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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다시 초대교회로

  • 성경말씀 : 사도행전2:47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1-01-03

202113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사도행전2:47

제목 : 다시 초대교회로!

지난 해에는 무슨 주제로 설교를 하려고 해도 코로나19라는 중력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기승전 코로나로 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수는 전 세계의 일반적인 인사법이고 우리도 늘 그렇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제는 악수로 인사를 하지 못하니까 마치 인사를 안 한 것 같은 미진함이 있습니다.

악수가 시초에는 자신의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하는데 -아마 그래서 주로 남자들이 악수로 인사를 한 듯 합니다- 이제는 서로의 손에 바이러스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니 악수도 못하고 포옹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큰 일인지도 몰랐었습니다.

예배 후에 식사를 하는 것이 개인의 선택이고 약간의 부담인줄 알았는데 주일의 삶 속에 큰 부분이었음을 절실하게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나누지 못한 것이 마치 마음을 나누지 못한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초대교회가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한 부분이 단순한 일상인줄 알았는데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에 크나 큰 연결고리 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 그 이상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채워지지 않을 흔적으로 그런 나이테로 남을 것 같습니다.

고린도전서12장에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하시며 그 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그래서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하신 말씀을 실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모여서 예배할 수 있음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낯선 분이 들어오면 긴장하게 되는 것은 그 분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하신 것도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서로에게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절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독으로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생명임을 이번 사건을 통하여 각인하게 되었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는 다는 말씀이 단순한 교훈이 아니고 실제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우리 모두가 서로 반갑게 악수하고 포옹하며 인사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교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월 첫 째 주 주님의 성찬을 고대하며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한 몸으로 여기고 더 귀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이번 송구영신 예배에서는 사무엘하24:25의 말씀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하시는 말씀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윗의 삶에서 세 가지 단계가 있었습니다. 이 계시적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보입니다.

첫째는 개인적으로는 회개함이었습니다.

다윗은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 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회개와 함께 우리의 삶에서 이 미련한 일들에서 돌이킬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를 들면 일회용품을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일을 돌이키는 일입니다.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공의를 세움이었습니다.

다윗은 제사를 드리는데 사용될 여브스족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과 소와 도구들을 값을 주고 사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값을 치르지 않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을 받을 수 있음이 공의입니다.

예를 들면 약한 자를 무시하지 아니하고 나보다 약한 자의 권리가 무시됨을 보고 분노하는 일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림이었습니다.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온전한 헌신을 의미하였고 화목제는 그로 말미암는 평화로 인한 감사였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예배가 좀 더 온전해 지며, 우리의 예배가 주변인들에게 평화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이러한 역사들이 이루어진다면 이 땅에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하시는 말씀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올해 우리에게 주시는 표어는 다시 초대교회로 이며 지침은 기사와 표적의 교회, 마음을 같이 하는 교회, 칭송을 받은 교회입니다.

지난 해에 우리 교회의 표어가 소금과 빛 되는 교회였는데 해마다 표어만 세우면 뭐하냐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표어를 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표어를 세우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이 이 땅에서는 공동체성이 있고 한 몸 됨이 있지만 마지막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철저한 개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 다녔다고 구원받고 상급 받는 것도 아니며 누구의 남편이었다고 그리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철저히 단독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21:22에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네게 무슨 상관이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표어를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는 사명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태도를 갖게 될 것입니다.

마치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겨 주인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신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고,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안다 하며 받은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다가 주인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을 받으며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하시는 말씀을 듣는 자가 되기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는데, 이 일이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때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듣게 되는 말씀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초대교회라 함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교회가 세워진 때부터 스데반이 순교한 때까지 약 1년간의 기간을 말합니다. 연도로 본다면 주후 33년 경입니다.

이 기간 동안 성령강림하심이 있으셨고,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가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유대인들이 세례를 받고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던 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치유한 일도 있었고, 베드로가 솔로몬의 행각에서 설교하니 믿는 자가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을 때입니다.

사도들에 대한 박해도 있었지만 굴하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권능이 나타났었으며,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있었고 숫자가 많아지자 원망하는 일들도 있었지만 일곱 안수 집사를 세워 그 일들을 감당해 내던 때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순교로 나타난 초대교회에 대한 큰 박해는 사도 외에는 다 유다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되기까지의 기간의 교회입니다.

 

이 기간 동안 초대교회에서는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고,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미하였으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으며,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초대교회는 이 땅에 온전히 지속적으로 세워질 수 있는 교회가 아니라 한 순간 우리에게 비쳐주신 모범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후에 교회 이름을 초대교회라고 붙인 교회는 있었지만 초대교회의 모습을 온전히 지속적으로 이어간 교회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초대교회는 이 땅에 세워진 모든 교회들이 바라봄의 대상으로 삼고 추구하고 나가야 할 교회입니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교회는 근거 있는 혹은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 다시 초대교회로 란 표어를 중심으로

기사와 표적이 있는 교회

마음을 같이하는 교회

칭송받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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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 설교자
  • 1
  •  다시 초대교회로
  • 2021-01-06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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