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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은혜와 감사

  • 성경말씀 : 누가복음 17:11-19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8-11-18

성경 : 누가복음17:11-19

제목 : 은혜와 감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러 서서 소리를 높여 외치기를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였습니다.

이 짧은 구절 안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많은 의미들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이 나사렛이시고 갈릴리가 주로 활동하신 곳입니다. 우리나라로 하면 평안남북도 정도의 위치입니다. 황해도와 강원도 정도에 사마리아 지역이 있고 예루살렘은 충청북도 정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갈 때에 사마리아를 곧바로 통과하지 않고 우회하는 먼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는 이방인의 땅이었고 부정한 땅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복음의 수가성 여인의 이야기에서처럼 사마리아를 둘러 가시기 않고 오히려 그 안으로 들어가셔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한 마을은 사마리아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신 분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도 세상의 논리에 따라 가지 않는 그 길을 기꺼이 가려하는 것입니다.

나병환자 열 명이 있었습니다. 나병이 발병하면 가정과 마을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특정한 장소에 모여서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멀리서 지나가고 계셨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알아보았다는 것은 우선은 외형적으로 예수님이시다 하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며, 또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다 하는 것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질병을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안다고 하는 것이 온전한 앎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이 자신들의 병을 치유하실 수 있을 가능성을 소망으로 아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된 데에도 아주 귀한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 오해들이 있지만 그 당시에 나병은 공기로도 전염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병환자들은 바람이 불어오는 반대편에 서야 했으며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자신이 나병환자임을 큰 소리로 외쳐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나병은 단순히 육체의 질병이 아니라 하늘이 내린 천형으로 여겼기에 종교적으로 부정한 존재였습니다. 아무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는 것은 누군가가 전염의 공포와 부정케 됨이라는 금단의 벽을 넘어서 그들에게 다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이가 있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도 그러한 벽을 넘고 강을 건너서 찾아가야 할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멀리서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큰 소리로 외쳐 부르며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 하였습니다. 이들은 멀리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이렇게 부르고 있는데 우리들은 가까이 계시는 주님을 부르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언제든지 무엇에든지 주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10:13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아주 쉬운 일인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는 마치 불뱀에 물린 자들이 장대 위에 달아 놓은 놋뱀을 보기만 하면 살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죽어간 것과 같습니다. 언제나 절망이나 원망이나 다른 이름을 부를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하겠습니다.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들에게 무슨 공로가 있어서도 아니고 그들이 무슨 권리를 가지고 있음도 아니고 오직 그들의 말처럼 그들을 불쌍히 여기심이었습니다.

나병은 그 병이 나았음을 제사장들이 판별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이전의 공동체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심은 그 말씀만으로 이미 나병이 치유되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그와 같은 권능이 있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고 제사장에게로 가고 있었을까요?

그런 것 같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믿었다면 모두가 예수님께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거울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난 것을 서로의 눈을 통해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현대 의학적으로 나병에서 치유가 되었다는 것은 그 나병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병의 상처들은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그들을 치유하심은 그 나병균뿐 아니라 나병으로 인했던 일그러진 상처들까지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나병에서 치유되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삶의 질병의 원인균들도 사라지고 그 상처들도 회복되는 은총이 임하시길 원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저들을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그 자리에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감사하는 자로 돌아오기를 지금도 그렇게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꼭 더 주시고 싶은 것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아홉은 왜 어디로 갔을까요?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그 기쁨을 함께 할 자들에게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나은 것이 주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여기지 못하고 다른 연고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우선은 그들은 유대인들이었을 것이고, 이전에 먹었던 약이 이제야 효과를 나타낸 모양이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이제 날 때가 되어서 나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자신은 원래 나병환자가 아니었었는데 착각이 있었던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 감사드리러 나오질 못하고 다른 길로 간 것입니다.

말도 안 되고 못되기까지 하다 생각이 들면서 이들의 모습이나 우리들의 모습이나 때로는 다르지 않다 하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같은 말입니다만 한 사람은 왜 돌아왔을까요?

그는 우선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찾아갈 제사장도 없었습니다.

옳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을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아무 자격 아무 공로가 없는데 자신에게 말로 할 수 없는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이렇게 나은 것이 분명 저 멀리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연고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 졌기에 예수님께 감사드리러 나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은혜와 감사의 비율이 91입니다. 우연한 숫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보아도 은혜 받은 것 중에 제대로 감사하는 것이 하나 정도인 것 같습니다. 겨우 십일조 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구약에서 나병을 자주 언급하심은 죄로 인한 인간의 모습이 바로 나병환자와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병균이 한센이란 의사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고 치유할 수도 없었던 것처럼 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나병으로 인한 인간의 모습이 매우 훼손되고 일그러진 것처럼 죄로 인한 우리 속사람의 모습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감사는 마치 나병에서 치유를 받은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죄에서의 구원뿐 아니라 한 해의 삶 동안에도 많은 은혜들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러하실 것이고, 가정적으로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원치 않는 일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선하신데 왜 이 세상에 악과 슬픔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오래된 질문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명백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계셨을 것입니다.

 

교회적으로는 봄에 19분의 항존직 직분자들을 세울 수 있게 하셨고, 사택 재건축을 시작하여 이미 완공하게 하셨고, 19741117일에 최성오원로목사님과 성도님들을 통하여 세워진 본당을 이제 때가 되어 이철수건축위원장 장로님과 건축위원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이 합력하여 새로운 성전 건축을 시작할 수 있게 하셨고 여기에 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올해에는 새롭게 19분의 새가족도 보내 주셨습니다.

지난주에 정책당회를 하였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감사한 일들이 있는 한 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시편50:14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신 말씀의 성취로 보입니다.

은혜는 선물과 같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감사는 은혜를 기반으로 하는 나의 의지입니다.

행위를 옳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100:4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간다 하셨고 찬송함으로 그의 궁전에 들어간다 하셨습니다.

앞으로의 남은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 드리며,

또한 그 은혜가 감사로 이어지는 축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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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혜와 감사
  • 2018-11-20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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