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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주 예수 그리스도

  • 성경말씀 : 마태복음 16:13-20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02-13

 

2022년 2월 13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마태복음16:13-20

제목 : 주 예수 그리스도

 

가이샤라 빌립보에 가셔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하길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대답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려해서 좋은 말로만 대답을 하였을 것입니다. 

사실대로 말했다면 혹세무민 하는 자, 혹은 가족들의 표현처럼 미친 자 등의 말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무어라 하느냐 고 물으신다면 우리는 무엇이라 말씀드려야 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순간적으로 침묵이 흘렀을 것입니다. 다른 제자가 아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알려 주시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이 질문을 왜 이 때에 하셔야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질문을 하셨을 때가 예수님의 공생애 삼년 째라는 것, 즉 십자가를 얼마 앞두고 하신 질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때까지도 제자들의 생각 속에도 예수님을 랍비 혹은 선지자 혹은 메시야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랍비이셨고 선지자이셨으며 메시야이셨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랍비나 선지자나 메시야가 아니셨던 것입니다.

이제는 이를 분명히 해야 할 마지막 때가 되었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이 질문을 계기로 비로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왜 이 질문을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시고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계셨고 이제 마지막 유월절 즉 십자가를 앞두고 남쪽 예루살렘으로 가셔야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끄시고 갑자기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가이샤라 빌립보는 가이샤라 빌립보는 갈릴리에서 북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요단강의 수원이 가까이 있는 곳입니다..

헤르몬산의 서남기슭으로 구약시대의 바알갓(수 11:17)이며, 헤롯 대왕이 당시의 로마 황제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도시였고 그의 아들 빌립이 더 화려하게 만들면서 황제의 의미와 자신의 이름을 합쳐서 가이샤라 빌립보라 명하였습니다. 그 가이샤라 빌립보에는 이교의 신전과 로마 황제의 신상이 있었던 곳입니다. 

 

 

이 질문은 그냥 갈릴리에서 하셔도 아무 문제가 없을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도 예수님의 깊으신 뜻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곳은 이교의 신전이 있었고 로마 황제의 동상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고 이어서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이 물으심은 나는 여기에 있는 이 신전의 잡신들과 같지 아니하다는 말씀입니다.

귀신 숭배는 귀신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어떤 귀신이든 간에 나에게 무엇을 주느냐 줄 수 있느냐 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거기에는 도덕과 윤리가 없고 무조건적입니다.

예를 들어 이렇습니다. 어느 집에 애가 아프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합니다.

굿이라고 하는 것은 귀신을 달래는 행위입니다. 제물을 바치고 굿을 하면 무조건적으로 병이 나아야 합니다. 그런데 귀신을 달래도 듣지 않으면 다시 굿을 하는데 이번에는 더 센 귀신을 불러들이는 굿입니다. 더 센 귀신을 불러들여 현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귀신을 내어 �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귀신 숭배의 속성입니다.

무조건, 비인격, 비윤리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를 그렇게 믿고 그렇게 섬겨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삼상28장에는 블레셋과의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사울이 변장하고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사무엘 귀신을 불러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사무엘 귀신은 사울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말해주는데 그 말을 들은 사울은 의욕을 상실하고 결국 길보아전투에서 그의 세 아들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귀신의 속성은 과거를 알고 현재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의 사실을 가지고 미래를 말하지만 미래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들이 거짓으로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귀신은 결코 인간에게 유익을 주지 않습니다. 결국은 일시적으로 유익을 주다 함께 망하게 하는 것이 귀신의 목적입니다.

주님께서 또 하시는 말씀은 나는 저 황제와도 같은 자가 아니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속에도 예수님을 로마 황제와 같은 힘 있는 자로 여기고 기대하고 있었던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들을 구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고 오시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무력하게 체포당하고 재판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자 기대가 실망으로 원망으로 돌변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 황제와 비할데 없는 힘과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이셨지만 그 힘과 권위를 로마 황제와 같이 섬김을 받는데 쓰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섬기는 데 그 힘과 그 권위를 사용하는 자이셨습니다.

그 말씀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은 받으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로다 하신 말씀입니다. 

      

셋째는 베드로의 대답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이시니이다 하였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지식이나 능력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우선 예수님을 주라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은 주님이시오 나는 그의 소유 즉 종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계약관계와는 다른 것입니다.

계약관계는 일시적이고 부분적이며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주종관계는 영구적이고 전체적이며 절대적입니다. 즉 나의 모든 삶 동안에 나의 모든 것들이 온전히 예수님의 것입니다 하는 고백이 주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라 함은 메시야 즉 구원자라는 뜻인데 이는 이 세상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측면의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예수님께서 곧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이는 모든 것들이 다 한계가 있고 끝내는 썩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셨지만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권세를 주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고백을 하게 하신 것은 이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이 땅에 주님을 대신할 교회를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첫째, 이 반석이라 함은 한 개인 베드로가 아니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는 예수를 구세주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 말씀 앞에서 날로 새로워지기를 원합니다.

 

둘째,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 하셨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로마황제의 직할 도시였고 그곳에는 로마 황제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형식적으로 로마 황제가 로마 제국의 주인이라면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2:22-23에서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셋째,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란 세상 권세요 또한 사망의 권세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힘도 그리고 죽음의 권세도 교회를 무너트리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넷째, 교회에 천국 열쇠가 있다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년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교회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경우에 그러한 것이 아니고 앞서서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신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권한인 것 같지만 엄청난 의무를 말씀하심입니다. 교회는 땅끝까지 가서 맬 것을 매야 할 것이며, 풀 것을 풀어야 할 것입니다.

거짓과 이간질과 두려움 등 악한 영들을 매어야 할 것이고, 이기주의와 끝없는 욕망도 매어야 할 것입니다. 포로된 자를, 눈먼 자를, 눌린 자를 풀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온갖 사슬에 매인 자들을 특히 죄의 사슬에서 풀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고 물으셨듯이

오늘날에도 그 질문은 계속되고 있는 줄로 압니다.

벧전 3:15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하셨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유대인들은 선한 유대인, 혹은 선지자 중의 한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세상 사람들은 세계 사대성인 중의 한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 중에도 지혜와 진리를 가르쳐 주는 좋은 교사로 혹은 우리의 모든 곤고함으로부터 우리를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어떤 이는 단순하게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고백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신 예수님은

나의 유일한 주님이시오, 나의 유일한 구세주이시오, 나의 유일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베드로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말하기는 하였으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응답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그 누구가 이 사실 앞에 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에 의해 삼 년이나 가르침과 훈련을 받은 베드로조차도 한 순간에 넘어지고 만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끝내는 베드로를 그 신앙고백의 자리에 설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그 은혜를 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실 때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유일한 주님이시오, 나의 유일한 구세주이시오, 나의 유일한 하나님 이십니다 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원 드립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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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예수 그리스도
  • 2022-02-16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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