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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그리스도인

  • 성경말씀 : 사도행전11:19-26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8-06-10

성경 : 사도행전 11:19-26

제목 : 그리스도인

 

교회 앞 대로변에 정관장 가게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저도 가끔 들리던 곳이었는데 오월 초에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서운하기도 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잘 아는 분이 들어왔습니다.

그 분도 왜 갑자기 가게를 그만 두느냐? 물었습니다. 주인은 사정이 그렇게 됐다하였습니다.

들어온 분이 선물을 사러 왔는데 물건이 있느냐 물으니 이미 다 정리해서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쓸려고 마침 7만원짜리 하나를 남겨둔 것이 있는데 필요하면 드리겠다 하였습니다. 사려고 하는 분이 신용카드를 건네자 이미 결제 장치를 해지해서 카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지갑에서 6만원을 꺼내더니 6만원에 달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이 이게 원가가 7만원이고 그동안 고객이셨으니 원가에 드릴려고 한 것인데 6만원에는 곤란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분이 돈을 지갑에 다시 넣더니 다른데 가서 사면되지하고는 뭐라 인사도 하지 않고 나갔습니다. 두 사람 모두를 어느 정도 알고 지내던 저로서는 그 장면이 너무도 민망했습니다. 가게를 폐업할 때는 다 그만한 사정이 있는 법이고, 처음 거래도 아니고 상당한 기간 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저렇게 매정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제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물건을 사러 왔던 그 분은 우리 교회 교인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새벽기도를 나오는 분입니다. 남의 교회 새벽기도를 나오는 분이니 본교회 예배생활은 얼마나 잘하고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상황에서 처음 온 사람이라도 이 어려운 때에 폐업을 하게 되어 얼마나 힘드시냐, 다른 계획은 있느냐 서운하지만 앞으로 잘 되시기를 바란다그런 덕담이 상례일 터인데 원가 7만원짜리를 폐업하는 마당이니 6만원에 달라 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른데 가서 사면되지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그 모습이 그러한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참담하게 보였습니다.

물론 그 분이 다른 때는 잘하는 분인데 그날따라 너무 기분 나쁜 일이 있어 그리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한일서3: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표면적으로 적용하면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 난 자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에서 온전히 벗어나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죄를 짓지 아니한다 하는 말은 같은 죄를 기꺼이 반복해서 짓는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즉 거듭난 자도 죄를 짓기는 하지만 같은 죄를 기꺼이 반복해서 짓지는 안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강림하셨고 초대교회의 박해가 있었고 신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흩어진 자들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들이 수리아 안디옥에 이르러 복음을 이방인에게도 전하였습니다.

이때가 적어도 예수님 부활 승천하신지 10년은 넘었을 때입니다.

그 기간동안 복음은 유대인에게서 유대인에게로만 전파 되고 있었습니다(19).

너무도 놀랍고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안디옥에서 복음이 헬라인 즉 이방인에게 전파되기 시작하자 21절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이 예루살렘교회에 전파되자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이 모습들 즉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모습을 하나님의 은혜로 보았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실 자체를 보는 것 같지만 착각일 뿐이고 그 사실이 우리 눈에 비친 모습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눈이 어떻게 이미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을 보아도 어떤 사람은 좋게 보고 어떤 사람은 나쁘게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바나바는 이 사역이 자신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길리기아 다소로 가서 사울을 청하여 함께 안디옥의 큰 무리를 일 년 정도 가르쳤습니다.

그 중에 제자들이라 여김을 받은 이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안디옥의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안디옥 사람들이 그들을 굳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은 그럴만한 이유 그럴만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림을 받은 안디옥 교회는 어떤 교회였을까요?

사도행전에서 그 내용들을 찾아보면

11:27-30에 예루살렘 교회에 큰 흉년이 닥쳤을 때 그들을 위하여 각각 그 힘대로 부조를 보낸 교회였습니다. 이 흉년은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천하에 든 흉년이라 하였으니 안디옥도 흉년이 들기는 매 한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세워진지 1년이 좀 넘은 즉 믿기 시작한지 1년이 좀 넘은 교인들이 예루살렘을 교회를 위하여 부조를 보낸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이렇게 한 이들이 주변의 어려운 자들을 위해서는 하지 않았겠습니까?

13:1에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인종과 신분에 차별이 없었던 교회라는 뜻입니다.

진실로 교회는 빈부귀천이나 성별이나 지역이나 인종이나 그 어떤 것으로 인해서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안디옥 교회는 서로를 차별하지 않는 교회였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사에서도 이와 같은 문화충격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예수쟁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13:2-3에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셨고 이에 금식하여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재산이란 것이 있다면 그 중에 가장 값나가는 것이 바나바와 사울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값나가는 그 둘 모두를 주님의 말씀에 따라 내어 놓은 교회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주님 보내시려면 한 분만 보내세요 두 분을 다 보내시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이리 할 것 같은데 그분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그리고 모두를 주님을 위해서 내어 놓을 수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러하니 세상을 위해서도 그리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로 인해 세상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일전에 어떤 복잡한 음식점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옆 자리에 일단의 분들이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호칭들이 권사님 집사님이었습니다.

어느 분이 식사 대표기도까지 길게 하시고는 밥을 먹었습니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종업원들에게 이거 더 갖다 달라 저거 더 갖다 달라 요구사항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럴 수 있고 손님으로서의 권리였습니다.

그런데 정도가 심한 말들이 들려졌습니다. “왜 빨리 가져오지 않느냐, 시킨지 얼마나 오래 됐는지 아느냐, 말도 못 알아 듣느냐, 이렇게 해가지고 장사하느냐그 바쁜 식당에서 쩔쩔매고 있는 종업원들에게 다른 표현으로 해도 될 말을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어찌보면 그들보다 못하게 야박하게 해 대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혹시나 저 종업원들 가운데 이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분이 있다면 권사님 집사님 하고 불리우는 저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보게 될 것인지 심히 우려가 되고 부끄러웠습니다.

차라리 그럴양이면 들어갈 때부터 우리 교회에서 쓰는 호칭 부르지 말고 이사장 박사장 한다던지 최박사 조박사 한다던지 이여사 김여사 한다던지 하고 기도는 속으로 각자 하자 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합니다.

안디옥에서 안디옥교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 부른 것은 적어도 자신들과는 긍정적으로 구별된 무엇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집 현관에 서로 다른 종교의 표시가 붙어 있는 집이 있었습니다.

중국집 종업원이 배달을 하는데 한 집은 그릇을 가지러 가보면 그릇을 정리를 잘해서 내놓고 때로는 그릇을 씻어서까지 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해 한 집은 짜장면 그릇을 수거하는 비닐속에다 그 집 음식 찌꺼기까지 넣어서 내논다는 것입니다. 제가 굳이 종교를 말씀드리지 않는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고 있습니다.

믿음 생활에서 저는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들을 우리가 강요하듯이 달라고 하는 것은 잘못인 것 같습니다. 은혜는 주시는 분이 주시는 분의 뜻대로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달라고 강요할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할 믿음 생활이란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첫째, 은혜를 감사로 여기며 사는 삶입니다.

둘째, 그 은혜를 나누며 사는 삶입니다.

셋째, 그 은혜를 세상에 전하며 사는 삶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것입니다.

그러면서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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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인
  • 2018-06-14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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