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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예수님과 통하다

  • 성경말씀 : 마가복음 2:1-12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02-06

 

2022년 2월 6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마가복음2:1-12

제목 : 예수님과 통하다

 

우리 몸의 혈관의 총 길이는 약 12만km입니다. 지구의 둘레가 40,075km이니 지구를 세 바퀴 돌 수 있는 길이입니다. 심장에서 출발한 혈액이 이 혈관들을 통하여 우리의 몸을 한 바퀴 돌아 심장으로 돌아옵니다. 이 시간이 짧게는 20초에서 2분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혈관 중 어느 곳이 막히거나 하면 그곳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끝내는 파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혈관이 밀접한 곳이 뇌인데 뇌혈관 중의 아주 가느다란 곳이 막혀서 터짐으로 출혈이 생겨도 몸에 큰 지장이 오기도 합니다.

아주 작은 곳인데도 통하지 않으면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삶이 모든 사람과 모든 문제에 막혀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문제는 어느 사람과 어느 문제에 막혀있는 일입니다. 그 한 문제가 결정적인 결과를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하셨습니다.

 

막혔던 길이 열리는 것을 모세의 기적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응급차, 소방차량, 경찰차 등은 현장에 1초라도 빨리 도착해야 하는데 상당한 경우 다른 차량들로 인해 지연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때 주변의 차량들이 길을 열어주는 것을 모세의 기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2019년 6월 26일 오후 3시 반쯤, 광주와 화순을 잇는 신너릿재 터널 안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자, 시민들이 '모세의 기적'을 만들어 낸 일이 보도되었습니다.

구급대원의 말입니다.  "현장에 갔을 때 차가 많이 막혀있어 좀 오래 걸릴까 싶었는데 저희가 가는 방향마다 차들이 많이 비켜 줘가지고 금방 도착할 수 있었고요"

당시 터널 안에선 승용차가 앞서가던 1톤 화물차를 들이받고 그 충격으로 화물차가 또 다른 승용차와 부딪친 3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던 상황이었습니다.

터널 밖에서부터 사고 지점까지 1km 구간에 꽉 막혀있던 차들이 길을 열어 주며 구급차는 단 1분여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을 둘러싼 무리들이 길을 막고 있어서 중풍병자가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일한 사건의 본문인 누가복음5:17에는 이 사람들이 보통이 갈릴리 동네 사람들이 아니라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 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과 통하려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같은 동네 사람들이었다면 아마도 중풍병자를 들고 온 네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 주었을 것입니다. 네 사람들이 부탁도 했을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었다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길을 비켜주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저 갈릴리와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도저히 뚫을 수 없다고 판단한 중풍병자의 네 사람들은 다른 곳을 뚫고 예수님께로 나아가려 하였는데 그곳은 놀랍게도 지붕이었습니다.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가버나움 성지 순례를 갔었을 때 오래된 회당 건물을 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상상해 봐도 저 지붕을 뚫고 환자를 내린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아무튼 그들의 생각은 예수님을 둘러선 사람들을 뚫는 것은 불가능하고 지붕을 뚫는 것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마음이 얼마나 완고하고 강퍅한지를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을 불통하게 하는 문제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사는 인생입니다.

나를 넘어서 이웃과 자연과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과 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권력과 통하고 지식과 통하고 재물과 통하고 그 모든 영향력과 통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통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통함에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죄입니다.

죄는 바이러스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 듯합니다.

첫째는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것처럼 죄도 실재합니다. 결코 개념이나 행위의 결과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 눈이 죄와 바이러스 그 자체는 보지 못하고 그 현상을 본다는 것입니다.

죄의 현상은 살인 도적질 거짓 증언 등이며 바이러스는 기침, 열, 염증 등입니다.

둘째는 그래서 죄와 바이러스 그 자체에 대해서 외부적으로 어찌하지를 못하고 그 증상을 치유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바이러스 자체를 없애지 못하며 다만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이라든지 열이라든지 다른 세포를 파괴하는 것을 막는다든지 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며 죄 역시 회개한다든지 죄 값을 치른다든지 할 수 있지 죄 자체를 없애지 못합니다.

셋째는 공항에서 바이러스에 양성 반응이 나오면 입국이 안 되는 것처럼 죄가 있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함을 받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죄 사함이 선포되자 중풍병자와 예수님 사이에 통함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하여 치유의 역사에 이르게까지 되었습니다.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이 중풍병자가 예수님과 통하는 데까지 이른 과정을 살펴보면

첫째는 그가 중풍병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경우도 물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중풍병이 그를 예수님께 나아가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는 어려움이 꼭 하나의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고난에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도행전 3장의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이도 그로 인해 성전 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게 되고 구원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위해서 그를 맹인이 되게 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맹인의 그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45장에서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의 큰 구원사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우리의 곤고함이 예수님과 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됨은 틀림이 없습니다.

 

둘째는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인도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중풍병자였기 때문에 누군가가 와서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을 들려주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주님과 통하는 데 있어 먼저 그 역할을 한 이입니다.

그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중풍병자였기 때문에 누군가가 와서 그를 데리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야 했습니다. 그 일을 네 사람이 감당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였을까요? 중풍병자가 돈으로 산 사람들이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돈으로 산 사람 들이었다면 그들은 그를 예수님이 계신 집 앞까지만 옮겼을 터이지 지붕을 뚫고 그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으려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네 사람은 중풍병자를 사랑했던 이들이었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그리스도인을 먼저 만나야 한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먼저 믿은 자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셋째는 중풍병자의 순종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셨을 때에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아갔습니다.

그는 중풍병자였습니다. 그 정도가 심했기 때문에 네 사람이 들것에 옮겨야 했습니다.

그러한 삶이 아마도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던 그에게 오직 주님의 말씀만이 들려왔을 뿐입니다.  

그는 여전히 누워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아가는 일은 아주 어려운 용기와 순종의 결과였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주님과 통하는 일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이미 이루어졌건만 우리는 은혜를 은혜 되게 하지 못하고 과거에 매여 살아가고 있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사망의 법이 폐하여지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이루어졌건만(롬8:2) 아직도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며,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30년 전에도 안 됐고, 20년 전에도 안 되었고, 10년 전에도 안 된 일이니, 안 되는 일이라고, 어쩔 수 없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중풍병자처럼 익숙한 곳에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말세지말 불통의 시대에 먼저 예수님과 통하고 그 은혜로 세상과 통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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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과 통하다
  • 2022-02-08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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