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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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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요한복음15;1-17

제목 :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몇 해 전에 해바라기 싹 중에 하나가 얼마쯤 크다가 중간에 줄기가 꺽인 것이 있었습니다. 다른 해바라기들도 많이 있었고 해서 뽑아 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좀 안 돼 보여서 나뭇가지로 부목을 대고 끈으로 줄기를 묶어 주었습니다.

그 있던 자리가 모래가 많은 곳으로 거름기도 없는 곳이기도 했지만 그 후로 그 해바라기는 크기를 멈추고 제일먼저 꽃을 피웠고 곧이어 제일먼저 아주 일찍 열매를 맺더니 얼마못가 시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열매를 맺어 자신의 사명은 다한듯한 모습이 상당한 감동으로 여겨졌던 일이었습니다.

이 해바라기뿐만 아니라 자세히 관찰해 보면 대부분 척박한 환경에 처해진 식물들은 자라고 꽃피우고 하는 과정을 최소한으로 하고 열매를 맺는데 모든 힘을 다 쏟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이는 모든 생물에게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나름대로 감당하고 있는 현상으로 보여 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 중에는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기쁨이 되기 때문이라 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열매 맺는 가지와 그렇지 못한 가지가 나옵니다.

열매 맺는 가지란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줄기에서 잘려진 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포도나무에 그리고 신자들을 그 가지에 하나님을 그 농부에 비유하여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고 잘려나가는 것은 전적으로 농부의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농부는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가지를 전정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그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하나님께 있지만 그 이유는 줄기 자체에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을 수 있는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는 것은 즉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있음이라 하셨습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은 이 계명이 제사 정결법 절기법 등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 하였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너희가 내게 붙어 있으려 하면 내 계명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계명이란 사랑이라 하셨습니다.

사랑은 주님께서 우리를 붙드시는 이유요 또한 우리를 주님께 붙어있게 하는 힘입니다.

이 계명을 통하여 즉 사랑을 통하여 만들어 지는 것이 열매라 하셨습니다.

즉 사랑은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농부되시는 하나님께서 가지를 깨끗게 하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순전치 못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만큼의 열매가 맺어지지 못하는 것에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양의 문제도 있고 질의 문제도 있으며 본질의 문제도 있습니다.

양의 문제란 가지는 무성한데 정작 포도는 몇 송이 열려있지 않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 5:10에  열흘갈이 포도원(葡萄園)에 겨우 포도주(葡萄酒) 한 바트가 나겠고

여기서 열흘갈이라는 말은 한쌍의 황소가 하루종일 가는 밭의 크기입니다.

그런곳에서 겨우 포도주 한 바트 즉 22리터 밖에는 생산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질의 문제란 이사야를 통하여 주신 말씀대로 좋은포도 맺기를 바라셨는데 들포도를 맺은 경우일 것입니다.


본질의 문제란 교회가 만들어내는 열매중에 포도가 아닌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포도나무에서는 포도가 열려야 할 것입니다.

포도나무에서 다른 열매가 열린다면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일입니다.

어떤 것은 모양은 포도인데 맛은 포도가 아닌 것이 있기도 합니다.

어떤 것은 포도나무에서는 열릴 수 없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분이 교회를 걱정하며 쓴 글에 교회가 회개의 장소가 되어야 하는데 죄를 정당화하는 장소로 양심의 가책을 더는 장소가 되었다고 한 말이 참으로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고 물질적인 열매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무겁게 열려있는 모습도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저 아프칸에서 들려온 소식은 우리를 죄송하게도 하였고 슬프게도 하였지만 또 한편으론 아름다운 열매도 보게 하셨습니다.

여수에 가면 동광교회가 있습니다. 여수에서는 역사가 있고 큰 교회인데 그 교회에서 삼일밤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이 얘기를 언급하셨습니다.

나중에 방송에서 들으니 두 명의 인질을 석방하면서 대변인듯한 사람이 말하기를 원래 건강이 안좋아서 이번에 우선 석방대상이 되었던 여자 중에 한 명이 자신은 건강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자기 대신에 다른 사람을 데려가 달라고 하였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이름은 너무 어려워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 이름이 어렵고 비슷해 보이는데 그 사람들은 우리 이름이 그러한 모양입니다.

우리는 석방된 두 사람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대신에 남은 그 한 사람의 이름은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오늘 본문 13절의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이 계명은 이미 우리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없는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안에 사랑이 없다면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을 우리가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다시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여기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주님만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감히 주님만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주님처럼 그렇게 차별없이 댓가없이 주님께서 이미 내게 베푸신 사랑을 기억하며의 뜻입니다.

그렇게 사랑의 첫 발자국을 떼시기 바랍니다. 

신학교 동기 목사가 있습니다.

모르는 사이는 아니나 각별히 연락을하고 만나고 하며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주보광고를 보며 교회에 필요한 비품중에 OHP가 필요하다는 광고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자기 교회에 쓰지 않는 것이라하며 손수 가지고 왔습니다. 당시에 양재동 어느 교회의 부목사였기에 그렇게 하기가 여러모로 어려웠을 터인데 그리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분이 주님의 마음으로 두 교회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그 안에 있었고 그가 주님의 말씀안에 있었던 연고입니다.

참 고맙게 여기고 있었는데 지난주에 전화가 왔습니다.

인천에 있는 250명 정도 모이는 교회에 청빙을 받아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우리교회 사랑의 쌀독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 전화를 받으며 감사하기도 하면서 열매라는 것이 저렇게 열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품고 있는 그 사랑을 품고 있는 그 목사님과 그 교회가 이루어 낼 아름다운 열매들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으로 주님께 연결되어 있을 때 어떤 열매가 열릴지 우리가 다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 필요로 하시는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그런 열매를 맺게 하실줄 믿고 소망합니다.




요한복음15:1-17

1.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믿는자의 관계는?

2. 과실을 많이 맺을 수 있는 자는?

3. 이와같은 계명을 주시는 목적은?(11절)

4. 가장 큰 사랑은?

5. 내가 맺기를 원하는 열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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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 200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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