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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한 아이의 믿음

  • 성경말씀 : 열왕기하5:1-7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9-07-21

성경 : 열왕기하5:1-7

제목 : 한 아이의 믿음

 

믿음의 사람을 무너트리는 사단의 10가지 전략

. 첫 번째 전략 <교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도 하나님과 동등해지려는 교만 때문이었고,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타락한 이유도 교만이다. 이처럼 교만은 가장 오래된 사탄의 전술로 지금도 사탄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 두번째 전략<절망>

성도들을 무너지게 만드는 방법으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당한다.

교만은 좀 잘났다는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적용되고 절망은 자신이 못 났다고 생각하는 열등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이 적용된다.

. 세 번째 전략 <비교의식>

CS 루이스는 현대의 마귀는 비교의식 통해 인간을 유혹한다고 했다. 이 비교의식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기도 하며 절망에 빠뜨리기도 한다. 자기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자신의 기준으로 좀 나은 부분이 있다면 교만해 지고 그렇지 못하면 절망하게 한다.

. 네 번째 전략 <의심과 불신>

본래 의심은 사탄이 하와의 마음속에 심어 놓은 독초였다.

이것이 들어가자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선악과를 따 먹게 되었다.

물론 의심이란 때로는 진리 탐구의 자극제가 되기도 하지만 신앙에서는 큰 장애물이 된다. 왜냐하면 의심으로 인해 신앙의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 다섯째 <거짓말>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거짓말을 금하시고, 잠언6장에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중 하나에 거짓말이 포함된다.

거짓말은 사탄으로부터 시작돼 세상에 번지기 시작했는데 이 거짓말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인간사이의 관계를 깨뜨린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다..

. 여섯째 전략<미움>

사탄의 여섯 번째 전술은 미움이다. 미움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거의 없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나타난다. 미움의 역사를 보면 가인과 아벨에게서 시작된 것을 볼 수 있다.

. 일곱 번째 전략<불평과 불만>

불평은 또 다른 불평을 낳고 원망은 또 다른 원망을 낳는다. 마침내 불평은 습관이 되고 만다. 그러나 불평의 내용을 살펴보면 문제가 커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교만하여지고 좁아졌기 때문에 불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여덟 번째 전략<내일 작전>

사탄의 여덟 번째 전술은 내일 작전이다.

사탄은 우리가 영적이고 선한 일을 계획하지 않거나 내일 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항상 미래를 계획하고 꿈에 부풀려있지만 사탄은 우리가 내일부터 해야지라 말할 때 실행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 아홉 번째 전략<불성실성>

사탄의 아홉 번째 전술은 불성실이다. 성경을 보면 사탄은 자신의 일에 부지런한 사람들을 유혹하지 않고 항상 게으른 사람, 즉 불성실한 사람들을 골라서 유혹해 이용했다. 다윗이 범죄를 저지른 것 역시 부하들이 모두 나가 싸우고 있을 때 혼자서 지붕 위를 거닐고 있다가 사탄의 유혹을 받았다.

. 열 번째 전략<외식>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외식이다. 왜냐 하면 외식은 천국 가는 길을 막는 마지막 전술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가 되기보다는 사람들 앞에 어떻게 보이기를 더 원한다는 데 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 어린 아이는 이름도 없는 어린 소녀이지만 아브라함, , 레갑족속의 자손들 만큼이나 믿음의 인물입니다.

본문에는 나아라 케타나로 되어 있는데 나아라는 소녀에서 여종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고 케타나는 작은 혹은 어린의 뜻이니 열 두 세 살 정도의 아이로 여겨집니다.

사리분별이 안 되는 어린 아이도 아니고 또한 성인도 아닌 나이로 보입니다.

어제 아동부 여름성경학교를 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는 아이였을 것입니다.

이 아이가 그만 이스라엘로 약탈을 하러 왔던 아람 사람들에게 붙잡혀 가서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부인의 시종이 되었습니다.

아람은 지금의 시리아 지역을 의미하며 무역에 능하기도 하여 부강하였으며 상당한 지역에 아람어를 전파하였고 예수님 당시에도 일상용어로는 아람어가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달리다굼 에바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도 아람어입니다.

어린 아이가 갑자기 이런 일을 당했으니 얼마나 큰 충격이고 두려움이었겠습니까?

