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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애니아야 일어나라

  • 성경말씀 : 사도행전 9:32-35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8-06-03

성경 : 사도행전 9:32-35

제목 : 애니아야 일어나라

 

예수님에 대한 십자가 처형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믿는 자들에게 대한 박해가 이어졌고

스데반이 순교하는 일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믿는 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다니며 룻다에 이르게 된 것은 주님 부활하신 후 약 4년 정도가 지났을 때입니다.

사울의 다메섹 회심도 이 때 쯤에 일어난 일입니다.

베드로의 일은 사방으로 두루 다니며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을 것입니다.

룻다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곳이고 지중해의 항구인 욥바로부터는 17km 정도의 거리에 있습니다.

이곳에도 믿는 자들이 모여서 살았을 것이고, 주변에 복음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룻다에 애니아라 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다가가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하였습니다.

이는 마가복음 2:11-12에서 예수님께서 네 명의 친구가 있었던 중풍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거거늘 하신 말씀과 같으며,

요한복음 5장의 예루살렘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 못가에 있었던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가 믿음생활 하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신 말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신 말씀은 기억하고 그리해야 할 것이지만,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믿음으로 따라가려고 하는 일은 마땅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하실까? 라는 질문을 피하지 말아야 하며 그 대답에 신실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들 중에 어떤 부분은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구별됨이 있으신 일들이었고,

어떤 일들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신 일들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 명령하자 그가 곧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이 계시적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베드로가 이 말을 하기 전에 누군가가 애니아에게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애니아가 베드로를 통하여 처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었다기 보다는 예루살렘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룻다까지 흩어졌던 그 누군가가 애니아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이고 이제 때가 되어 이미 애니아 안에 있었던 복음의 불꽃과 베드로를 통해서 전해지는 복음의 불꽃이 만나게 됨으로 폭발적인 역사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울 때 첫 바가지의 물로 항아리가 넘치지 않습니다.

여러 바가지의 물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이 되면 넘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복음의 역사도 그렇고 기도의 역사도 그렇고 전도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며 당장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정하신 때에 그 역사가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애니아가 그 말씀에 따라 곧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능력가운데 된 일이지만 거기에 애니아의 역할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애니아는 팔 일 팔 개월이 아니라 팔 년 동안이나 중풍병으로 자리에 누워있었습니다.

자신을 향하여 일어나라는 말이 가당치 않게 들렸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어나라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 올 때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되는 여러 이유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이나 상식이 그것을 가로 막을 때가 있습니다.

경험이나 상식은 필요한 일이지만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에 때로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믿음의 역사의 많은 부분은 우리의 경험이나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합니다.

합당하지 않은 오래된 습관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일어서지 못하게 합니다.

이번에 임직 받은 분 중에 임직을 경계선으로 하여 새벽기도와 금요기도와 삼일예배에 나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래된 습관을 이겨낼 수 있는 결단을 한 분들입니다.

우리의 옛사람 옛습관은 주님의 새로운 질서를 감당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

예레미야22:21에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셨습니다.

뉴욕타임스의 기자인 찰스 두히그가 쓴 습관의 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습관이 우리에게 주는 부정적 영향력과 긍정적 영향력에 대해서 설득력 있게 쓴 책입니다.

꼭 읽어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고린도후서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합당하지 않은 오래된 습관들을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영적으로 욱여쌈을 당하면 꼼짝을 못하게 됩니다.

사단 마귀는 때로는 우리를 탈진시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이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엄청난 두려움으로 공항장애를 일으켜 숨조차 제대로 못 쉬게 만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믿음을 화석같이 만들어 아무런 반응이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후서4:8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하였는데 그 이유를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직분이 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애니아처럼 주의 말씀이 일어나라 하셨을 때에 일어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오른 손을 들어 가슴에 얹으시고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픈 기억과 상처, 게으름, 열등감, 불신앙, 합당하지 못한 습관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애니아를 일어서게 한 베드로에게 더 큰 은혜가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 이후에 욥바로부터 전갈을 받게 됩니다.

그곳에 다비다라 하는 여인이 죽었는데 빨리 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곳에서 다비다 즉 번역하면 도르가를 죽음에서 살리는 이적을 행하게 됩니다.

남에게 길을 만들어 준자는 자신의 길이 넓어지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남을 일으켜 준자는 자신도 일어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강도 만난 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친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일으켜 준 사마리아인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그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베푼 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돌아와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니엘12:3에 많은 사람들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하셨습니다.

 

이 일을 통하여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애니아와 같은 자리에 있다가 일어난다면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통하여도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애니아야 일어서라 선포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이 임하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일어서라 말씀하실 때 옛사람 옛습관 옛자리에서 일어나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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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니아야 일어나라
  • 2018-06-08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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