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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여호와께 순종하소서!

  • 성경말씀 : 예레미야38:17-23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9-08-04

성경 : 예레미야 38:17-23

제목 : 여호와께 순종 하소서

이스라엘과 한국의 역사는 특이하게도 비슷한 점을 여럿 갖고 있습니다.

지리상으로 이스라엘 땅은 아프리카와 유럽의 교량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대양 세력과 대륙세력의 교착점에 놓여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이러하다 보니 전쟁이 많은 땅이었습니다. 당연히 고난의 역사를 살아 왔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밭에 감추인 보배 비유는 전쟁이 빈번한 상황에서 보물을 집에 두지 못하고 밭에다 땅을 파고 비밀 장소를 만들어 숨겨 두었던 데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도 여러 전쟁을 치렀고 때로는 크게 패하여 존립이 어려울 것 같은 일들이 있었지만 오천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상이한 상황이긴 하지만 민족이 남북으로 둘로 나뉘어져 극한 대립을 하는 역사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신앙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제사장의 나라 혹은 복음의 촛대를 부여 받은 개념이 들어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덧붙인다면 두 민족 다 달란트가 많다 할 수 있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우수한 민족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남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말년입니다.

당시의 정세를 보면 북이스라엘은 134년 전인 기원전 722년 앗수르제국에 의해 이미 멸망되었습니다. 요나서에 나오는 수도가 니느웨인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이어서 남유다도 침략했었지만 후에 새로 일어난 바벨론제국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바벨론에 패한 앗수르는 수도를 빼앗기고 유프라테스 강의 상류인 하란에서 재기를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바벨론은 앗수르를 완전히 제압하기 위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또 하나의 강대국이었던 애굽은 바벨론의 세력이 급성장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앗수르를 도우려 하란 근방에 있는 지금의 레바논의 북쪽과 터키의 영토가 접해 있는 갈그미스로 군대를 보냈습니다. 애굽 왕 느고가 친히 이끄는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의 므깃도 지역을 지나려 하고 있었을 때 남유다의 요시야 왕이 군대를 일으켜 애굽 군을 가로막았습니다. 요시야의 판단은 히스기야 왕을 문병 왔던 바벨론을 돕는 것이 이제까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유다를 약탈했던 앗수르를 돕는 것보다 유익 하겠다 여겼던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히스기야 왕에 버금가는 신앙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판단이 적합한 것이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역대하35:21 이하에 보면 므깃도에서 애굽의 왕 느고는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하였지만 요시야는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그가 중상을 당하여 예루살렘에 와서 죽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습니다. 이 때가 기원전 609년입니다.

애굽과 앗시리아는 갈그미스 1차 전투에서 바벨론을 막아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애굽의 느고는 유다에 들려 요시야 대신 왕이 된 요시야의 둘째 아들 여호아하스를 폐위시켜 포로로 잡아 애굽으로 돌아가면서 대신에 첫째 아들 엘리야김을 유다의 왕으로 세웁니다. 이 때 유다는 당연히 애굽을 섬기게 됩니다.

그로부터 4년 뒤 기원전 605년 갈그미스에서 애굽 앗수르 연합군과 바벨론의 2차 갈그미스 전투가 있었고 그 전쟁에서는 바벨론이 대승하여 고대근동의 절대강자가 되었습니다.

바벨론은 유다에 와서 애굽 대신에 바벨론을 섬길 것을 요구하자 3년간 그리하다가 다시 친 애굽정책으로 돌아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선지자들을 통해 계속 말씀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이미 출애굽 때부터 기회만 있으면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은 재차 유다를 침략해 와 여호야김 뒤를 이은 여호야긴을 폐위시키고 여호야긴을 포로로 잡아가고 요시야 왕의 셋째 아들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웁니다.

남유다는 스스로 자신들의 왕을 세울 수도 지킬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역사 어느 곳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일까요?

시드기야는 얼마동안 바벨론을 섬기다가 다시 친애굽 정책으로 돌아섭니다.

당연히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은 이번에는 유다를 멸하기 위하여 군대를 보냈습니다.

이 상황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벨론에 항복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하니 유다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예레미야는 매국노 혹은 거짓 선지자로 여김을 당했고 눈물로 지내야 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사람을 보내어 선지자 예레미야를 여호와의 성전 셋째 문으로 데려와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냐고 묻습니다. 예레미야의 대답은 바벨론에 항복하면 생명도 건지고 이 성도 불사름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예레미야는 다시금 20절에 내가 왕에게 아뢴 바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전하시리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드기야 왕과 남유다는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기보다 애굽을 의지하여 바벨론에 항전하는 쪽을 택하였고 그 결과는 2년여의 전투 끝에 기원전 586년 남유다는 멸망하여 성전도 불탔고 백성들 중에 유력자들은 모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이 계시적 사건 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므깃도에서 바로 느고가 한 말은 사실이었을까?

요시야 왕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남유다는 바벨론에 항복했어야 한 것이었을까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끝내 항복하지 않은 그 이후 남유다의 역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가 예언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역사의 한 단면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교훈은 분명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신 것처럼 앗수르, 애굽, 바벨론, 페르시야, 헬라, 로마에 의해서가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역사는 이루어진다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예언서와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계시록을 통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확실 체념 속에 있지 아니하고 또한 다른 것에 의존하거나 소망을 두지 말고 우리에게 주신 말씀대로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순종의 시작은 나로부터입니다. 나 하나의 삶이 무슨 의미나 영향력이 있을까 하지만 나 한 사람의 시작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국제적인 여러 문제들이 점점 더 복잡해 져 가고 어려워 져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그리될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정치인은 정치에서 경제인은 경제에서 군인은 군에서 외교인은 외교의 자리에서 그 역할들을 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나 자신부터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소서하신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시작을 알고 역사의 종말을 압니다.

그렇지만 현재 진행되는 그 과정은 우리가 다 알지 못합니다. 주님의 손 안에 있다고 하는 믿음이 있을 뿐입니다.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우리의 삶이 그 과정의 한 줄기가 될 것입니다.

그 길은 좁은 길이지만 주님이 가신 길이고 교회가 가야할 길이며 민족 구원의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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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께 순종하소서!
  • 2019-08-09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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