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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 성경말씀 : 사도행전 16:6-10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1-08-01

 

2021년 8월 1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사도행전 16:6-10

제목 :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바울의 2차전도여정은 주후51-53년경입니다.1차 전도여정을 마치고 한 일 년 정도 지난 후인데 수리아 안디옥에서 그간의 선교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안식도 취하고 치료도 했던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2차 전도여정의 출발에서는 큰 다툼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도 데려가자 하였으나 바울은 1차 전도여정 때 중도에서 포기하고 돌아간 자를 또 참여시키는 것이 옳지 않다 하며

바나바와 심히 다투고 피차 갈라섰습니다.

 

그리하여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났습니다.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 갔는데 그곳은 바울이 돌로 맞은 곳이었습니다. 

바울의 핏방울이 떨어진 그곳에 귀한 열매가 열렸는데 바로 디모데였습니다.

아마도 디모데는 바울이 돌에 맞는 것을 보았거나 전해 들었을 것이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자신도 기독교인이 되어 전도자가 되기로 결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이 오기전 디모데는 이미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형제들이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입니다.

이 때부터 디모데는 바울의 전도 여정에 참여하게 되었고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내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자라 하였으며 자신이 직접 가야 할 곳인데 갈 수 없게 되는 상황에서는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바울의 마지막 유언과 같은 서신도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본문 6절에 보면 바울은 루스드라 다음으로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 하였습니다.

그토록 고난을 당했던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얻게 된 바울은 자신감이 높아 졌을 것입니다.

아시아는 오늘날 아시아 대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터키 땅의 에게해와 연결되어 있는 지역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가 있던 곳입니다.     

해안가이고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인구가 많고 유대인들도 많아 당연히 그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갔다 하였습니다.

부르기아와 갈라디아는 지금 터키 땅 내륙의 고원지대입니다. 바울이 1차 전도여정에서 복음을 전하기에 힘썼던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가 있는 지역입니다.

다음으로 무시아 앞에 이르렀습니다. 무시아는 터키의 북쪽 끝으로 마르마라 해와 인접한 곳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동쪽인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으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셨다 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설명하기가 가장 난해한 부분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과,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예수의 영이 왜 그리 하셨는지, 어떻게 그리 하셨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바울의 전도 여정이 순탄한 적은 없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24-27에서 그간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고난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지간한 어려움으로 인해 낙심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친 것과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던 계획을 접은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돌에 맞는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복음의 길을 가는 바울의 불굴의 의지도 귀한 것이지만 아무리 자신이 보기에는 옳은 일이라고 판단해도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여겨졌을 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바울의 모습이 더 귀합니다.

아마도 바울에게는 마가의 일로 인한 바나바의 의견을 옳지 않은 일로 여긴 것과 그 후에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던 일의 기억이 이번 여정 내내 따라다녔을 것이고 그로 인해 바울은 아시아에서도 그리고 무시아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가의 일로 인해 바나바와 심히 다툰 것은 바울의 실패였지만 오히려 그로인한

바울의 내면에 이루어진 영적 성장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작은 일인 것 같고 외적으로 보이지 않는 일이지만 이 후에 바울의 사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후12:9-10에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한 고백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무시아에서 바울은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던 계획을 포기하고 드로아로 가게 됩니다.

무시아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비두니아는 동쪽이었고 드로아는 서쪽이었습니다.

항구 도시 드로아에서 바울은 밤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는 바울에게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였습니다.

이 마게도냐인의 환상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말씀을 받은 많은 이들이 바울과 같이 순종하여 길을 떠난 역사가 선교의 역사입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셀러도 이 말씀을 받고 태평양을 건너서 우리나라에 1885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많은 우리나라의 선교사님들도 이 말씀을 받아서 때로는 바다를 건너고 때로는 인종을 건너며 때로는 위험을 건너서 때로는 금기를 건너서 저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를 거쳐 이튿날 네압볼리에 이르고 거기서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 빌립보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생각에는 아시아로도 못 가게 하시고 비두니아로도 못 가게 하시고 특별히 환상을 통해 마게도냐로 가게 하셨으니  마게도냐에 도착하면 엄청 크고 중요한 일들이 놓여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게도냐의 빌립보에 도착하여 수일이 지났지만 찾아오는 이도 없었고 가야 할 곳도 없었고 안식일이 되었는데 예배드리러 갈 곳도 없었습니다.

회당은 없어 기도처가 있는가 찾다 보니 개천에서 여인들 몇이 빨래하고 있었습니다.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따라 그 먼 거리를 달려온 바울이 한 일은 그 몇 명의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일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루디아란 여인과 그 가정이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정말 별 일이 없었고 귀신 들려서 점치는 여종의 귀신을 쫓아내준 일이 있었을 뿐입니다.   

바울은 이로 인하여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니라 빌립보의 관리들에게 옷이 찢겨진 채로 심히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하니 감옥의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환상 중에 나타난 마게도냐 인은 이들 죄수들이었을까요?

그 때에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이 일의 과정에서 간수와 그 가정이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바울은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서 실상은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아무 불평 없이 기꺼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와 데살로니가 베레아의 여정을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노예 제도를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미상 종의 개념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고백하였습니다.

종은 소유권이 없으며 결정권이 없고 기득권이 없습니다.

마가의 일로 인한 다툼과 그 이후의 회개는 바울로 하여금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게 한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이르는 과정에 비하면 겨자씨와 같이 작은 일들이 그곳에서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일들로 인해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고 빌립보 교회는 유럽에 세워진 첫 번째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유럽에 복음이 전파되는데 초석이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그 옥합에서 깨어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았습니다. 이에 대해 가룟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고 화를 내엇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논리는 삼백 데나리온으로 그 이상의 것을 남기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삼백 데나리온을 희생해서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작은 것을 만들 뿐입니다.

그러나 이는 겨자씨 한 알과 같아서 세상의 비교로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지만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게 된다 하셨습니다. 

 

주님의 일은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기를 힘쓰듯 비두니아로 가기를 애쓰듯 힘써서 애써서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신 주님과 같이 늘 주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며 할 일입니다.

그리고 당장은 낭비인 것 같고 작은 일로 보여도 장차 이 일을 통하여 주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바라보면서 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주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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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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