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주일오전 1부 예배

 

네게 무슨 상관이냐?

  • 성경말씀 : 요한복음21:18-23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7-11-12

성경 : 요한복음21:18-23

제목 :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신 주님께서는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는 대답을 베드로에게 세 번 들으신 후에 내 양을 먹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후에는 당연히 칭찬이나 권면이나 약속의 말씀이 올 것 같은데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하셨습니다.

장차 베드로가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풀어서 말씀드리면 이제까지 베드로는 자기의 신발 끈을 묶고 허리 띠를 띠고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사역을 감당하였지만,

이제 때가 되면 베드로가 핍박하는 자들에게 묶일 것이며,

끝내 그가 십자가에 묶일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에 시신을 염하고 입관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그 모습을 보면서 왜 그렇게 칭칭 싸고 띠 띠고 하는지 부당하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염하는 분들에게 화가 나기도 하였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시신을 아주 아름답게 화장까지 해서 평상시에 입던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조문을 받던데 우리 풍습은 시신이 한 부분도 나오지 않도록 싸고 또 싸고 묶고 또 묶는 것이 너무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상여로 산을 오르기도 하고 먼 곳을 이동해야 하기도 해서 그리하는 것 같고

사자의 죽음을 유족들에게 확인시키며 정을 떼게 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묶이기 전에 부지런히 주님의 사명을 위하여 다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라 하였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승리만이 형통만이 자유만이 넘침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아닙니다.

패배하고 실패하고 묶이고 모자라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 없이 자유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며, 믿음으로 묶이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가이샤라 빌립보에 있었을 로마황제의 동상이 의미하는 그런 영광의 주님이라면 당연히 따르고 싶어 할 것인데,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기어이 따를 것인데,

나를 따르는 이 길 끝에서 네가 네 팔을 벌려야 할 것이고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감을 당할 것이다 하시며 그렇지만 나를 따르라는 이 말씀은 참으로 무겁게만 들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내가 이런 일도 할 수 있고 저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단 내가 잘된다는 전제 조건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있으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망하더라도 이런 일도 감당할 수 있고 저런 일도 감당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불가능하지 않고 길이 없는 것이 아닌 것은 주님께서 알고 계시니 그 믿음 가운데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 감추어진 비밀의 길을 베드로가 이제 와서는 모르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이전에는 이 길을 몰라 대제사장의 하속들에게 잡혀 가시는 예수님을 적당한 거리 즉 예수님을 멀리서 따라가는 그래서 여차하면 잡히지 않고 도망할 수 있는 베드로의 안전거리라고 하는 그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였지만 이제는 주님께서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와 같이 십자가를 지시고 끝까지 골고다까지 가셨듯이 자신도 그 길을 가겠노라고 가야만 한다고 하는 베드로였지만,

마지막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주님께서 무지막지하게 나를 따르라 하신 말씀을 듣고 막 순종하려는 차에 돌이켜보니 요한이 보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 표현하였고, 최후의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비스듬하게 누워서 식사를 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옆에 있던 요한이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있는 것 같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천하의 베드로도 그 지점에서 그만 걸리고 말았습니다.

베드로가 그 때 다른 사람을 보았다면 결코 이런 시험에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아킬레스건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요한에게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던 비교의식 열등감이 그만 드러나며 시험이 된 것입니다.

 

1907년 전북 김제의 한 교회에서 장로선거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조덕삼(1867-1919 당시 40)이란 분이 될 줄로 알았습니다. 조덕삼은 존경받는 유지요 현재 교회로 쓰고 있는 건물이 그의 사랑방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이자익(1882-1961 당시 25)이라는 청년이 되었습니다. 이자익은 조덕삼의 하인 마부였습니다.

그 결과 앞에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조덕삼이 일어나서 우리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이자익을 장로로 모시고 신앙생활을 잘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하였습니다.

조덕삼 이 분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또 그 생각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절로 전율이 일곤합니다.

주중에는 이자익이 조덕삼을 주인으로 모시고 충성되이 살았고 주일에는 조덕삼이 이자익을 장로로 받들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일 년 후(3?)에 조덕삼도 장로가 되셨고, 그가 제안하여 이자익을 평양신학교에 유학을 하게 하였고 졸업하니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 청빙을 하였습니다.

조덕삼 장로님의 가정과 자녀들도 많은 복을 받았고, 이자익목사님은 총회장을 세 번이나 지내셨고 우리 교단 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귀감이 되는 분이 되었습니다.

조덕삼장로님 이자익목사님 주기철 손양원목사님 등의 분들의 신앙의 삶은 사도행전에 기록되기에 충분한 모습들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역사를 간직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하였습니다.

복잡한 말입니다.

주님이 나를 따르라 하시니 가기는 가겠지만 저만 그 길을 가야한단 말입니까? 하고 물은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즉 곱게 살아 있게의 뜻입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이 말씀 아주 큰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름에 있어

우선은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이 때를 위하여 네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하신 말씀을 남기어 놓으셨고 그 말씀을 기억함으로 인해 회개할 수 있었으며 그래서 가룟 유다의 길을 가지 않고 베드로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주님을 사랑해야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을 가지고는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노라는 세 번의 고백을 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은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는 말씀을 받아들여야 따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이 이렇게 보이기도 하고 저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나만 잘 안 되고 다른 이들은 다 잘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박국이 본 바대로 세상에 악이 득세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내 십자가는 무거운데 저의 십자가는 가벼운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나는 열심히 충성되이 했는데도 안 되는데 저는 어찌 저리 된단 말입니까? 하고 항변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저의 동기중에 우간다 선교사로 갔다가 강도에게 총을 맞아서 다리를 절단하고 귀국한 분이 있습니다. 총회 세계선교부에서 일하고는 계시지만 그 분이 다른 동기들을 만났을 때 늘은 아니지만 어떤 때 순간적으로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그 때를 위하여 주님께서 이 계시적 사건을 통하여 남겨 놓으신 말씀입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이 말씀 안에는 네게는 네게 줄 분깃을 내가 예비해 두었다고 하시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 기억하시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의 남은 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설교자
  • 1
  •  네게 무슨 상관이냐?
  • 2017-11-12
  • 방영철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