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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그러므로 형제들아

  • 성경말씀 : 히브리서10:19-25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8-07-15

성경 : 히브리서10:19-25

제목 : 그러므로 형제들아

1세기경 폼페이는 지금의 이탈리아에 있던 도시로, 인구도 당시로서는 상당한 수준인 3만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도시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도시 전체를 일순간에 모두 화산재와 용암으로 덮여지면서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가 1755년에 독일의 고고학자 요한 빙켈만 발견한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지질조사국 USGA에 따르면 지난 53일 처음 분화가 시작된 후 하와이 킬라우에아 화산에서 유출된 용암은 약 25의 범위를 덮고 주택 657채를 파괴 하였습니다.

과테말라에서도 63일 화산이 폭발하여 인근 도시를 화산재가 덮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비닐과 플라스틱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전 세계를 덮어가고 있고 다른 피조물들 예를 들어 새와 물고기 등의 속으로 들어가서 창조질서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당장 우리는 비닐과 플라스틱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매일 새벽기도 저의 첫 번째 기도제목인 로힝야족 사건 쿠르드족 문제 시리아 난민 사태 예멘과 수단 아프카니스탄 그리고 팔레스타인 상황 등 세계 곳곳에서 극심한 신음 소리들이 그치질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이제 더 이상 보도도 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속에 인간의 악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불과 몇 십 년 전에 그러한 신음 소리를 내며 살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에 들어갔는데 양국과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우리나라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우려되는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경제적 갈등은 결국에 가서는 무력으로 해결해 왔다는 점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하나님 없는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사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 너무 먼 이야기들 같지만 하나님 안에서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나온 한 잡지의 표지 제목은 우리가 살 곳은 어디인가요? 였는데 보면서 여러 생각들을 하였습니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이에 대해 세상은 더 이상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절망적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곳을 19절 말씀은 성소라 하였습니다.

성소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을 하나님의 나라라 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438장에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그리고 살아가야 할 곳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이 세상의 역사속으로 오고 있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의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그리하여 소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는 길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들어 놓으셨다 하는 것이

20절 말씀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하셨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에서 종말을 맞이한 지구가 새로운 행성으로 그 때까지는 알지 못했던 가는 길을 찾으려 애쓰는 장면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몸이 찢기셨을 때 성소의 휘장이 열린 것과 같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 길을 만들어 놓으셨을 뿐 아니라 그 길 자체이시며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그 길을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자는 22절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가야 하는데 이는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아야 한다 하셨습니다. 즉 성령 세례와 물 세례를 통한 거듭남을 일컫는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어진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1:8에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 하셨습니다.

23절 말씀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으라 하셨습니다.

그러하니 우리들은 구약과 신약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여정에 있는 우리들은 24-25절 말씀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셨습니다.

우선 서로 돌아보라 하셨습니다.

나 자신 내 입장만 바라보지 말고 상대방, 상대방의 입장을 보아 주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하셨습니다.

사랑과 선행의 핵심은 희생일 것입니다. 희생하는 자들을 격려 즉 칭찬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과 선행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격려 즉 칭찬은 이 유한함을 어느 정도까지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는 능력이 됩니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족을 단다면 어떤 이유로든 악을 도모하거나 부추겨서는 안 됩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셨습니다.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임의 가장 기본은 예배입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함께 봉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함께 교제하는 일입니다.

 

이번 전교인 수련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지만 이루어보려고 하는 시도이고 훈련의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건축 중인 성전은 하나님 나라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이곳을 통하여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서두에 장황하게 말씀드린 대로 이 세상이 이제 자연 환경적으로도 정치, 경제적으로도 사상, 철학적으로도 희망, 소망이 없어져 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이 모든 현상을 종말의 때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은 이미 20세기를 넘어서면서부터 절망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 하셨던 것 같이 종말이 절망이 아니라 그 종말 너머로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증거하며 그 길과 문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1964년에 이를 희망의 신학(Theologie der Hoffnung)이라 하여 서술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 광동교회도 노아의 방주와 같이 생명을 구원하는 교회, 에덴동산과 같이 안식을 누리는 교회, 소금과 빛 같이 봉사하는 교회가 되어 충성되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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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므로 형제들아
  • 2018-07-20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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