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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칭송받는 교회

  • 성경말씀 : 사도행전2:43-47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1-01-24

2021124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사도행전 2:43-47

제목 : 칭송받는 교회

 

사거리에서 교통 신호를 하는 경찰관에게 한 분이 다가가서 뜻밖의 질문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마음에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 동네에서 어느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하자, 그 경찰관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제 생각에는 저 골목에서 나오는 교회가 좋은 교회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쪽에서 일요일에 예배 끝나고 나오는 교인들은 얼굴에 별 표정이 없고 반대쪽에서 나오는 교인들은 잔뜩 화가 안 모습들인데 저 골목에서 나오는 교인들은 다들 웃으며 나오기 때문입니다하였답니다.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 일 터이지만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초대교회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는 하였습니다.

여기서 온 백성이 누구를 가르치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예루살렘 교회를 둘러싼 교회 밖의 사람들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사도행전11:26에도 있었는데 바나바가 다소에 가서 사울을 청하여 수리아 안디옥에서 함께 사역을 하였을 때 안디옥 교인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른 이들도 교회 밖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자신들과는 좋은 쪽으로 구별되는 사람들로 여겼고 그래서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는데 예수쟁이라는 불림이었습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교인들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쟁이는 사람의 성질이나 특성, 행동, 직업 등을 나타내는 일부 어근 뒤에 붙어, ‘그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의 뜻과 얕잡는 뜻을 더하여 명사를 만드는 말이라고 국어사전에 적혀 있습니다.

같은 동네 사람이었는데 교회를 다니더니 뭔가가 달라져서 그 달라짐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인간은 다름에 대해서 일단은 경계하고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을 비하하려는 속성이 있어 예수쟁이라 하였지만 얕잡아 보는 것만이 아니라 시기와 부러움이 들어 있는 표현이었습니다. 낯설기는 하지만 그 무리 속에 속하고 싶은 바람이 있는 말이었습니다.

초기 한국교회는 조상도 모르는 종교라는 오해를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의 제5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인 것 같이 죽은 조상에게가 아니라 산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종교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 편견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여인들과 아이들 그리고 천한 자들의 종교라고 천시 받았지만 여인들이 교회에 와서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수원댁 안양댁이거나 누구의 엄마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장터에서도 애들은 가라의 세상이었는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서 어린 아이들을 귀히 여김에 따라 교회는 아이들이 북적이는 곳이 되었습니다.

사람이면서도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던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전북 금산교회의 장로선거에서 주인이었던 조덕삼이 떨어지고 그 집의 종이었던 이자익이 당선이 된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사회 그 어느 곳에서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교회라고 하는 특별한 공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나중에 조덕삼도 장로님이 되었고 조덕삼장로님의 후원으로 이자익은 신학교에 가서 목사님이 되어 금산교회의 담임목사로 오게 되었고 우리 교단 총회장을 세 번 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교계에서 이자익 상은 아주 영예로운 상으로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1919년 삼일운동은 약 2개월에 걸쳐 200만이 만세운동에 가담했는데 그 때 우리나라 인구가 2천만이었으니 전체인구의 10%가 삼일운동에 가담한 것이고, 31일에서 5월말까지 학살된 사람이 7,979, 부상자가 15,961, 검거된 사람이 46,948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약 20만 명으로 기독교 신자는 전체인구의 1%에 지나지 않았으나, 기독교가 삼일운동에서 25~30%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이후 기독교는 외래종교에서 민족종교로 자리 잡은 일도 있었습니다.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도 그러하였고 한국교회에서도 그러하였고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교인들의 믿음 때문에 칭찬과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알지 못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의 의미도 알지 못합니다. 그의 부활도 다시 오심도 알지 못합니다.

당시의 교인들이 그것들을 잘 믿어서 기도를 많이 해서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해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우리의 교리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말할 뿐입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모든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형제자매라는 호칭으로 인하여 난잡한 관계를 하는 집단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형제자매라 부르며 그와 같은 인식을 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성찬식이 유아 식인을 하는 행사로 오해를 받기도 하였지만 성찬식은 교회 예배의 중심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부르고 영접함으로 인해 로마 황제의 주 됨을 인정하지 않는 반역의 무리들이라는 여김을 받기도 하였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하는 고백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신사참배는 교회 밖의 대다수가 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교회가 그리하였지만 끝내 신사참배를 하지 않은 교회와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세상나라의 법과 하나님 나라의 법이 같이 갈 때도 있었지만 갈라서거나 대척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 때 세상은 교회에 그들의 말을 강요하지만 교회는 교회가 가야할 길을 걸어 왔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3-4에서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하였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칭찬은 세상으로부터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거나 부정하는 바는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자 올해 우리교회에게 지침으로 주신 말씀 칭송받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교회적으로 칭송을 받았으면 합니다.

어느 교회는 교회를 재건축할 때 그 인근 주민들로부터 상당한 반대를 받았던 교회가 있습니다. 건축과정에서의 소음 분진 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앞으로 교회가 세워져도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재건축 과정에서도 주변의 민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축하하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주변과 소통하며 소금과 빛의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초록가게 지역아동센터 열린교회 지역의 일에 협력함 등을 통하여 그 역할을 감당해 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마을오케스트라 마을밥상 마을쉼터 등을 통하여 그 사명을 계속해 나가고자 합니다.

 

둘째는 교인들이 칭송을 받았으면 합니다.

초기 한국교회에서 저 교회 다니는 사람입니다하는 말은 신용카드와 같았습니다.

교인들은 그들의 정직성과 신실함을 교회 밖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실례로 그 말로 가게에서 외상이 가능했고 거래에서 담보물이 될 수 있었고 결혼때 인정받는 이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에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며 사는 분들도 많이 있고 드러내지 않고 주님이 원하시는 착한 행실을 하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 문제가 개인적 차원의 경우도 있지만 한국교회적 차원의 문제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에 치우쳐 경건한 삶의 문제가 약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거듭남 구원 다음으로 이어지는 성화의 단계에 대한 애씀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좋은데 삶은 그렇지 않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놓이기도 하였습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믿음과 행함이 구별될 수 없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우리의 삶이 믿음에 가까이 있도록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쓰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점점더 그리스도인다운 그래서 그로인해 칭찬받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내 밖에다 무엇을 하는 일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것은 오히려 쉬울 수가 있습니다.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나를 변화시켜서 그 모습을 주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무엇을 이루려고 40일 금식 기도를 하고도 정작 자신이 조금의 변화가 없다면 무슨 난감한 일이겠습니까?

 

셋째는 기독교 전체가 칭송을 받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교회하면 우선 개교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교회에 대해 신경 쓸 여유도 없고 그런 생각체계가 성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는 만물위에 교회이며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이듯이 온 우주적 통전적 하나의 교회입니다.

코로나 초기에 신천지로 말미암아 많은 비난이 있었는데 세상은 신천지와 교회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사랑제일교회도 그러하였고 몇몇의 교회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세상은 어느 교회의 잘못으로 보지 않고 모든 교회의 잘못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다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교회만 잘하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생각입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들이 잘할 수 있도록 칭찬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힘을 다하여 합력해야 합니다.

한 교회내의 교인들도 상하좌우 마디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교회들도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올해 우리교회는 다시 초대교회로 라는 표어와 함께 기사와 표적의 교회 마음을 같이하는 교회 칭송받는 교회라는 지침을 세웠습니다.

이 말세지말에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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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칭송받는 교회
  • 2021-01-29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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