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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종교개혁 - 성경과 교회

  • 성경말씀 : 마태복음5:17-20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10-25

20201025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마태복음5:17-20

제목 : 말씀과 교회

 

시편14:1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을 둘로 나눈다면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자들과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자들로 가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 있는 자라 하셨고, 자연만물을 통하여 역사를 통하여 그리고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증거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시작으로 노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서3:1-2에서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만든 종교가 유대교입니다. 구약의 세계입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이 땅에 유대교 안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과 유대교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5:17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하심입니다.

그러나 유대교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못했고 예수님을 통해 유대교를 완전하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적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판결하여 빌라도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처형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유대교의 같음과 다름을 논증한 책이 히브리서입니다.

유대인들과 유대교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이 완전하며 그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예를 들어 마5:43에서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이는 유대교의 율법의 틀렸다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계시된 그 말씀의 근본 뜻을 일깨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른 자세를 갖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과 유대교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지함과 거기에 더해 위선과 교만과 탐욕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그들을 완전케 하시고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구세주이심을 알지 못했고 믿지 못했고 배척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유대교는 계속 유대교의 길을 지금도 가고 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들이 기독교인들이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믿는 종교입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종교입니다.

유대교와 구분하여 그리스도교라고 불렸습니다.

그리스도교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리스도를 중국인들이 한자로 표기할 때에 음을 따라 其理斯督이라 하였는데 이것을 줄여서 基督이라 하였고 그래서 기독교가 된 것입니다. 우리말 기독에는 아무런 뜻이 없습니다. 아주 이상한 말입니다. 저는 이제라도 기독교를 우리 말로 표현할 때 그리스도교 혹은 예수교라고 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는 1054년에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교회와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로 갈라졌습니다.

동방교회의 대표를 총대주교라고 하였고 서방교회의 대표를 교황이라 불렀습니다.

서방교회에서 1517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개혁자들을 프로테스탄트교, 개신교, 신교라고 불렀으며,

남은 자들을 가톡릭교 구교라 불렀습니다. 가톡릭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천주교라 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은 서방교회(Western Christianity)가 프로테스탄트교와 가톡릭교로 갈라진 사건입니다.

믿음의 과정에서 두 단계가 있습니다. 믿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이고 믿을 것이라 하면 이대로 믿을 것이냐 더 잘 믿을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종교개혁은 이대로 믿을 수는 없다 더 잘 믿어야 한다는 결단들이 모여진 운동이었습니다.

주후 66년 경 로마 황제 네로로부터 시작된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용인하는 밀라노 칙령을 내림으로 중단 되었습니다.

주후 379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화 시켰습니다.

이제 로마 제국 내에서는 기독교만 믿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갔으며 지상뿐 아니라 황제의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핍박받던 종교에서 핍박하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양적으로 팽창하였고 모든 교회당이나 예배 형식들이 화려해졌고 교회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중세 천년의 이 기간 동안 기독교는 발전한 면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부패하고 변질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미 14세기 초에 영국에서 존 위클리프(1320년경 ~ 1384)가 이러한 교회에 대한 개혁을 선포하였습니다.

위클리프의 주장은 그 이후 종교개혁자들의 추구했던 개혁의 근본이었습니다.

위클리프는 교황이나 교회가 영적 한계를 벗어나 세속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악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교회의 부정을 옹호하는 식의 전통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고 역설합니다. 또한 그 어떤 권위보다 성경이 우위에 있으며, 교황이라 할지라도 성경의 권위 아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교황제도는 무너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1215년 가톨릭교회가 라테란 공의회를 통해 확정한 화체설을 부정합니다. 위클리프는 화체설을 미신이나 가현설과 다르지 않으며, 성육신을 부정하는 비성경적 가르침이라고 주장합니다. 위클리프의 주장은 당대로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적지 않은 권력자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심지어 옥스퍼드 대학의 학자들까지 반론을 제기합니다. 결국 옥스퍼드는 1381년 경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기에 이릅니다. 1384년 위클리프는 병으로 숨을 거둡니다.

지금으로부터 503년 전 어거스틴 수도회의 수도사인 마틴 루터는 그의 나이 34세인 15171031일 독일 마인츠의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마인츠의 신임 대주교를 향해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해 붙였습니다.

교황은 카예탄 추기경을 특사로 보내 루터를 심문하고 회유하려 했지만

루터는 교황보다 공의회가 더 높으며 모든 인간은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최종적인 권위는 교회가 아닌 성경이어야 한다고 반박하였습니다.

루터는 교황보다 공의회가 더 높으며 모든 인간은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최종적인 권위는 교회가 아닌 성경이어야 한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3대 정신 중에 하나인 오직 성경으로입니다.

루터가 사역하고 있었던 비텐베르크 어거스틴 수도원에는 수도사들을 위한 기도 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루터는 로마서1:17에 있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였습니다.

이제까지의 하나님의 의는 심판하고 정죄하고 벌을 내리시는 것으로 생각하여 왔었는데

탑의 체험이후 루터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의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진 의 였습니다. 이 의를 통하여 죄사함과 구원이 가능한 의 였습니다.

에베소서2:8에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사랑가운데 이루어 놓으신 의로서 루터는 이것을 오직 은혜라 하였습니다. 교회의 전통이나 예식, 성자들의 공덕 등 사람의 의가 하나님의 의를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 외에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구원이 없다는 말씀이 오직 은혜입니다.

오직 믿음은 이 하나님의 의 즉 오직 은혜를 나의 것으로 하는데 있어 오직 믿음이 있을 뿐이지 다른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즉 면죄부를 삼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밖에 고행이나 공덕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우리의 구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가톨릭이 모르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에 인간의 욕심이 덧붙여지거나 섞여지기 시작하였고 그것들이 부패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이라기보다는 부패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교회들은 구교와 신교의 대립이라는 관점에서의 종교개혁을 더 이상 부각하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기독교의 연합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외에 종교개혁 기념 주일을 지키는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운동의 역사를 통해 주어진 교훈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종교개혁주일을 지내면서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서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은

첫째는 정치 경제 사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의 가치와 규범을 성경에서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처럼 상황논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않는 일입니다.

둘째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의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이후 원치 않게 생겨난 폐단이 있다면 소위 값싼 은혜, 값싼 구원입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 그리 여겨진 것인데 오늘 우리의 신앙의 삶에서 이 오래된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셋째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할지라고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신 말씀처럼 종교개혁이후 사랑 없는 진리 싸움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교는 가장 잔인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던 그 근본에 사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한국교회는 한 때는 반공이 성경위에 있었고 현재는 진영논리가 성경위에 있는 듯이 보입니다.

우리의 삶에 작은 부분에서부터 거대 담론에 이르기까지 과연 성경은 이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지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이 생각처럼 단순하거나 쉽지 않지만 그러려고 하는 마음의 태도가 있어야 하고 그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을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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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개혁 - 성경과 교회
  • 2020-10-30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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