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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호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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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마가복음11:1-10

제목 : 호산나

때가 왔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부터 예비 된 때였습니다.

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시작하여 골고다의 언덕에 이르는 직선의 여정에서 이제 십자가를 져야 할 때가 당도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가까운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가져오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나귀는 이 날을 위하여 주님께서 미리 예비해 놓으신 나귀였습니다.

주전 800년 전에 스가랴라는 선지자는 예루살렘에 임할 왕은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탈 것이라 하였습니다.

스가랴가 예언한 공의로운 자 구원을 베풀자 겸손한 자가 자신임을 알리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곳에 제자들이 가 보니 나귀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나귀를 가져오며 주가 쓰시겠다 하자 나귀의 주인은 순순히 나귀를 내어 주었습니다.

주님의 구원 사역이 이루어지는 동안 주님께서는 미리 우리에게 예비해 놓으신 것들을 사용코자 하실 때가 있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듣게 될 때 그 때를 위하여 예비 된 달리 표현하면 주님께서 예비하여 놓으신 것들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나귀를 타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엿세 전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맞이하는 두 무리가 있었습니다.

한편은 여러 가지 이적과 특히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을 보고는 예수님을 그 날에 임할 것이라 예고된 메시야로 생각하고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 길에 깔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며 예수님을 열열이 환영하던 자들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론 예수님의 권세와 인기를 시기하고 두려워하여 예수님과 심지어는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하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애석하게도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고 영접하고자 하던 자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에게 바랐던 메시야의 역할이란 이스라엘이 가장 번영하며 살았던 다윗 솔로몬 시대와 같은 나라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현실적인 구원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을 탓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원전 586년에 나라가 망한 이래 계속해서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설움과 핍박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기원전 160년 경에 잠시 독립을 이루기는 하였었지만 이내 다시 로마의 속국이 되어 살아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능력 많으신 예수님께서 나타 나셨으니 그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겉옷까지 길에다 깔며 외치기를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며 외쳤던 것입니다.  

문제는 군중들이 바랐던 구원과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구원이 다른 것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은 죄로부터의 구원이요 온 인류의 구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참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들에게

현실적 구원의 당위성과 요구가 절실하다 해도 그것이 예수님의 목적 즉 우리 신앙의 목적이 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실적 구원에 집착한 신앙은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하여 나타난 대로 끝내는 다 예수님을 떠나가고 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보면 예수님을 오해한 저들은 같은 입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으며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똑같이 호산나 즉 우리를 부디 구원하소서 하고 외치지만 그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온 인류를 위한 구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다윗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재현해 주시기 위하여 오신 분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만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땅끝까지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모르는 자들이 한 사람도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먼저 믿은 우리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명인 줄로 믿습니다.


현실적 구원에만 매여 있는 무리들, 게다가 예수님을 해하려고 하는 또 다른 무리들을 주님께서는 민망한 눈으로 바라 보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바라는 구원도 물질로부터의 구원 건강으로부터의 구원 어려운 상황으로부터의 구원 나만의 구원만 바라는 모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주님께서 민망히 보고 계시지는 않을까요?

이적은 믿게 하시기 위한 방편이지 이적이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나귀를 타고 오시는 주님을 바로 알고 바로 영접하고 바로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성경본문 : 마가복음11:1-10 

1. 본문의 시기는?

2. 예수님께서 나귀를 가져오라 하신 이유는?

3. 주가 쓰시겠다 하실 때 내가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은?

4. 호산나의 뜻은?

5.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열열이 환영하는 군중들을 주님께서는 민망히 여기시는데 나에게도 그와 같은 모습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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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산나
  • 200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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