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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성경말씀 : 요한복음21:15-17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20-07-26

2020726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요한복음21:15-17

제목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랑의 고백에는 일련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 만나는 관계에서 사랑을 물을 수도 고백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요한복음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첫 만남은 요한복음1:40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세례 요한의 제자 가운데 사도 요한과 안드레가 있었고, 그 두 사람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했던 그 유명한 말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하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에 안드레가 자기의 형제 시몬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 오니 예수님께서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만남의 단계입니다)

시몬은 히브리어로 듣는자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게바는 아람어로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헬라어로서 역시 반석이란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이 사용하신 일상어는 아람어로 히브리어는 종교적 언어로 헬라어/라틴어는 공식적 언어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첫 만남에서 베드로가 무엇이라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요한복음6장에 벳세다 들녘에서 오병이어의 역사가 있은 후에 생명의 떡 논쟁이 이어졌는데 안타깝게도 대다수가 떠나갔고 열두 제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하셨는데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믿음의 단계입니다)

 

요한복음13장 성만찬장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려 하시는 예수님께 베드로는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하였다가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하시자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 승천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물었고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하셨습니다. (결단과 헌신의 단계입니다)

 

요한복음18장 대제사장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고 계실 때 베드로에게도 주변인들이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는 질문이 세 번 있었는데 그 때마다 베드로는

나는 아니라(우크 에이미)”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갈등의 단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도, 예수님의 빈무덤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에서도 베드로가 남긴 말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침묵의 단계입니다)

 

요한복음21장에 예수님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피신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였는데 이 말이 다시 물고기를 잡는 어부로 돌아가겠다는 뜻의 말은 아니었습니다.

겉옷을 벗고 물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는 요한이 주님이시라하는 말을 듣고는 겉옷을 두른 후 오십 칸 약 100m 되는 거리를 헤엄쳐 주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겉옷을 두르고 물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가 잘 알고 있었을 터이지만 더 이상 주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원치 않았던 베드로의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배에 가만있어도 바닷가로 갔을 터인데 베드로는 조금 이라도 빨리 주님께로 다시 다가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하는 듯 보입니다.

 

처음 그들이 제자로 부름을 받았던 갈릴리 호숫가에서 특별한 조반을 함께 하신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길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주님께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이란 말씀은 베드로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하심입니다.

또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하였고 내 양을 치라하셨습니다.

또 다시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기를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하였고 내 양을 먹이라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 이 사람들혹은 이것들 보다 더에 강조점을 두신 질문으로 보이고,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은 다름이 아닌 나를에 강조점을 두신 질문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로 하신 말씀은 세 번 주님을 모른다 부인했던 베드로의 기억과 부끄러움을 씻어 주시기 위한 배려로 보입니다.

헬라어 원어상보면 첫 번째 두 번째 질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아가파스 메즉 조건이 없는 조건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해당하는 아가페로 물으셨고, 그렇지만 베드로의 대답은 필로 세즉 친구간의 우정에 해당하는 필리오로 대답하였습니다. 그의 대답에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주님이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아닙니다 그 사랑에는 미칠 수 없습니다 하는 진솔함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도 세 번째 물으실 때에는 필레이스 메로 물어 주셨고 베드로는 아마도 마음에 무거움을 내려놓고 세 번째 같은 말 필로 세로 대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베드로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였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아가페 사랑의 은사를 받은 듯 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의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톨게라는 가족간의 사랑, 필리오라는 우정의 사랑, 애로스라는 본능적 사랑 저 로미오와 줄리엣 사이에 있었던 사랑이 그것들입니다.

그러나 아가페 사랑은 태어날 때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삶 어느 때에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이 질문이 설교자를 위한 질문, 질문을 위한 질문, 율법주의적 질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장 사모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하시는 질문으로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고전13:1 이하에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물으시는 말씀이기도 할 것입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혹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고

네가 다른 것이 아닌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힘,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사랑의 은사에 있다 하겠습니다.

잠언10:12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하셨고,

아가8:6에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하셨고,

로마서13:10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하셨고,

고전8:1에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하셨고,

벧전4:8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셨고,

요일4:8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셨습니다.

톨스토이도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의 책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음은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사랑이 우리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은사라 하였습니다. 은사는 선물이라는 뜻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고전12:31에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였습니다. 더욱 큰 은사가 사랑의 은사를 이르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성령님께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며 구하는 가운데 우리의 심령에 사랑의 은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마지막 대화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하심이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니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나를 따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이 시대 사랑의 은사를 인하여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가운데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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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2020-07-31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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