회학교 교사였는데 소년부 교사를 하였을 때 처음에는 아이들이 잘 따라주지 않았는데 그 아이들의 속사람과 만나고 나자 그 다음부터는 제가 하는 모든 말을 아이들이 따라 주었습니다. 공과공부 시간에 아이들보고 조용히 해 달라고 하면 아주 신기하게 조용해 졌습니다. 권위가 생겼고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어떡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은 우문이지만 현답을 한다면 경건한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그러면 나에게 권위가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

 

셋째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예배는 우리의 어떤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 가인은 농사한 것으로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고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다 하셨습니다. 잘못 생각하면 제사가 열납 되고 그렇지 않은 것이 제물의 문제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결코 그렇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 것은 그의 제물이 아니라 가인을 받지 않으신 것이고 아벨을 받으신 것입니다. 즉 그들이 제사를 드리러 나오기까지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특별한 교사는 보조교사였습니다. 그의 역할은 안 올 것 같은 아이에게 주일 날 미리 전화해서 데려 오는 일이었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 주일 아침에 차가운 손을 청바지 뒷 주머니에 넣고 아이를 데리러 가던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 교육은 자아의 실현이 교육의 목표이지만 그것이 좋은 면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 신앙은 자아를 버린 만큼 주님으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나를 포기하는 만큼 주님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내가 주님으로 채워진다고 하는 것보다 더 멋있는 일은 없습니다. 주님으로 채워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큰 행복이고 기쁨입니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에 힘쓰는 것은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 없어지는 과정인 것 같지만 사실은 없어지는 만큼 주님으로 채워지는 과정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 되시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시는 그리스도의 일꾼 교사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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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의 일꾼 교사
  • 2019-07-19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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