여름성경학교에 온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를 떠나서 교회에서 잠을 자게 되었답니다. 그 아이에게 엄마 없이 잘 수 있겠니? 묻자 이 아이가 심각하게 대답하기를 노력해 볼께요! 하였는데, 그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도 이 아이가 얼마나 고통과 두려움에 있었을까 생각났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사단의 전략 두 번째 절망에 빠졌을 법도 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되게 된 것에 대해 일곱 번째인 불평과 불만을 나라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갖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아이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나아만이 나병환자인 것을 안 아이는 나아만의 부인에게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하였습니다.

철없는 아이의 단순한 말로 여기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큰 믿음의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나아만 혹은 나아만의 부인 혹은 자기 또래의 나아만의 아이들에 대한 긍휼함이 들어 있습니다.

비록 아람은 늘 이스라엘 보다 강했고 적이었지만 나아만은 적국의 군대장관이었지만 이 아이가 본 것은 나병환자 혹은 나병환자를 남편으로 또는 아버지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은 인간적인 이해관계나 그 모든 상황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1절에 나아만에 대해서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 하신 것 같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는 나아만의 나병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단의 네 번째 전략인 의심과 불신을 이겨내는 믿음이었습니다.

어떤 연고로 이 아이가 이와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이 아이는 엘리사를 알고 있었고 그가 나병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제 아동부 여름성경학교 순서 중에 조별로 성극을 발표하는 일이 있었는데 제가 심사위원으로 임명되어서 엄격하게 심사를 보고 있었는데,

한 조에서 오병이어 사건을 재현하는 촌극을 하였습니다.

한 아이가 오병이어를 담은 바구니를 예수님께 내어 놓았고 예수님께서 그것에 축사하시자 다른 아이가 고래밥을 그 바구니에 쏟아 부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참 기가 막혔습니다. 그 고래밥을 조원들이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는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는가 했는데 그 물고기 두 마리가 고래였던 것이었습니다.

벳새다에서도 그 아이가 자신의 오병이어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다 알고 한 것은 아니었듯이 아람에서의 이 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의 계산하지 않은 믿음의 증언이 큰 역사를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말은 큰 능력입니다. 언제나 할 수만 있으면 믿음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22:5에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한 말인데 개역성경에는 우리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우리가 가 있습니다. ‘세부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가 돌아올것이다는 뜻입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면 우리가 가 불가능하고 이삭을 번제로 바치지 않으면 우리가 가 되는 일인데 아브라함은 바치기로 하고 올라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돌아오겠다 한 것이 믿음의 말입니다.

14:13에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고 모세는 증거합니다.

뒤에는 애굽군대가 추격해 오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한 믿음의 선포인 것입니다.

룻기1:16에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므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한 룻의 고백도 그에게 아무것도 약속되어 있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3:17-18에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는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불 앞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선언한 믿음의 증언이었습니다.

 

그냥 흘러가 버렸을 수도 있었을 이 아이의 말이 정말 놀랍게도 나아만의 부인을 움직였고 나아만을 움직였고 아람왕을 움직였습니다. 이것은 큰 능력이고 역사입니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적어도 이 아이의 삶이 나아만의 부인이 보기에 신뢰할 만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 아이의 삶이 다섯 번째 거짓에 물들어 있지도 않았고 열 번째 위선에 빠져 있지도 않았고 나아만의 부인이 보기에 인정할 만한 그 무엇이 있었기에 이 아이의 믿음의 증언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아이의 삶이 온전했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아이의 삶에서 기적과 능력이 나타났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신뢰할 만한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못 믿을 아이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에게는 믿음의 증언이 있었고 그 증언을 뒷받침 할만한 삶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말이 그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내 말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언을 뒷받침 할만한 온전한 삶이 아니라 최소한의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왕은-열왕기의 전후 상황에서 보면 아람왕은 벤하닷이었을 것이고 이스라엘 왕은 기원전 850년경의 북이스라엘의 다섯 번째 왕인 여호람이었을 것입니다.

아람왕의 요청에 대하여 자기 옷을 찢으며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였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 왕의 분석은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정황분석도 정확하고 인물분석도 틀림이 없고 국제상황에 대해서도 바른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 속에는 그 어디에도 하나님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방정식을 만든다 하여도 그 방정식에 하나님을 대입하지 않으면 바른 답이 나올 수 없습니다.

 

여름성경학교 동안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 아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혹 이 아이처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절망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생각과 말 속에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도 그와 같은 믿음의 증언이 있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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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아이의 믿음
  • 2019-07-26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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