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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내 밭을 사라

  • 성경말씀 : 예레미야32:6-15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11-22

20201122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예레미야32:6-15

제목 : 내 밭을 사라

 

1901년에 태어나 1943년에 소천한 이상화 시인은 1926년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저는 이 시가 육십은 훌쩍 넘은 시인에게서 나온 시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지 스물다섯살의 청년의 글이었음을 보고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는 해방되기 2년 전에 소천 하였기에 여전히 빼앗긴 들에 있었지만 그의 싯구 중에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함에 봄이 이미 와 있었습니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는 시편11:3의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처절하게 땅을 빼앗기는 유대 민족의 모습과 그 땅이 회복될 것을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말씀의 증거자로서의 예레미야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기원전 640년경 요시야왕 때부터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그리고 시드기야에 이르기까지 남유다가 망해가던 50년 동안 선지자 역할을 한 분이었습니다.

예레미야 32장의 시작은 유다의 시드기야 왕 열째 해 곧 느부갓네살 열여덟째 해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이 섬�한 것은 시드기야 왕 십일년이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39:1-2에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구년 열째 달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하였습니다.

4-7에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 길을 따라 두 담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바벨론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 읽을 때마다 인간이 참 악하다 죄인이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악어도 이리하지 않고 하이애나도 이리하지 않고 독사도 이리하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이렇게 악한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원죄가 있다는 생각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전쟁에서 패하면 이렇게 비참하게 되는데 이 비참한 계시적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패했을 때에도 이와 같은 비참한 모습이 됨을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의 시드기야 왕 열째 해에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차지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진 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 가리니 시드기야는 내가 돌볼 때까지 거기에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갈대아인과 싸울지라도 승리하지 못하리라 하고 예언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매국노로 여김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는데 이르시기를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할 것이라 하셨고 그 말씀대로 하나멜이 와서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하였습니다.

고엘 즉 기업무를자의 제도는 세우신 것은 각 족속이 하나님이 주신 지경 안에서 살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지경을 타 족속이 차지하거나 빼앗지 못하게 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딸로 형제로 부의 형제로 친족으로 기업을 무르게 하였던 것입니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의 친척은 이 기업 무를 의무를 져버렸기에 보아스가 대신 하였던 것입니다. 기업을 무르려면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것이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면 그 의무를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의무가 다음 기업 무를 자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사촌이 그 의무를 요구하는 것은 이미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의무를 거부하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레미야도 지금은 밭을 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유다가 망할 것이라 예언을 하였고 그 예언대로 바벨론에 의해 일 년 동안이나 포위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곧 유다는 무너질 것이고 포로로 잡혀갈 것이고 그 밭을 사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상황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망함의 예언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망하면 너희가 다시 회복되리라는 말씀도 예언하였습니다.

29:10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30:18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31:12에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하였습니다.

이 상황 속에서 그는 그 밭을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고 산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한 예언에 대하여 스스로 신실함을 보인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망하는 것만 보이지만 그 망함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구원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내 밭을 사라는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첫째는 내 밭을 사라는 사촌의 말을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습니다.

8절에 사촌 하나멜이 밭을 사라 하는 말이 여호와의 말씀인줄 알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상황적으로도 그 말을 그리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터인데 예레미야는 그 상황에서 그리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성령의 은사 가운데 있는 영분별의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번 코로나19를 통해서도 주님께서는 아주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가 잘 듣지를 못하고 막연한 두려움이나 원망과 불평으로 대하고 있는 듯합니다.

 

둘째는 상황과 조건을 넘어서는 순종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아주 무겁게 여긴 제자가 베드로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하심에 순종 하였습니다.

그는 갈릴리 호수에서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다가 이제는 그물을 정리하고 집으로 가려는 상황에서 그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어려운 순종을 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였습니다.

성이 곧 함락될 것 같은 상황에서 매국노로 의심받고 있는 처지에서 기업 무를 자의 질서는 무시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조건 속에서 밭을 사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상황 그 조건 속에서도 예레미야는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향하여 조롱하고 모욕하는 상황속에서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시며 십자가를 순종하셨습니다.

 

셋째는 그 말씀을 순종함에 있어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는 은 십칠 세겔을 달아서 주었으며, 증서를 써서 봉인하였고, 증인을 세웠고, 증서를 토기에 담아 보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무겁게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리하고 나자 15절에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습니다.

적어도 예레미야에게는 밭을 사라 하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도 신실히 순종해야 하겠지만 더불어서 나를 통해서 선포된 주님의 말씀에 스스로 순종하는 일에도 정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 가운데 증거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기업 무를 자의 자리에 서셨을 때에 특별히 겟세마네에서 아버지여 할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신 말씀을 스스로 이루신 것입니다.

 

내 밭을 사라고 다가오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 일은 내가 한 말이 형체를 이루어 내게 다가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내가 선포한 말씀을 내가 이루는 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의 의미이며 그 일들을 통하여 세상은 말씀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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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밭을 사라
  • 2020-11-27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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