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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초청과 순종과 축복

  • 성경말씀 : 요한복음2:1-11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7-02-12

성경 : 요한복음2:1-11

제목 : 초청 순종 축복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전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누시면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셨고, 이어서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소위 최후의 만찬이라 일컬어지는 이 자리도 한편의 잔치인데 아주 슬픈 잔치였습니다. 그렇지만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것으로 마시는 날 즉 새로운 잔치 소망과 기쁨의 잔치가 있을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의 첫 말씀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첫째 날 하신 일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일이었고, 이튿날 하신 일은 안드레와 베드로 빌립과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신 일이었으며 사흘 째 하신 일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을 방문하신 일이었습니다.

이로보건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가까운 모형으로 잔치 집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로마서 14:17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셨음을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의도하시는 잔치집도 단순히 먹고 마시는 집이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이 삶으로 나타난 집일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잔치집으로의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많은 믿는 자들이 기도하고 있지만 현재의 모습은 그리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단 마귀가 의도하는 바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단 마귀가 이루려 하는 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마지막 종말의 날까지 불변합니다. 그것은 거짓과 이간질과 두려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서로를 향해서 거짓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모두가 이간질을 당해서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분노는 두려움의 다른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노와 두려움이 점점 더 차오르고 있습니다.

만일 이대로 계속 간다면 우리나라가 잔치집이 아니라 초상집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고민 속에 오늘 본문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가나의 혼인집의 문제는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서 우리 삶의 문제에 대한 주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잔치집의 문제가 해결된 요인들을 찾아보면,

 

 

첫째는 이 집에서 예수님을 초청하였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의 잔치집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합니다. 꼭 해결되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문제가 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그리 용이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읽어보면 다른 곳에 가서 사오거나 빌려와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였다면 그리 했을 것입니다.

이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모든 일의 구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초청한 것이 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문제에 예수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형식상 명목상의 초청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예수님께 우리 삶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내어 놓아야 합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서는 아마도 인척 관계로 인하여 예수님을 초청하기는 하였지만 자신들에게 일어난 문제를 예수님께 내어 놓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사람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던 마리아는 그 문제를 예수님께 내어 놓았습니다.

우리들도 우리 삶의 문제에 예수님을 초청해야 할뿐더러 구체적으로 우리 삶의 문제를 예수님께 내어 놓아야 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문제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이 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일이 문제가 되었지만 그로 인해 이들은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고 그 중에 믿는 자들이 생겨나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문제들도 우리가 예수님을 초청하고 예수님께 내어 놓으면 그리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우리의 대화와 토론 논쟁 속에 예수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물을 떠다가 결례의 항아리에 채우라 하셨습니다.

결례의 항아리란 유대인들이 집안에 들어가기 전에 물로 손과 발을 씻는 것이 규례였는데 그에 필요한 물을 담아 놓은 항아리를 말합니다. 6절에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두 세 통이란 한 40-60리터 정도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하인이었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난 채웠을거다 하시는 분 손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난 안했을 거다 하시는 분도 손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안했을 거다 하시는 분들은 상관이 없고, 채웠을거다 하시는 분들 중에 얼마나 채웠을 것 같습니까? 한 항아리, 두 항아리, 세 항아리 아니면 모두 다?

오늘 7절의 말씀에는 아귀까지 채우니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리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포도주로 변한 것이 바로 이 물입니다.

순종은 무조건적으로 하는 것이고,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조건을 달기 시작하고 하다가 마는 것은 순종이 되지 않습니다. 부분적인 순종이 아니라 온전한 순종을 하시기 바랍니다.

순종은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초청했다고 기도했다고 우리의 할 바를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 일들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아리에다 포도주를 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온전하게 순종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이 하신 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는데 언제 물이 포도주가 되었을 까요?

물을 붓자마자 였을까요? 한 항아리의 아구까지 물이 찾을 때일 까요? 여섯 번째 항아리까지가 채워졌을 때였을 까요? 그런다고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은 하인들이 그 물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는 그 어느 때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이 일은 연회장도 알지 못했고 그것을 경험한 물 떠온 하인들만 안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여러분 각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들에 충실하시고 행동 하시되 그 과정에 있어 주님 안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상대방을 배려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 결과는 예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질서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순종을 사용하셔서 기적을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부족함이 변하여 풍족함이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전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 있었던 은혜가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도 함께 하시길 원합니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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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청과 순종과 축복
  • 2017-02-24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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